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가 천국 가는 법…폴 크루그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뉴트 깅리치, 아서 래퍼 지음 | 오래된 생각 | 160쪽 | 1만원
부자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은 간단하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 된다.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세금이라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손쉬운 방법을 두고도 부자들은 ‘천당행 티켓’(세금)을 사려 하지 않는다. 지금 그 자체로 좋아 내세(來世)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일까. 지금 갖고 있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삶 자체가 ‘지옥’인 주위 사람들을 둘러볼 겨를이 없는 것일까.
<부자가 천국 가는 법>은 ‘부자증세’를 둘러싼 진보-보수 진영의 뜨거운 공방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책이다. 현장감을 최대한 살렸다. 부자더러 세금을 더 내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석학 두 사람, 이들에게 맞서 부자증세가 빈부격차 확대로 신음하는 끔찍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꾸기 위한 해법이라고 강조하는 두 거장이 나와 논리대결을 펼친다. 공격-반박-재반박을 거듭하는 양측의 설전이 아주 치열하다. 한국 사회에서도 부자증세를 둘러싼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당신에겐 어떤 주장과 논리가 더 와 닿는가.
# 찬성파의 포문 “불평등 해소 위해 절실”
2013년 5월30일, 캐나다 최고의 공공정책 토론으로 일컬어지는 멍크 디베이트가 열린 캐나다 토론토. 사회자의 개회선언과 함께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가’를 주제로 토론을 펼칠 세계적인 논객 네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의 국제조직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의장이며 ‘포린 폴리시’가 선정한 세계 100대 사상가에 이름을 올린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전 그리스 총리가 부자증세 찬성쪽에 섰다. 상대는 ‘공급 중시 경제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아서 래퍼 박사와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을 승리로 이끌며 40년 만에 하원의 다수당 자리를 차지하는 데 일조한 ‘감세론자’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이 팀을 이뤘다. 래퍼 박사는 로널드 레이건 정권하에서 경제고문을 지냈고 세율과 세수의 관계를 나타낸 래퍼 곡선의 제창자로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에 뽑힌 것으로도 유명하다.
포럼이 열린 로이 톰슨 홀을 가득 메운 3000명 청중들의 부자증세에 대한 사전 투표 결과는 58%가 찬성, 28%가 반대, 14%가 ‘정하지 못했다’로 나타났다. 일단 부자증세 찬성팀이 유리한 분위기에서 포문을 열었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금융위기와 결합된 경제위기로 과거와 같은 경제성장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데서 출발한다. 증가하는 공공부채와 만성적자를 해결할 길은 막막한데, 복지 요구는 더 거세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빈곤층과 중산층의 소득은 정체되는 반면, 최상위 부유층은 예금이자와 주식배당 등을 통해 거액의 자산소득을 누리고 있다. 불평등의 심화다. 크루그먼 교수는 “부자의 세금을 올려 그 재원으로 빈곤층·중산층을 위한 양질의 공공서비스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유층 증세로 부를 적절히 재분배하자는 것이다.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부유층 증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주장은 낙수효과(트리클다운)를 기대하며 부유층에 힘과 혜택을 몰아줬지만 경제성장의 혜택이 밖으로 새나가 버려(트리클아웃) 세금징수조차 어려운 위기에 빠진 그리스의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부유층 증세가 한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 신뢰를 가늠하는 잣대로 작용해 개인의 행복, 사회 평등, 평균 수명, 건강, 환경, 일자리를 아우르는 미래사회의 건전성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을 그대로 두고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모두발언부터 토론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 반대파의 역공 “증세 효과 의문시”
깅리치 전 의장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부유층만 골라 특별세를 부과하는 건 ‘성공하면 벗겨가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부자증세 효과에도 물음표를 던졌다. 부자는 변호사와 회계사, 로비스트를 동원해 어떻게든 증세를 피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해 고속성장을 이뤄낸 중국 사례도 이들의 믿음을 굳혔다. 중국은 수많은 억만장자를 탄생시켰지만 동시에 가난에 찌들어 있던 6억명을 중산층 대열에 편입시켰다. 잘나가는 사람을 끌어내리기보다 어려운 형편의 사람을 끌어올리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청중의 이목을 끌었다.
