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제 대학은 나와야…' 학력 기대 깨진다
수정: 2015.02.12 04:40
등록: 2015.02.12 04:40
학생 포부·부모 기대 최종학력 수준, 취업난 심해지며 갈수록 낮아져
"명문대 가지 못할 바엔 공무원 시험·기술 배우는 게 낫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박모(20)씨는 지난해 전문대에 입학했다. 4년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명문대가 아닌 이상 취업에 득될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전문대도 등록만 하고 곧바로 휴학했다. 그는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해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 박씨는 “등록금이 싼 전문대에 적을 두고 4년제 대학 졸업에 들일 비용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낫다고 여겼다”며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라 주변의 중ㆍ고교생들조차 ‘굳이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한때 신분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했던 고등교육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고 있다. 대학 진학률이 78.5%에 달하는 상황에서 대학 졸업장이 주는 차별성과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기 때문이다.
11일 한국교육개발원이 공개한 ‘학교 교육 실태 및 수준 분석’ 연구결과에 따르면 학생의 교육포부와 학부모가 갖는 교육기대 수준은 첫 조사가 실시된 2004년 이후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중학생들에게 최종 학력 계획을 물은 교육포부 수준(4점 만점)은 2004년 3.02였다가 2013년 2.91로 떨어졌다. 이 수치는 진학 계획에 따라 고교(1점)ㆍ전문대(2점)ㆍ4년제 대학(3점)ㆍ대학원(4점)에 점수를 매긴 것으로, 적어도 4년제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점차 깨지고 있다는 의미다.
부모가 기대하는 자녀의 최종학력 수준을 나타낸 교육기대수준(4점 만점) 역시 2004년 3.43에서 2013년 3.21로 낮아졌다.
연구를 진행한 남궁지영 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중학생뿐 아니라 초등학생의 교육포부와 초교 학부모들의 교육기대수준 역시 계속 낮아지고 있다”며 “2000년대 초반보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서울시가 발간한 ‘서울 고용구조 변화 및 특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지역의 청년(15~29세) 실업자는 10만명으로 전년(8만3,000명)보다 20.5% 늘었다. 청년 실업률(10.3%)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11.9%)과 1999년(10.4%) 이후 가장 높았다.
비싼 돈을 들여 대학 교육을 받아도 취업 후 받는 임금 수준이 낮아 고등교육 투자비용 대비 효과(임금)가 떨어지는 것도 교육기대수준이 낮아지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 겸임연구위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교육거품의 형성과 노동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대졸자 하위 20%와 2년제 전문대졸자 하위 50%는 고졸자의 평균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한 청년들 중에서 고졸자 평균 임금 이하를 받는 비율은 1980년 약 3%에서 2011년 23%까지 늘어났다. 이 전 장관은 보고서에서 “대학이 서열화한 상황에서 2000년 이후 하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이뤄진 대학 진학자의 급격한 증가는 ‘교육거품’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최은순 참교육학부모회장은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할 바에는 학력차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기술을 배우는 게 낫다는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을 졸업해도 월급을 많이 받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교육열망과 기대수준이 낮아지는 것”이라며 “선취업 후진학 제도 활성화, 학벌에 관한 인식 개선 등 능력중심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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