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바닥치나” 출판사들 깊은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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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기 논란과 불황 속에서도 이른바 스타 저자들을 중심으로 대형 베스트셀러가 나온 한해였다. 사진은 한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 풍경.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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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출판계
어린이책·온라인 매출도 꺾여
유명 작가들 책에 쏠림 현상
하이브리드 인문서 대거 등장
팟캐스트·드라마 영향력 커져
불황은 종이 책 시장의 닳고 닳은 열쇳말이 됐지만 올해는 특히 “언제 바닥을 치느냐”는 출판사들의 한숨이 깊었다. 국내 저자의 굵직한 본격 인문서 발간은 주춤했지만, 대중 독자를 겨냥한 인문서 출간은 비교적 활기를 띠었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평가다. 승승장구하던 온라인 서점의 매출마저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2013년, 출판계를 돌아봤다.
‘유명 저자, 되는 기획’이 팔렸다
13일 온라인 서점 ‘인터파크 도서’가 발표한 주간 작가 순위를 보면 1위가 <인생수업>의 법륜, 2위 <정글만리>의 조정래씨, 3위 <제3인류>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4위 <총, 균, 쇠>의 재러드 다이아몬드, 5위 <높고 푸른 사다리>의 공지영씨, 7위가 <고구려>의 김진명씨다. 올해 두드러진 특징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베스트셀러를 썼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순위다.
새로운 저자의 발굴보다는 기존 유명 저자의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배경에는 ‘출판사-서점-독자’를 잇는 긴밀한 순환 구조가 자리한다는 분석이다. 올해 베스트셀러를 잇따라 낸 한 중견 출판사의 주간은 “출판사들이 위험 부담이 덜한 유명 작가의 책 기획에 몰두하고 일단 책이 나오면 출판사 홍보비의 대부분을 그 작품에 쓰며, 때문에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유명 저자의 책이 가장 잘 노출되니 독자들은 더 자연스럽게 그 책을 선택하게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인문학은 올해 출판의 열쇳말이었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인문학은 밥이다>처럼 인문학 자체를 제목에 넣은 기획도 잇따랐다. 심리학, 철학, 사회학 등 인문학에 기존의 자기계발서 콘셉트를 가미한 인문 교양서도 ‘인문학’으로 분류돼 독자의 호응을 얻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자기계발서보다는 ‘있어 보이는’ ‘하이브리드 인문서’가 올해 대거 등장해 사랑받았다”고 말했다. 어린이책 시장에는 올해 처음 등장한 초등 1·2학년용 ‘통합교과’의 영향으로 관련 책들이 쏟아졌다.
팟캐스트, 텔레비전 바람
출판사들이 잇달아 새 매체 팟캐스트 방송을 열어 독자 잡기에 나서면서 책 시장에 팟캐스트 바람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5월 시작한 ‘이동진의 빨간책방’(위즈덤하우스)은 지금까지 누적 내려받기(다운로드) 수만 1600만을 넘어섰다. 서점가에는 “이번주에 빨간책방에서 소개한 책이 잘 팔리고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올해 문을 연 창비의 ‘라디오 책다방’, 어린이청소년문학 전문 출판사 푸른책들의 ‘푸른책방 북(BOOK)소리’, 문학동네의 ‘문학동네 채널1’, 휴머니스트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팟캐스트’도 인기를 끌었다.
책 시장이 전반적인 불황에 빠지면서, 책 판매에 방송 매체의 영향력은 갈수록 도드라진다. ‘소지섭 동화책’이 연관 검색어가 될 정도로 지난 9월 방송 드라마 <주군의 태양>에서 소씨가 읽은 일본 동화 <가부와 메이 이야기>의 인기는 대단했다. 초등학생용 동화책인 이 시리즈의 6권 전부가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20위 안에 들기도 했다.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를로르의 <꾸뻬씨의 행복여행>도 배우 이보영씨가 방송에서 소개한 뒤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출판사 쪽은 평가한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요즘에는 책을 만들면 편집자들끼리 ‘어떤 드라마에 꽂아야 팔리려나’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텔레비전 노출의 영향력이 커졌다”며 “올해 베스트셀러 순위는 유명 작가의 작품과 텔레비전 출연작으로 양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재기 논란 속 자정노력 확산
지난 5월 불거진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책에 대한 사재기 논란은 작가 황석영씨가 해당 책을 절판하겠다고 나서면서 더욱 뜨거운 이슈로 부각했다. 이에 출판계는 서점, 작가, 소비자 대표들과 손잡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출판진흥원) 산하에 출판유통심의위원회를 꾸리고 고강도 자정 노력에 나섰다. 출판유통심의위는 10월29일 사재기 도서 출판사의 출판단체 회원 자격 박탈,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즉각 제외, 관련 홈페이지 공지 등 제재를 가하는 내용의 ‘출판 유통질서 확립 자율협약’을 발표했다. 11월28일 출판유통심의위는 협약식 이후 처음으로 <한국경제신문>의 출판 법인인 한경비피(BP)에서 펴낸 자기계발서 두권에 대해 ‘사재기’라고 의결했다. 이에 따라 당시 자기계발서 분야 베스트셀러 1위(교보문고 기준)를 달리고 있던 <상처받지 않고 행복해지는 관계의 힘>이 즉각 순위에서 삭제됐다.
고소득층도 책 구입비 감소세
출판진흥원 통계를 보면 가구당 책 구입비 감소 추세도 지속됐다. 특히 책 구매 비중이 높던 소득 상위 20% 가구의 책 구입비도 감소 추세에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도시 근로자 가구(2인 이상)를 소득 5분위로 나눌 때 상위 20% 계층의 책 구입비가 전년 대비 25.9%나 감소했다. 올 들어선 2분기 상위 20% 계층의 책구입비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9% 늘었으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감소세가 뚜렷하다고 출판진흥원 쪽은 분석했다. 박호상 출판진흥원 정책개발팀 연구원은 “아웃도어, 여행, 다양한 문화상품 등에 대한 상류층의 문화 소비가 늘어나면서 반대로 책 구입비의 비중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며 “그에 비해 소득 기준 하위층의 경우 여전히 책을 통해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이 액수마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책 시장도 최근 2~3년째 독자가 줄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 어린이책 출판사 대표는 “업계에서는 올해 어린이책이 바닥을 쳤다고 표현하던데 바닥이면 앞으로 치고 올라가겠지만 이것이 과연 바닥인지 알 수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154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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