래퍼 박사는 미국의 과거 사례를 들어 부유층 세율을 올려도 기대만큼 세수가 증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경기는 침체했고 상위 1%의 고소득자로부터 거두는 세수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내려갔다. 그는 줄곧 세율을 올린 4명의 대통령(존슨, 닉슨, 포드, 카터)을 ‘얼간이’로 표현했다. 반대로 세율을 내렸을 때 고용과 생산이 급증하고 고소득자로부터 거두는 세수도 금액뿐 아니라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올라갔다. 1920년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높은 세율을 유지하려 한 민주당을 제치고 승리한 공화당 집권기를 경제가 살아 움직인 ‘광란의 20년대’였다며 치켜세웠다. 세수를 정말 늘리고자 한다면 세율을 늘리기보다 과세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했다. 이는 포괄적인 세제개혁을 전제로 한다. 자산가치 상승에 의한 자본이득, 자선 목적의 기부 등 모든 것에 일률적인 세율의 세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으로 파판드레우의 각종 비과세·예외 규정·감면 축소 등을 통한 전면적 세제개편 주장과도 맞닿는다.
이쯤에서 한국 상황이 떠오른다. 세제의 허점, 헛돈을 쓰는 정부, 투명성 부족, 탈세 횡행 등에 대한 불신이 전면적 증세 논의를 가로막고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정면 돌파하기보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처방만 내놓고 있다. 연말정산 파동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기만적 세수 확충 시도에 골몰하며 ‘증세 없는 복지’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전면적 세제 혁신 같은 주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 찬성 압도적… 이젠 솔직하게 얘기할 때
한국의 복지지출 수준(9.3%)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8%)의 절반에 못 미친다. 하지만 조세부담률(19.8%)은 OECD 평균(25%)보다 낮다. 조세부담률을 높여 세수를 올리고 급속한 노령화에 따른 복지수요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증세 논의가 당당하게 쟁점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표만 의식해 비겁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의 번역자인 양상모씨는 “조세의 가장 큰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소득재분배의 효과를 내기 위해선 주먹구구식의 간접세 증세가 아니라, 소득세와 법인세 같은 직접세 중심의 증세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라고 밝혔다. 크루그먼·파판드레우팀에 좀 더 기울어져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 중에 증세를 단행했지만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기는커녕 첫 2년 동안 매달 약 25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엔 최고세율이 80~90%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미국 역사상 경제성장률이 최고였던 시대, 중산층 생활수준이 가장 많이 향상된 때였다. 스웨덴, 핀란드, 독일도 세율이 높지만 인적자원에 대한 꾸준한 투자로 경제 성적표가 괜찮다.
네 거장의 이날 토론은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다. 지금의 경제 불평등 상황에 대한 인식과 철학에 따라 증세를 둘러싼 전문가들의 견해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토론이 끝난 후 이뤄진 최종 투표 결과는 향후 방향성과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부자증세 찬성 70%, 반대 30%로 크루그먼팀의 압승으로 끝났다.
선명한 주장, 수치 면에선 깅리치팀이 앞선 듯 보였지만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의 완결성이나 방법면에서 구체적이지 못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문제의 근본 원인을 탐구해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는 깅리치의 문제인식은 타당하다. 인구 전체가 복지 신세를 지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도록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 해답이라는 래퍼 박사의 말도 옳다. 부자증세만으로 빈부격차를 완전히 해소할 수 없어서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빈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서 양극화를 해소할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의 흔적이나 대책을 발견하기 어렵다. 래퍼 박사의 주장처럼 세제개혁에 성공하더라도 부자증세 없이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떻게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건지 설명도 없다. 결국 상위 1%의 사람들이 가진 자산이 전체 자산의 20%를 넘는 현실, 비효율적인 정부를 만드는 대기업의 과도한 영향력, 상위 1% 기업이 전체 기업 부동산 가치의 76%를 보유하고 있는 현실 등이 최종 승부를 갈랐다. 토론을 지켜본 상당수 청중들이 토론이 끝난 뒤 부자증세 찬성쪽으로 옮겨간 이유다.
