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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인질사회와 작별하자
- 부동산의 인질 노릇을 끝내기 위한 획기적 해법
과거 영국에서는 양이,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집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
아득한 옛날 인클로저 운동이 있었다. 16세기 영국에서 모직물 공업이 발달하자 양모가격이 폭등했다. 이에 현혹된 지주(젠트리)들이 자신이 소유한 농지 및 합병한 영세농의 농지 등을 양이 사는 목장으로 바꾸면서 울타리를 쳤디. 영세농들은 굶어 죽거나 도시빈민이 됐다.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는 이런 참극을 보고 “전에는 사람이 양을 먹었지만 지금은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고 절규했다.
과거 영국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면,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분명 수도권의 주택가격은 2007년을 정점으로 하락과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값이 수년 동안 변동이 없다해도 이자율과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집값은 경향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특히 서울을 필두로 하는 수도권의 집값은 너무나 높다. 2013년 9월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공개한 ‘주요국의 주택가격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 수준(PIR)은 4.8로 호주(5.6), 일본(5.3), 영국(5.1)보다는 낮았으나 캐나다(3.6), 미국(3.1)보다는 높았다. 특히 서울의 PIR은 9.4로 나타나 시드니(8.3), 런던(7.8), 도쿄(7.7), 뉴욕, 로스앤젤레스(이상 6.2) 등 선진국 주요 도시보다 크게 높았다. 홍콩(13.5)과 밴쿠버는(9.5) 정도가 서울보다 높았다. 서울은 고사하고 경기(6.6)와 인천(6.2)지역도 미국의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의 PIR(6.2)을 웃돌 지경이다. 유엔 인간정주위원회는 3.0∼5.0을 적정 PIR 수준으로 권고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증거는 여럿이다. 2012년 말 현재 우리나라 가계가 보유한 부동산 가치는 약 5조 달러로 GDP 대비 436%에 달했는데, 이에 비해 미국은 18조5천억 달러로 GDP의 114%, 일본은 10조2천억 달러로 GDP의 171%였다. 우리나라 가계자산 구조에서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5.1%로 미국(31.5%), 일본(40.9%), 영국(50.1%) 등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는 대단히 비정상적인 현상이라고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가히 세계 최고의 부동산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발전모델을 탈피할 생각이 전혀 없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부동산 올인이고, 부동산 정책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집값 떠받치기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대한민국 특히 수도권의 주택 가격은 횡보하고 있다.
중산층과 서민들은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는 정부의 강권에 떠밀려 집을 사려고 매매시장을 기웃거려 보지만 집값은 여전히 너무 비싸다. 주택가격 추가하락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그렇다고 중산층과 서민들이 임차 시장에 머무는 것이 쉽지도 않다. 쉽기는커녕 매우 어렵다.
금년 1월 2일 KB국민은행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이 70%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는 KB국민은행이 집계를 시작한 1998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지방 보다 매매가가 한결 높은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의 평균 전세가율도 한 달 전보다 0.6% 오른 67.6%를 기록, 2001년10월(67.7%)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전세가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파트 매매 가격보다 전셋값의 상승폭이 더 크기 때문이다. 2014년 한 해 동안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이 2.43% 오른 사이 전셋값은 4.36% 상승했다. 수도권에서는 아파트 매맷값이 1.81%, 전세가는 5.41% 오르면서 3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대한민국 중산층과 서민들은 치솟는 임대가격과 여전히 높은 집값 사이에 끼여 죽어가는 중이다.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이 감내하기 힘들 만큼 과중하다보니 중산층과 서민들은 다른 소비와 지출을 극력 꺼리게 된다. 중산층과 서민들은 높은 주거비 마련을 위해 인생과 현재와 미래를 저당잡히고 있다. 단언컨대 집이 사람을 잡아먹는 현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부동산 인질 사회를 종식시키기 위한 대담한 제안
집이 사람을 잡아 먹는 현실은 명백하지만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건 매우 어렵다. 우리는 2008년 총선과 2012년 대선을 통해 부동산 ,정확히 말해 부동산 가격 상승 및 유지, 에 대한 유권자들의 열망과 기대가 선거에 얼마나 강하게 투사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동산 문제의 해악과 폐해에 대한 계몽과 선전도 부동산에 삶 대부분을 건 시민들 앞에는 완전히 무력했다. 분명한 것은 부동산으로 큰돈을 버는 시대는 종언을 고했지만, 활로를 찾지 못한 시민 중 상당수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나 유지에 ‘올인’하는 정부를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건 모두에게 비극이며, 그런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다.
