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차별은 뿌리 깊은 사회 악습… 바꾸려면 수 세대 노력 필요 우리의 몫 위해 연대하고 맞서야”
온갖 성차별 이란의 현대사 관통 2차례 판매금지… 29개국 출판 세계적 작가로 부상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억눌린 이란 여성의 삶을 담은 소설 ‘나의 몫’(북레시피·표지)을 쓴 이란 작가 파리누쉬 사니이(69)를 5일 이메일로 인터뷰 했다. 이란 혁명기를 다룬 이 책은 정부에 의해 2차례 판매 금지됐으나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이란 여성 변호사 시린 에바디(71)가 나서면서 출판이 재허가 됐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이탈리아 보카치오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나의 몫’이 29개국에서 출판되면서 사니이는 세계적 작가로 떠올랐다. 이 책은 주인공 ‘마수메’가 딸, 아내, 어머니로 살면서 겪은 온갖 성차별을 이란 현대사를 배경으로 그려냈다. 700쪽에 가까운 두꺼운 책이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내려놓기 어려울 정도로 박진감 있다. 작가는 마수메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격동기를 살았던 가장 일반적인 이란 여성의 삶을 조사했다. 공식 자료, 개별 사례,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방대하게 조사했다. 1960년대 이전에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남편 얼굴도 모른 채 결혼했던 여성들이다.” 사니이는 이들이 자기 몫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고 본다.
“이들의 남편은 이란혁명(1979)으로 정치적 분파 싸움에 휘말렸고 그 아들들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88)에 끌려갔다. 남겨진 여성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고군분투했다. 그러다 자기 삶을 살 권리가 있단 사실을 잊어 버렸다. 그들도 자기 몫의 삶이 있는데….”
소설 속 마수메 역시 남편을 대신해 일자리를 구하고 헌신적으로 자녀들을 뒷바라지한다. 작가는 이 여성들의 ‘몫’에 대해 얘기한다. “마수메 세대는 개인적인 기회가 전무했지만 많은 책임을 떠안은 독특한 세대라는 생각에 이 책을 쓰게 됐다. 그들은 살림을 하면서 아들의 안위를 빌었고 딸을 교육했다.”
작가는 이 세대가 자기 몫의 삶을 희생해 그 시대에 필요한 사명을 완수했다고 평가했다. “이들 덕분에 그 딸들은 더 나은 삶을 살게 됐다. 온갖 제약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란 대학생 67% 이상이 여성이다. 오늘날 여성들은 또 다른 강인함으로 사회 각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란 여성들은 잃어버린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 중이라고 했다.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현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연대! 연대란 ‘한 손으로는 손뼉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함께 뭉쳐야 성공할 수 있다. 첫걸음은 여성들이 우리의 기본권을 믿는 것이고 그 다음은 침해받은 우리의 인권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여성차별을 바꾸는 데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성을 향한 차별은 모든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이걸 바꾸려면 수 세대의 노력이 필요하다. 단기적 목표는 여성 인권을 보호하는 새로운 법체계를 만드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성평등을 이해하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반갑게도 요즘 국내 여성계에서 주장하는 얘기와 비슷했다.
작가는 한국 여성들에게 특별히 이런 말을 남겼다. “사회가 우리에게 지워준 의무를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 모두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다면 스스로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29쇄까지 발행된 이 소설은 이란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나의 몫’은 지난해 8월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페미니즘 문학과 중동에 관심 있는 이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호평을 받았다. 지난 연말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올해의 책’으로 꼽기도 했다. 사니이의 신작 ‘숨겨진 목소리’(북레시피)는 올해 하반기 국내에 출간될 예정이다. 침묵하는 아이와 그 아버지의 심리를 다룬 작품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11574&code=13150000&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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