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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끄집어 내려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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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15 20:08수정 : 2015.02.1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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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경희 수녀, 황인수 신부.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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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팟캐스트 ‘수도원책방’ 진행하는
황인수 신부, 김경희 수녀
바오로는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전도자였다. 2만㎞에 이르는 선교 여행을 했고, 신약성서 27개의 문서 중 13편의 서신서를 남겼다. 당시에는 걸어서, 그리고 최첨단 미디어인 문서를 통해 선교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황인수(이냐시오·47·오른쪽) 신부와 김경희(젬마·46·왼쪽) 수녀가 마이크 앞에 나란히 앉은 이유는 그런 바오로의 길을 따르기 위함이다. “만약 바오로 사도가 지금 살아있다면 아주 열정적이고 인기있는 방송인이었을 겁니다.”
조근조근, 그리고 차분하고 청량한 목소리로 호흡을 맞춘 수사와 수녀는 선교만을 위해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그 사랑을 끄집어내고 싶습니다.”
100년된 ‘연년생 남매 수도회’ 출신
4년 전부터 준비한 김 수녀가 제안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 뜻 전하자”
2월 첫 방송에 비신자 애청자도 호응
‘달달한 오누이 수다쟁이 등장’ 화제
“청취자들 생각 바뀌어 깨어났으면”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수도원 책방’(podbbang.com/ch/8788·팟빵)을 시작한 지 한달이 된 황 신부와 김 수녀는 마이크 앞에만 앉으면 수다쟁이가 된다. 30분 동안 이런저런 책과 영화, 사는 이야기를 쏟아낸다. 하지만 두렵다. “설익고 별 볼 일 없는 자신의 체험이 아닌 온축된 하느님의 이야기를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 ‘맛보기’ 방송에서는 일본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의 에세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과 유럽에서 시작해 전세계로 확산한 ‘휴먼 라이브러리’ 운동을 소개했다. 최근 방송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의 강연집 <거룩한 경청>과 안젤름 그륀 신부의 <당신은 나의 천사>를 소개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랑을 이야기했다.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 애청자가 많다. 한 애청자는 “달달한 수사님, 수녀님의 목소리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었어요”라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흑산도가 고향인 황 신부는 졸업하고 배를 탔다. 외항선 기관사로 2년을 일했다. 바다에서의 생활은 너무 외로웠다. 선원생활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에서 일하다가 29살의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가 속한 수도원은 성바오로수도회로 사회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이다. 사제가 된 그는 로마에서 교부학을 전공했고, 성바오로출판사 편집장을 지냈다.
28살에 수도원에 들어온 김 수녀는 성바오로딸수도회 소속으로 <평화방송>에서 한동안 책 소개를 한 경력이 있고, 그동안 온·오프라인 서점을 관리해왔다. ‘삶과 사명이 선교’인 둘은 우연히 뭉쳤다. 4년 전부터 팟캐스트를 준비하던 김 수녀가 지하철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황 신부의 이야기를 듣고 손을 내밀었다. 둘은 쉽게 의기투합했다.
황 신부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종편을 비롯한 기성 방송의 ‘거짓 편파 방송’이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우리 모두가 져야 할 큰 책임입니다. 대중 조작에 맞서서 참된 방송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김 수녀는 “책과 영화 등 문화 이야기를 통해 대중에게 깨어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한다. “하느님의 이름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해주신 것, 우리에게 나눠주신 것이 뭔지 전하고 싶어요. 이 시대 일하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사회문제도 피할 수 없겠죠. 비록 느리긴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자 해요.”
두 사람은 미리 주제를 정해 서로 소개할 책을 고른다. 다음 방송 주제는 ‘광야’다. 사순절을 앞두고 인생의 힘든 시기를 이야기하고 싶단다. 그래서 황 신부가 고른 책은 오스카 와일드의 <옥중기>이고, 김 수녀는 김의경의 <청춘 파산>을 골랐다. “한자로 종교의 뜻은 ‘으뜸의 가르침’입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 그것이 바로 종교 이야기가 돼요. 이런 책을 소개하다 보면 시대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피해 갈 수 없죠. 그런 이야기를 진솔하게 하고 싶어요.”
맑은 목소리로 이미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김 수녀는 자신의 소명을 ‘씨를 뿌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비록 팟캐스트 방송이지만 우리의 목소리가 이 땅에 조그만 씨앗이 돼, 그 언젠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제구실을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하는 것이 아닌, 낮은 곳에서 조그맣게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봐요.”
신부와 수녀의 수도원은 서울 미아동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이탈리아의 복자 알베리오네(1884~1971) 신부가 각각 1914년·1915년 설립한 ‘연년생 남매’ 수도회다. 이들 역시 연년생이다. 그래서 오누이처럼 정겹고 사랑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수도원 책방’은 매달 1일을 기점으로 열흘 단위로 새로운 방송을 올린다. 스마트폰에서 팟캐스트 청취 애플리케이션인 ‘팟빵’이나 애플 아이튠스를 통해 들을 수 있고, 웹에서는 포털사이트에서 ‘수도원 책방’으로 검색해서 들을 수 있다.
“회개는 생각이 바뀐다는 뜻입니다. 많은 이들이 저희 방송을 듣고 깨어나서 생각을 바꾸길 바라요. 욕심인가요?” 신부와 수녀는 바쁘게 스쳐 지나가는 명동의 인파 속에서 사랑과 사람을 이야기했다. 향기로운 냄새가 퍼지는 듯했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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