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102042315&code=990100
입춘이 지났다. 그러나 굴뚝은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부러질 듯 휜다. 눈이 섞이고 빗물이 고여 기둥이 삭고 페인트가 벗겨진다. 곰새끼처럼 밤새 웅크렸더니 206개 뼈가 하나로 뭉쳐 있다. 비닐을 몇 번 갈고 밧줄을 또 몇 번을 다시 묶었다. 저녁 7시부터 진행하는 <해고일기> 출간 기념 라운드 토크를 준비하기 위해 야외 스튜디오를 나름 만든 것이다. 서울과 영상통화로 4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행사여서 꼼꼼하게 점검을 마쳤다. 해고자의 삶과 그들의 오늘과 내일이란 주제였다. 영상통화로 가능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화질이나 음질은 좋았다. 그러나 오디오로 몰려드는 바람 소리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출연진은 다양했다. MBC에서 만평을 그렸다가 해고된 20대 예능 PD와 치유 활동가로 활동하다 마인드 프리즘에서 해고당한 이, 사회를 본 88만원세대 저자 옆에 맥도널드 알바 노동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애틋함이 거리와 정확히 비례한다는 걸 느꼈다. 한마디 한마디 놓치지 않고 듣고 눈으로 따라갔다. 해고에 대한 서로의 경험을 나눴고 사정을 들어줬다. 7년차 해고 생활 속에 젖어 있는 나는 어느새 해고계 늙다리 중늙은이 처지였다. 이들은 ‘해고계’ 밖에서 해고계를 봤을 것이고 나는 해고계 안에서 이들을 봐왔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하나로 뭉뚱그려 보이던 사슬들이 직접적으로 자기 이해와 맞닿는 경험을 할 것이다. 예전보다 갈등은 더 첨예해질 것이고 뒷짐 지던 손은 어느새 문서를 찾고 팻말을 들고 현수막을 묶고 있을 것이다. 당장 내일 아침 걱정과 커가는 아이들 생각에 머리는 묵직하고 해고된 사실을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생각하는 밤이 또 길게 찾아 올 것이다.
굴뚝에 올라와서 <해고 일기>라는 책을 출간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4년 동안 언론사 칼럼을 묶은 칼럼집인데, 지난해 8월경에 출간 예정이었다. 복직이 되면 회고하듯 출간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2월에 고등법원에서 이겼지만 회사는 버텼고 결국 11월 대법원에서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은 파기환송 되어 다시 고등법원으로 던져졌다. 7년간 언론 담당 역할은 내겐 무거운 형벌이었다. 쌍용차를 설명하는 단어가 100여개면 충분한 사건에서 그 단어를 늘리고 이어 붙여서 매번 다른 기자회견문을 써야만 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밀가루 하나로 수십 가지 음식을 만드셨던 어머니를 아프게 이해한 시간이기도 했다. 투쟁은 기록이고 기록이 투쟁이라 말하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어떻게 3000장이 넘는 기자 회견문을 쓰고 수백 번의 칼럼을 써대고 해고일기로 묶인 것보다 더 많은 홍보물을 만들고 뿌려댔는데도 왜 이 사건은 끝나지 않는가였다. 더 복잡한 말들이 가치를 뽐내고 어려운 담론이 어깨를 눌러댔을 뿐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럴 바에야 세상 모든 단어를 모조리 소진해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세상에 말이 사라지고 단어가 의미를 잃어버려 진정한 소통의 장애가 발생할 때 그때 우리 얘기는 전달되고 듣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쓰고 또 썼다. 무리한 비유가 있어도 ‘듣보잡’ 비약을 시도해도 부끄럽지 않았고 창피한 줄 몰랐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소통의 채널이 엉켰고 주파수가 광선으로 깔렸다. 어떤 이야기도 반복만 될 뿐 상대에게 가 닿지 않았다. 거리 위에 수년간 앉아 있는 노동자의 어깨를 보고도 매일 같은 길을 답답하리만치 걷고 있는 이들의 발을 보고도 그 의미를 읽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이곳이야말로 난독 집단이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집단이 난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잘난 계몽도 치료도 아니다. 문자를 없애고 맨몸뚱이로 말하고 맨손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다. 해고일기를 미친 듯이 써 내려갔던 이유이기도 하다.
