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8일 연합뉴스 고미혜 기자의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에 대한 서평,
젊음의 '열정'을 착취하는 新자본 사회
지난 2월 생활고에 시달리던 젊은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죽음은 영화인들의 어려운 처지를 다시 한번 여실히 보여줬다. 영화산업노조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영화 스태프의 연평균 소득은 623만원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영화판은 항상 열정 하나만을 갖고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젊은이들로 차고 넘친다. 영화인들의 고된 처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인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아?", "그런 열정도 없이 뛰어들었어?" 하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야말로 열정을 착취하는 구조다.
한윤형, 최태섭, 김정근 씨가 함께 쓴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언제부턴가 젊음의 지상명령이 된 '열정'이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이 되어버린 현실을 짚어보고 있다. '열정 노동'이 보편화한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영화를 비롯한 문화창작 분야다. "회사 분위기 안 좋고, 펀딩 안 되고, 뭐 그런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가방 하나 맨 애가 문을 열더니 사무실로 들어왔어요.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영화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돈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외치더라고요. (중략) 그 애를 쳐다보는 스태프들의 심경은, '저런 녀석들 때문에 내가 돈도 못 받고……'였죠."(83쪽)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다"라는 말로 열정 착취를 정당화하는 분야는 영화 쪽 말고도 많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번다"는 생각에 가장 부합하는 프로 게이머나 연예인들은 후원기업이나 기획사에 소속돼 자신의 열정으로 어른들의 배를 불리는 구조에 편입되어 버린다. "'e스포츠는 밑바닥에 있는 클랜(같은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 숙소 운영자부터 e스포츠 언론 기자, 그리고 가장 위에 있는 협회 임원까지 수많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세상 물정 모르는 10-20대가 그들의 열정을 바탕으로 '가치를 생산하는' 세계이다."(67쪽)
저자들은 이밖에 파티시에나 소믈리에처럼 대중문화가 만들어놓은 판타지에 힘입어 열정을 바치게 된 일부 서비스업 종사자들이나 "돈 벌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명목이 방패가 되는 시민단체나 진보정당 상근자 등 다양한 열정 노동자들의 현실을 소개한다.
어쩌다 열정이 노동으로 변했을까. 저자들은 '자기 안에서 우러나는 열정'에서 생산력 향상의 동력을 찾으려 한 세계 자본주의의 흐름과, 사회적 안전망이 무너진 상황에서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를 경영하라'는 탈노동자화가 장려된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 그 배경을 찾고 있다. "국가와 자본은 사람들의 열정을 필요로 했다. 동시에 신자본주의는 '불안정함'이라는 운명을 새 시대에 부여했다.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거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요구되었다."(187쪽) 절대선처럼 여겨지던 '열정'이라는 개념을 비판적으로 직시한 문제의식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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