부동산에 삶을 저당 잡힌 시민들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시민들로 하여금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단념하고 좋은 부동산 철학과 정책을 지지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것이 그것이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이 그 반대급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사회적 대타협 혹은 메가딜(Mega Deal)인 셈이다. 기본소득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무런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급부로, 헌법상의 사회적 기본권을 구체화시키는 정책수단이다. 기본소득의 수령을 통해 국민들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향유할 수 있고 실질적인 평등도 제고된다.
국민경제 차원에서도 기본소득은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는 국민들이 지출을 늘리면 내수경제가 살아날 것이고, 생산가능인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지금과 같이 저임금 근로와 한계 상황의 영세자영업에 뛰어들 유인이 줄어들게 되어 노동시장 및 영세 자영업 시장의 과당경쟁도 일정 부분 해소될 것이며 이를 통해 시장임금이 상승하고 자영업자들의 이윤율도 제고될 것이다. 더구나 과학기술의 혁신이라는 불가역적 현상으로 인해 고용 없는 성장은 이미 상수(常數)가 됐다. 실업의 합리적 흡수는 기본소득을 통해 가능하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교육과 사회문제 해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기본소득으로 인해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이 가능해지고 고소득 전문직이나 양질의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임금근로자들의 시장임금이 상승하면 사회적 자원의 배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변형된 전쟁이라 할 교육 영역에서의 경쟁도 완화될 것이고,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타인에 대한 연대의식이 고취된 시민들은 범죄와 일탈의 유혹에 견디는 힘이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철학적으로도 정당하다. 한 개인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것은 압도적으로 출생과 같은 운(fortune)이고 거기에 더해 과거 세대와 현재의 사회구성원들이 만들어 낸 지식과 경험과 기술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이건희는 대한민국에서 이병철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호사와 영광과 권력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고, 찢어지게 가난하고 포악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사람이 성공하고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한 사회가 이룬 성취와 부는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공유하는 것이 지극히 옳으며 그 구체적인 실현방법이 기본소득인 것이다.
다 좋은데 재원이 걱정인가?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략 250조원 가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터무니 없다고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패러다임과 발상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면 재원 마련이 불가능하지도 않다. 이미 선행된 연구들이 있거니와 토지와 주식, 이자 등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에 고율로 과세하고, 환경세를 신설하며, 연금을 기본소득으로 전환하면 기본소득과 무상의료, 무상교육에 필요한 재원이 마련된다. 토지불로소득, 주식양도차익, 이자소득, 배당소득, 상속 같은 것은 대표적인 불로소득이자 과거 세대와 현세대가 만들어 낸 가치로 상당부분 공유되는 것이 옳으며, 환경세의 신설은 생태적 차원에서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불로소득을 기본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의 도입 없이 한국사회가 지속할 수 있고 한국사회 구성원들을 불안과 불행으로부터 구원할 길은 없다. 야당과 시민사회, 비판적 지식인들은 담대하게, 더욱 담대하게, 언제나 담대하게 기본소득을 주장해 이를 관철시켜야 한다. 현존 질서와 논리에 갇힌 협애한 시각과 상상력으로는 미래를 선취할 수는 없다. 기본소득이 미래다. 기본소득을 통해 부동산 인질사회와 작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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