해고일기 책 인세 전액은 ‘분홍 도서관’을 짓는 데 쓰려고 한다. 분홍엔 큰 의미가 없다. 그저 부르기 쉽고 친근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붙여 봤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제 힘으로 26명의 쌍용차 희생자를 기억하고 노인이 되어 가는 우리들과 아이들, 그리고 수많은 착한 이들을 모시고 싶은 공간으로 분홍 도서관을 짓고 싶다. 도서관 중앙 가장 큰 공간엔 책이 한 권도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책보단 사람에게서 더 많이 배웠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누구든 완벽한 하나의 도서관이란 사실을 알았다. 굴뚝에서 61일째를 맞는다. 쌍용차 교섭은 막혀 있고 법원은 굴뚝에서 나가라며 매일 100만원씩 강제 부과금을 책정했다. 내가 굴뚝에 하루에도 수천마디를 하고 수백 개의 SNS를 날려야 하는 이유가 여전히 명료한 현실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많은 말을 할 것이고 더 많은 글을 쓸 것이다. 굴뚝에서 안전하게 내려갈 수만 있고 사태 해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스스로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이길 수만 있다면 한 올 남기지 않고 발가벗고 말 것이다.
애틋함이 거리와 정확히 비례한다는 걸 느꼈다. 한마디 한마디 놓치지 않고 듣고 눈으로 따라갔다. 해고에 대한 서로의 경험을 나눴고 사정을 들어줬다. 7년차 해고 생활 속에 젖어 있는 나는 어느새 해고계 늙다리 중늙은이 처지였다. 이들은 ‘해고계’ 밖에서 해고계를 봤을 것이고 나는 해고계 안에서 이들을 봐왔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하나로 뭉뚱그려 보이던 사슬들이 직접적으로 자기 이해와 맞닿는 경험을 할 것이다. 예전보다 갈등은 더 첨예해질 것이고 뒷짐 지던 손은 어느새 문서를 찾고 팻말을 들고 현수막을 묶고 있을 것이다. 당장 내일 아침 걱정과 커가는 아이들 생각에 머리는 묵직하고 해고된 사실을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생각하는 밤이 또 길게 찾아 올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말이 사라지고 단어가 의미를 잃어버려 진정한 소통의 장애가 발생할 때 그때 우리 얘기는 전달되고 듣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쓰고 또 썼다. 무리한 비유가 있어도 ‘듣보잡’ 비약을 시도해도 부끄럽지 않았고 창피한 줄 몰랐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소통의 채널이 엉켰고 주파수가 광선으로 깔렸다. 어떤 이야기도 반복만 될 뿐 상대에게 가 닿지 않았다. 거리 위에 수년간 앉아 있는 노동자의 어깨를 보고도 매일 같은 길을 답답하리만치 걷고 있는 이들의 발을 보고도 그 의미를 읽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이곳이야말로 난독 집단이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집단이 난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잘난 계몽도 치료도 아니다. 문자를 없애고 맨몸뚱이로 말하고 맨손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다. 해고일기를 미친 듯이 써 내려갔던 이유이기도 하다.
해고일기 책 인세 전액은 ‘분홍 도서관’을 짓는 데 쓰려고 한다. 분홍엔 큰 의미가 없다. 그저 부르기 쉽고 친근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붙여 봤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제 힘으로 26명의 쌍용차 희생자를 기억하고 노인이 되어 가는 우리들과 아이들, 그리고 수많은 착한 이들을 모시고 싶은 공간으로 분홍 도서관을 짓고 싶다. 도서관 중앙 가장 큰 공간엔 책이 한 권도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책보단 사람에게서 더 많이 배웠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누구든 완벽한 하나의 도서관이란 사실을 알았다. 굴뚝에서 61일째를 맞는다. 쌍용차 교섭은 막혀 있고 법원은 굴뚝에서 나가라며 매일 100만원씩 강제 부과금을 책정했다. 내가 굴뚝에 하루에도 수천마디를 하고 수백 개의 SNS를 날려야 하는 이유가 여전히 명료한 현실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많은 말을 할 것이고 더 많은 글을 쓸 것이다. 굴뚝에서 안전하게 내려갈 수만 있고 사태 해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스스로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이길 수만 있다면 한 올 남기지 않고 발가벗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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