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0일 화요일

부산, 제2국회도서관 유치 건과 관련하여/ 박창희 국제신문 논설위원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50209.22027191404

[국제칼럼] 지식의 쓸모, 도서관의 재발견 /박창희

제2 국회도서관 유치, 부산 지식사회 무덤덤…지식의 쓸모 깊이 고민

책읽는 도시 프로젝트, 치밀한 전략 수립을



1995년,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와 작가, 예술가들이 모여 '쓸모없는 지식 협회'(The Useless Information Society)라는 비밀 모임을 결성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쓸모없는 지식'을 나누고 공유하자는 취지였다. 지식의 쓸모와 쓸모없음에 대한 통렬한 토론이 오갔고 사회적 반향도 얻었다. 하고 보면 쓸모없는 지식은 없었다. 이들이 주고받았던 토론의 결과물이 2010년 나온 '쓸모없지만 유쾌한 지식의 발견'(돋을새김)이다. 

2011년, 부산인적자원개발원은 'BKnet'이란 부산지식네트워크를 만들었다. 국내 처음이다.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부산지역 각 분야별 지식인 2만500여 명을 등록시켰다. 이 가운데 박사급이 1만여 명이다. 엄청난 지식생태계가 조성됐으나 아쉽게도 아직 큰 '쓸모'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부산에 빅 이슈 하나가 떠 있다. 제2 국회도서관 유치 건이다. 이걸 끌어오면 지역발전을 크게 앞당기면서 고급 일자리도 다수 만들어낼 수 있다. 조건이 의외로 좋다. 용량 초과한 국회도서관이 분관을 필요로 하고, 지역균형상 부산이 적지로 꼽혔다고 한다. 부산 출신 정의화 국회의장의 의중이 실려 있다는 건 든든한 언덕이다. 용역 중간보고서에 나온 걸 보면, 건립 예산이 약 1600억 원, 오는 2020년에 개관한다. 건설·운영비는 전액 국비다.

국가 최대 도서관을 부산에 세운다는 건 생각만 해도 신 나는 일이다. 국회의 의정자료는 물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방대한 장서, 국내 석·박사 연구자들의 논문 DB 일체를 구비한 곳은 국회도서관밖에 없다. 단순히 하나의 큰 도서관이 아니다. 지식의 앵커(닻), 책 박물관 및 기록관, 체험관, 나아가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연구자들이 모이고 학자들이 고급 지식을 논하다 보면 연구학술도시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상상할수록 흥분이 된다.

그런데, 부산 지식인들은 무덤덤하다. 대체로 "오면 좋지요" 하는 식이다. 직·간접 혜택을 보게 될 지역대학들조차 흥분하지 않는다. 부산의 지식사회가 움직이는 기미도 없다. 정보가 없는 건지, 가치를 모르는 건지, 안될 걸로 봐서 그런지 여하튼 서늘한 냉기류가 흐른다. 인재가 없다, 떠난다, 지식·정보를 서울이 독점한다 말하면서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한발 비켜선다. 지역 국회의원들도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하다. 

이 같은 냉기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최근 어떤 모임 뒷자리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산사회를 지배하는 자욱한 열패감이 이런 거 아닐까요…." 듣고 보니 자못 심각한 얘기였다. 일류가 뭔지 모르고, 흥분할 줄 모르고, 싸울 줄도 모르고, 그렇게 순치되어 살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얼마 전 광주에서는 일대 파란이 벌어졌다. 정부가 오는 9월 개관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특수법인화해 국비 지원을 제한하려고 하자, 광주 국회의원들은 물론 온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났다고 한다. '국립'이 붙었는데 국비 지원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부산국제아트센터는 지난 연말 예산 편성 과정에서 '국립'이 '국제'로 바뀌었다. 광주 문제의 향방에 따라 재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데도 여전히 무덤덤하다. 정당한 지역 권리를 챙기지 못하는 모습이다.

국회도서관은 지금 부산의 '실력'을 떠보고 있을지 모른다. 유치전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빠르면 상반기 중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게 된다니 시간도 없다. 타 시·도에서도 국회도서관을 노리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식의 '쓸모'를 다시 생각해본다. 지식인의 연대와 결의가 절실한 이때 'BKnet'에 등록된 2만500여 명이 연대 서명을 하고, 국회도서관 유치를 위한 '장서 모으기' 운동에 가세한다면 판이 달라진다. '제2 국회도서관 부산유치 범시민위원회'가 밑자리는 깔아 놨다. 350만의 마음이 모아지고 열망이 쌓이면 국회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부산시가 올인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지방비(500억 원)로 추진되는 '부산대표도서관'과 별개로 세심한 전략을 만들어 올해 국회가 설계비라도 반영하게끔 밀어붙여야 한다. 단기 목표는 국회도서관 유치에 두되, 중장기 목표는 '책 읽는 도시' 나아가 '책의 항구'라는 큰 그림을 펼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장서·고서 모으기' 운동을 지원하고, 대학도서관을 포함해 모든 공사립 도서관을 네트워킹하면서,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인문학 진흥 및 책 쓰기 운동까지 유도하는 것이다. 김해시의 '책 읽는 도시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하면 된다. 

진짜 '쓸모'는 이런 것이다. 국회도서관 유치를 내걸고 '책 읽는 도시' 프로젝트가 잘 가동된다면, 경우에 따라 국회도서관이 유치되지 않아도 그만이다. 우물이 깊으면 두레박줄이 길어야 하는 법, 깊이 봐야 크게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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