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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것을 옳다고 못하는 세태” 이 시대를 향한 원로학자의 경종
수정: 2015.02.01 20:34
등록: 2015.02.01 15:22
이만열 前 국사편찬위원장 '잊히지 않는 것…' 출간
"권력에 타협ㆍ굴종한 비겁자들의 역사로 평가될까 두렵다 MB정권은 사악"
“이 시대에 산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 허튼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미칠 것 같다.”
역사학자이자 한국교회사 연구로도 저명한 이만열(77) 전 국사편찬위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이 신간 ‘잊히지 않는 것과 잊을 수 없는 것’(포이에마)을 출간했다. 산문집이라지만 정치, 사회, 종교, 역사를 포괄하고 있어 원로학자의 ‘시대론’이라 할 만 하다. 여행 중에도 매일 밤 노트북컴퓨터를 열고 원고지 40~50장 분량의 글을 쓴다는 이 교수의 산문 62편이 담겼다.
이 교수는 책에서 이명박(MB) 정권을 “한마디로 ‘사악한 정권’이었다”고 평한다. “그 이전 정권의 유산은 무조건 배격하겠다는 배짱으로 MB가 남긴 것은 ‘통일ㆍ남북 문제’, ‘4대강 사업’, ‘방산비리’, ‘자원외교 탕진’, ‘선거부정’과 그와 연관된 이루 말할 수 없는 지저분한 떡고물들이었다.”
이 전 대통령 역시 독실한 개신교인이기에 이 교수의 비판은 의미심장하다. “단순히 정치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MB가 교회 장로라는 점과 연관시켜 종교적 의미를 곁들여 들여다보니” 그런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특히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선 ‘4대강 인명사전’을 만들어 역사에 남겨야 한다는 제언을 한다. 이 교수는 한국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4대강 사업은 부작용뿐 아니라 누천년 내려온 우리 국토를 파괴했기에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라며 “이런 사업을 적극적으로 이끌었거나 그에 동조한 학자들을 기록해 후대에라도 역사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된 MB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두고도 이 교수는 “남북관계 비화 등 다음 정권에 누를 끼칠 수 있는 내용은 공개해선 안됐다”며 “국민에게도,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개표 부정 의혹 등으로 제기된 ‘18대 대통령선거 무효소송’에 대한 언급도 눈에 띈다. 이 교수는 2년이 지나도록 판단을 미룬 대법원을 향해, 소가 제기된 지 6개월 이내에 처리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규정을 거론하면서 “대법원은 국민의 입에서 ‘탄핵’ 소리가 나오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며 “이 시대가 권력에 타협ㆍ굴종한 비겁자들의 역사로 평가될까 두렵다”고 썼다.
그가 보는 한국 교회의 오늘도 암울하다. 이 교수는 “현재 한국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시장화’”라며 “복음이 사라진 시장 터가 됐다”고 한탄했다. 책에선 성장만을 지향하는 대다수 한국 교회에 강한 경고를 남겼다. “대형화의 유혹에 빠지기 전에 소형화하고 풀뿌리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 교회에 주어진 재역동의 기회는 그리 길어 보이지 않는다.”
오정현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의 논문 표절을 옹호하는 세력을 두고는 성경의 사도행전 26장 24절을 인용해 “학자적 지성이 표절 두호에 이용되고 있다면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만들었다’는 비난 또한 면치 못할 것”이라며 “이는 영성의 마비”라고 적었다.
책 첫머리에서 이 교수가 밝힌 “미칠 것 같다”는 고백은, 절망스러운 정치, 예수 정신을 저버린 교회, 사회 공동체의 붕괴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감한 원로학자가 울리는 경종인 셈이다. “옳은 것을 옳다고 용기 있게 소리 내지 못하는 세태가 되고 보니, 옳다는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힘을 받지 못하고 만다. 그렇게 되면 그른 것에 대해서도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게 된다.”
책을 내기로 마음 먹은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이 교수는 애초 출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글을 써뒀으나, 출판사 대표의 설득에 책으로 엮게 됐다. 이 교수는 “그래도 뒷날 메시아가 나타나기라도 해 역사를 광정(匡正)한다면, 그 근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시대를 향한 소리를 남기기로 했다”며 “잊지 않기 위해서,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라고 설명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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