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불교사진 찍는 게 내 생 마지막 화두”
산사서 인생 2막 여는
원로 사진작가 육명심
매일 새벽 참선으로 시작
수행정진하는 독실한 불자
티베트에서 다진 내공으로
전국 사찰 찍는 것이 목표
우리나라 사진예술계의 거목인 육명심 작가는 독실한 불자로 “사진은 수행과 다르지 않고 집착을 버리고 나를 비워야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형주 기자 |
한국사진계의 거목 육명심 작가(83). 1960년대부터 ‘인상’ ‘백민’ ‘장승’ ‘검은 모살뜸’ 등 사라져가는 기층과 토속의 삶과 문화를 담아낸 1세대 사진작가로 한국 사진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특히 “나의 작품의 뿌리는 불교”라고 밝힌 작가의 예술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국 산사를 돌며 도량과 스님들의 사진을 흑백 필름에 오롯이 담아낸 독실한 불교신자다. 정년퇴임 후 올해로 16년째 매일 새벽3시에 일어나 1시간씩 참선을 하고 있다. 또 서울 강남에 마련한 작업실에 선방을 꾸미고 매일 수행 정진한다.
육명심 작가와 불교의 인연은 작가가 7살 나이에 돌아가신 스님이셨던 아버지에서 비롯됐다. 얼굴 한번 못 뵌 아버지였지만, 작가의 이름 ‘명심(明心)’을 남겨주셨다. 법명 같은 이름으로 일생을 국내외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한국 사진판의 선승’으로 불린다. 지난해 12월에는 노년의 영혼을 서방정토의 꿈으로 다시 사르며 티베트 고원과 인도 라다크, 부탄의 자연과 풍경을 촬영한 사진집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을 출간해 관심을 모았다. 육명심 작가는 “티베트에서는 하늘이 곧 사원의 천정이고 국토의 전역이 그대로 사원의 마룻바닥”이라며 “부탄과 라다크도 마찬가지며, 이들은 한 하늘아래 하나의 불국토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사진집에 담긴 작품들을 모아 올해 가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 계획이다.
육 작가는 성장기 내내 스님이 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로 뜻을 접었다. 이후 중ㆍ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서른 세 살의 나이로 결혼했고, 아내가 혼수품으로 가져온 카메라를 독학으로 배워 사진계에 입문했다. “불교의 공(空)사상을 바탕으로 한 여백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그는 1980년대부터 불교 관련 사진을 찍었다. 특히 사찰의 평범한 일상과 스님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주목했다.
특히 1993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친견한 성철스님과의 일화가 눈길을 끈다. 당시 육 작가는 당대 고승이었던 성철스님 사진을 찍겠다고 사전 연락도 없이 무작정 해인사 백련암에 찾아갔다. 사진은 고사하고 3000배를 하지 않으면 누구도 만나주지 않던 성철스님이 웬일인지 그를 방으로 불러들였다. “사진은 뭐 하러 찍을라카나?” “스님, 만약 부처님 생전에 사진술이 있었더라면 세상의 불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에 스님은 호랑이 같은 표정을 풀고 따뜻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럼 한번 찍어봐라.” 여기서 그의 대답이 예상 밖이다. “안되겠습니다.” 당시 신장이 좋지 않던 성철스님의 눈 근처가 좀 부어 있었다. “그렇다고 사진을 안 찍어?” “예. 나중에 다시 와서 찍겠습니다.” 그 해 부처님오신날에 와서 다시 찍으라는 스님의 당부를 뒤로 하고 절을 나섰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그 후 다른 사진작가가 먼저 성철스님의 사진을 찍은 걸 알게 됐지만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는 “아직도 스님과의 친견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면서 “사진작가로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내 눈으로, 마음으로 찍은 사진을 찍은 내 생의 최고의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육명심 작가의 사진집 <백민>에 실려 있는 수덕사 초대 방장을 역임한 벽초스님 의 사진. 1981년 4월 예산 정혜사에서 촬영. 사진제공=글씨미디어 |
성철스님과의 짧은 인연은 이후 육 작가의 작품세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그는 “사진은 수행과 다르지 않다”면서 집착을 버리고 비움으로 따뜻하게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70세가 넘은 나이에 티베트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예술혼을 불사른 것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진짜 불교사진을 찍기 위한 사전준비였다. 앞으로 국내 산사를 돌며 한국불교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목표다. 그는 “우리나라 불교를 찍기 위해 시작했던 티베트 여정이 그 땅에 매료돼 생각보다 길어졌다”면서 “관 뚜껑이 닫혀 흙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나를 비우면서 얼마나 많은 진짜 불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이 생에 마지막 화두”라고 말했다. 이어 후학들에게도 “욕심을 앞세워 성급히 셔터를 누른면 결코 원하는 작품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며 “대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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