벌써 3년이 되었다, 경향신문이 연중 시리즈로 매일 한 권의 책을 1면에 소개해온 일이. 일간지 1면이 어떤 면인가. 1면만 보아도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알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그런 1면에 서평 형태의 칼럼을 지속적으로 게재하는 일은 처음에는 무모하다 할 만한 기획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벌써 3년, 이제는 경향신문 하면 ‘책읽는 경향’이 떠오를 만큼 ‘신문의 얼굴’이 되었다.
지금 언론 생태계는 격변기라고 해야 할 만큼 변화의 물살이 거세다. 특히 신문산업은 생존을 우려해야 할 지경이다. ‘미디어법’이라고 통칭되는 각종 언론 관련법의 개정을 통해 자본력 있는 신문들이 방송을 겸영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그런데 신·방 겸영은 누구 말마따나 ‘죽음의 덫’일 수 있다. 광고시장을 놓고 벌어질 피 터지는 싸움도 싸움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신방 겸영의 논리가 결국 활자문화의 패배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경향신문이 내놓았던 짤막한 사고(社告)를 기억한다. 이 사고에서 경향신문은 읽고 사색하는 행위가 위축된다면 종국에는 활자문화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리라는 우려를 드러냈었다. 이런 우려는 현재 진행형일 뿐만 아니라,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읽고 사색하는 행위’는 점점 더 소수자의 것이 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것으로 확산될 것인가. 우리 사회는 지금 그 갈림길에 있다. ‘책읽는 경향’은 이런 갈림길에서 책 이야기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생각하는 백성들의 목소리를 전파했던 것이다. “여기 책이 있고, 책 읽는 사람이 있으며, 책 읽는 문화를 감싸안는 언론이 있다”는 메시지가 발신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신문(新聞)이 ‘새로운 질문(新問)’이 될 때 존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새로운 질문’이란 의제설정과 함께 심층적인 탐사보도, 그리고 끊임없는 문제 제기를 말한다. 이런 면에서도 ‘책읽는 경향’은 우리 언론사에 기록될 중요한 시도이자 도전이다. ‘책읽는 경향’의 지난 3년을 돌아보면, 매해 마디가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2007년 첫걸음을 떼었을 때부터 책 속 구절을 되새김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지금까지 숱한 책과 필자들이 소개되었다.거론되는 책과 필자의 다양성은 ‘책읽는 경향’의 특장이기도 하지만, 한 권의 책과 그 책을 통해 전해지는 필자들의 생각이 좀 더 시대와의 호흡을 고려한 것이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벽사 선생이 군사정권 시절 고려 무인정권기의 한시를 읽고 논했던 것은 시대와 불화했던 비판정신의 알짬을 현재화하고자 한 고투였음을 새겨보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개인의 일인 동시에 사회의 일이다. 사회의 일인 독서, 이를 ‘사회적 독서’라 한다면, ‘책읽는 경향’은 바로 사회적 독서의 현장이다. 책 읽는 문화의 토대가 없이는 언론·출판뿐 아니라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다. 칼럼이란 말 그대로 기둥이다. ‘책읽는 경향’은 앞으로도 ‘생각의 기둥’을 더욱 튼실하게 세워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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