<부자가 천국 가는 법>은 ‘부자증세’를 둘러싼 진보-보수 진영의 뜨거운 공방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책이다. 현장감을 최대한 살렸다. 부자더러 세금을 더 내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석학 두 사람, 이들에게 맞서 부자증세가 빈부격차 확대로 신음하는 끔찍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꾸기 위한 해법이라고 강조하는 두 거장이 나와 논리대결을 펼친다. 공격-반박-재반박을 거듭하는 양측의 설전이 아주 치열하다. 한국 사회에서도 부자증세를 둘러싼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당신에겐 어떤 주장과 논리가 더 와 닿는가.
# 찬성파의 포문 “불평등 해소 위해 절실”
2013년 5월30일, 캐나다 최고의 공공정책 토론으로 일컬어지는 멍크 디베이트가 열린 캐나다 토론토. 사회자의 개회선언과 함께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가’를 주제로 토론을 펼칠 세계적인 논객 네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의 국제조직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의장이며 ‘포린 폴리시’가 선정한 세계 100대 사상가에 이름을 올린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전 그리스 총리가 부자증세 찬성쪽에 섰다. 상대는 ‘공급 중시 경제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아서 래퍼 박사와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을 승리로 이끌며 40년 만에 하원의 다수당 자리를 차지하는 데 일조한 ‘감세론자’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이 팀을 이뤘다. 래퍼 박사는 로널드 레이건 정권하에서 경제고문을 지냈고 세율과 세수의 관계를 나타낸 래퍼 곡선의 제창자로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에 뽑힌 것으로도 유명하다.
포럼이 열린 로이 톰슨 홀을 가득 메운 3000명 청중들의 부자증세에 대한 사전 투표 결과는 58%가 찬성, 28%가 반대, 14%가 ‘정하지 못했다’로 나타났다. 일단 부자증세 찬성팀이 유리한 분위기에서 포문을 열었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금융위기와 결합된 경제위기로 과거와 같은 경제성장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데서 출발한다. 증가하는 공공부채와 만성적자를 해결할 길은 막막한데, 복지 요구는 더 거세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빈곤층과 중산층의 소득은 정체되는 반면, 최상위 부유층은 예금이자와 주식배당 등을 통해 거액의 자산소득을 누리고 있다. 불평등의 심화다. 크루그먼 교수는 “부자의 세금을 올려 그 재원으로 빈곤층·중산층을 위한 양질의 공공서비스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유층 증세로 부를 적절히 재분배하자는 것이다.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부유층 증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주장은 낙수효과(트리클다운)를 기대하며 부유층에 힘과 혜택을 몰아줬지만 경제성장의 혜택이 밖으로 새나가 버려(트리클아웃) 세금징수조차 어려운 위기에 빠진 그리스의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부유층 증세가 한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 신뢰를 가늠하는 잣대로 작용해 개인의 행복, 사회 평등, 평균 수명, 건강, 환경, 일자리를 아우르는 미래사회의 건전성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을 그대로 두고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모두발언부터 토론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 반대파의 역공 “증세 효과 의문시”
깅리치 전 의장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부유층만 골라 특별세를 부과하는 건 ‘성공하면 벗겨가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부자증세 효과에도 물음표를 던졌다. 부자는 변호사와 회계사, 로비스트를 동원해 어떻게든 증세를 피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해 고속성장을 이뤄낸 중국 사례도 이들의 믿음을 굳혔다. 중국은 수많은 억만장자를 탄생시켰지만 동시에 가난에 찌들어 있던 6억명을 중산층 대열에 편입시켰다. 잘나가는 사람을 끌어내리기보다 어려운 형편의 사람을 끌어올리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청중의 이목을 끌었다.
