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확인하는 시대의 초상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문학동네 펴냄쌓인 이야기가 많았다. 긴 작업이었다. 2011년 12월에 시작해 2014년 11월에 끝났다. 지난 3년, 소설가 황석영은 한국 단편소설을 부지런히 읽었다. 오랜만에 밤새워 작품을 ‘읽어치우고’ 리뷰를 썼다. 이틀 밤을 연달아 새기도 했다. 어깨 통증이 후유증으로 남았다. 그렇게 고른 소설 101편이 10권짜리 선집으로 나왔다. 시작은 염상섭의 <전화>, 끝은 김애란의 <서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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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작가가 101편의 한국 단편소설을 10권으로 묶었다. 봄에는 경장편을 발표할 예정이다. |
각각의 작품마다 덧붙인 리뷰에는 해당 작가의 개인적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문학 세계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삶의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 100편의 소설은 우리 민초들의 일상이기도 하고 하나의 풍속사이자 문화사였다. 해설을 쓴 신수정 문학평론가와 시대 구분을 비롯해 작가 선정을 함께했다. 작품은 작가 본인이 골랐다.
어떤 의미에서 황 작가의 라이벌인 이문구에 관한 대목, 첫 부인인 홍희담 작가에 관한 이야기, 월북 작가들에 대한 소회도 담겼다. 작가 자신은 특히 황순원을 주의 깊게 살폈다. “정치적 입장도 그렇고 알려지길 식물적이고 정제된 맑은 술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기개 같은 게 있었던 양반이다. 우리말이 말살되고, 친일하고, 문인들이 변절하던 시기에 절필하지 않고 숨어서 자기 글을 써서 독에 묻었다가 해방 후 발표했다. 해방 공간에서 대단히 현실적인 글을 쓰다 전쟁이 나면서 무색투명한 삶을 살게 된다.” 작가 자신의 단편으로는 <삼포 가는 길>과 <몰개월의 새>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몰개월의 새>를 실었다.
소설이 거짓말? 문학은 그 나라의 문화적 척도
단편소설은 장편소설과는 전혀 다른 장르다. 전복과 오분자기로 비유할 수 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르다. “지금은 전혀 다른 사정이지만 작가의 역량이 보이는 건 장편을 통해서였다. 자기 역량을 키우고 기교나 형식에 대한 연습을 촘촘히 해나갈 수 있는 기초가 단편에서 결정됐다.” 식민지 시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작품을 담았는데 그중 1990년대 이후 소설이 세 권으로 묶였다. 작가가 말하는 당대성이기도 하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작정하고 읽으며 젊은 피를 수혈받은 것 같았다.
작가가 지닌 불만은 정치인이 자기들끼리 싸우다 ‘소설 쓰지 마라’ 하고 한마디 던질 때다. 소설이 거짓말의 대명사가 되었다. 문학은 그 나라의 문화적 척도를 이야기하는 거다. “한국 문학이 위기라는데,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나. 뚫고 넘어서고 극복해 나가면서 여기까지 온 거다. 한국 문학은 오늘도 위기다. 한국 문학이 왜 근사하고 위대한지 납득해주길 바란다. 자국의 문학을 읽는 건 쓸데없는 일이 아니라 자기 시대 초상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야기가 더 나간다. 486세대가 메마르고 뻑뻑한 건 사회과학서만 읽고 소설을 읽지 않아서라고.
방대한 세월을 101편으로 요약한 만큼 그의 소회가 길어졌다. 작가도 일흔셋에 접어들었다. 화장실 한번 갔다 오니 인생이 다 가버렸다고 그는 말한다. 장편 두어 편 쓰면 끝날 듯싶단다. 이번 봄 발표하는 경장편으로 만년 문학의 첫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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