래퍼 박사는 미국의 과거 사례를 들어 부유층 세율을 올려도 기대만큼 세수가 증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경기는 침체했고 상위 1%의 고소득자로부터 거두는 세수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내려갔다. 그는 줄곧 세율을 올린 4명의 대통령(존슨, 닉슨, 포드, 카터)을 ‘얼간이’로 표현했다. 반대로 세율을 내렸을 때 고용과 생산이 급증하고 고소득자로부터 거두는 세수도 금액뿐 아니라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올라갔다. 1920년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높은 세율을 유지하려 한 민주당을 제치고 승리한 공화당 집권기를 경제가 살아 움직인 ‘광란의 20년대’였다며 치켜세웠다. 세수를 정말 늘리고자 한다면 세율을 늘리기보다 과세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했다. 이는 포괄적인 세제개혁을 전제로 한다. 자산가치 상승에 의한 자본이득, 자선 목적의 기부 등 모든 것에 일률적인 세율의 세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으로 파판드레우의 각종 비과세·예외 규정·감면 축소 등을 통한 전면적 세제개편 주장과도 맞닿는다.
이쯤에서 한국 상황이 떠오른다. 세제의 허점, 헛돈을 쓰는 정부, 투명성 부족, 탈세 횡행 등에 대한 불신이 전면적 증세 논의를 가로막고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정면 돌파하기보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처방만 내놓고 있다. 연말정산 파동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기만적 세수 확충 시도에 골몰하며 ‘증세 없는 복지’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전면적 세제 혁신 같은 주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 찬성 압도적… 이젠 솔직하게 얘기할 때
한국의 복지지출 수준(9.3%)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8%)의 절반에 못 미친다. 하지만 조세부담률(19.8%)은 OECD 평균(25%)보다 낮다. 조세부담률을 높여 세수를 올리고 급속한 노령화에 따른 복지수요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증세 논의가 당당하게 쟁점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표만 의식해 비겁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의 번역자인 양상모씨는 “조세의 가장 큰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소득재분배의 효과를 내기 위해선 주먹구구식의 간접세 증세가 아니라, 소득세와 법인세 같은 직접세 중심의 증세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라고 밝혔다. 크루그먼·파판드레우팀에 좀 더 기울어져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 중에 증세를 단행했지만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기는커녕 첫 2년 동안 매달 약 25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엔 최고세율이 80~90%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미국 역사상 경제성장률이 최고였던 시대, 중산층 생활수준이 가장 많이 향상된 때였다. 스웨덴, 핀란드, 독일도 세율이 높지만 인적자원에 대한 꾸준한 투자로 경제 성적표가 괜찮다.
선명한 주장, 수치 면에선 깅리치팀이 앞선 듯 보였지만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의 완결성이나 방법면에서 구체적이지 못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문제의 근본 원인을 탐구해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는 깅리치의 문제인식은 타당하다. 인구 전체가 복지 신세를 지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도록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 해답이라는 래퍼 박사의 말도 옳다. 부자증세만으로 빈부격차를 완전히 해소할 수 없어서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빈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서 양극화를 해소할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의 흔적이나 대책을 발견하기 어렵다. 래퍼 박사의 주장처럼 세제개혁에 성공하더라도 부자증세 없이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떻게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건지 설명도 없다. 결국 상위 1%의 사람들이 가진 자산이 전체 자산의 20%를 넘는 현실, 비효율적인 정부를 만드는 대기업의 과도한 영향력, 상위 1% 기업이 전체 기업 부동산 가치의 76%를 보유하고 있는 현실 등이 최종 승부를 갈랐다. 토론을 지켜본 상당수 청중들이 토론이 끝난 뒤 부자증세 찬성쪽으로 옮겨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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