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철영 아이쿱 친환경클러스터 추진위원장 인터뷰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3000여 개의 협동조합이 생겨났다. 기본법 제정을 추진했던 이들도 협동조합이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얻으리라 생각지 못 했다고 한다. 그런 관심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는 협동조합에 대해 배울 곳이 거의 없어 보였다. 농협, 신협 등 50년이 넘은 협동조합들이 있지만 몇몇 개별 조합을 빼고는 '협동조합'이라기 보다는 '은행'에 가깝다. 그래서 스페인 몬드라곤 등 해외 협동조합 사례를 소개한 책들이 주목을 받았다.
그런 측면에서 30년 가까이 된 생활협동조합은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교과서라고 부를 수 있다. <프레시안>은 1993년부터 협동조합에 뛰어들어 지금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신철영 아이쿱생협사업연합회 친환경유기식품클러스터 추진위원회 신철영 집행위원장을 지난 19일 부천에서 만나 '협동조합 선배'로서의 조언을 구했다.
신 위원장은 "프레시안도 협동조합 기본법이 생기기 전에는 협동조합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느냐"며 "새로 생긴 협동조합들이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어떻든 앞으로 우리 사회에 상당히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신 위원장은 생협 사업 외에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의장,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 노사관계소위원회 위원장, 부천경실련 공동대표, 경실련 사무총장, 지방분권국민운동 공동대표,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 등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분야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신 위원장은 내년 괴산으로 이주해 아이쿱생협 친환경클러스터 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프레시안: 언제 어떤 계기로 생협을 시작하게 됐나.
신철영: 1992년에 민중당 후보로 부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었다. 당시 정당을 유지하려면 1.5%이상 득표를 해야 하는데, 250여 개 선거구에서 입후보자가 52명 밖에 안 됐다. 그래서 당선은 꿈도 못 꾸고 후보를 최대한 많이 내야 한다고 해서 석 달 준비하고 출마했다. 그런데 결국 정당은 해산 당했다.(웃음)
선거 치르고 나서 노동자만을 기반으로 운동 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생협을 시작했다. 1993년에 한우리생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1994년 한마음생협과 통합해 부천생협으로 이름을 바꾸고 내가 초대 이사장이 됐다.
프레시안: 아이쿱생협이 시작된 건 언제인가.
신철영: 처음에는 개별 조합들이 각자 구매를 했다. 마늘 사러 단양에 가고 쌀 사러 강화에 가고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다녔다. 그 당시 생협중앙회라는 도매 기능을 하는 조직이 있었는데, 우리밀 사업을 하다가 적자가 나서 사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개별 조합들이 연합해서 사업을 하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그 때 규모가 제법 큰 생협들이 수도권 사업 연합회를 출범시켜 두레 생협이 됐는데, 거기에 참여하지 못한 올망졸망한 생협 6개가 모여 1998년 아이쿱 생협연합회를 설립했다.
프레시안: 규모가 작은 생협들이 모였으면 초기 상황이 열악했을텐데.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나.
신철영: 1998년 결산을 해보니 아이쿱 연매출이 15억 원 정도였다. 한살림이 107억 원이었으니 7.7배인가 차이가 났다. 아이쿱 6개 생협 부채가 5억4000만 원 정도였는데, 연매출에 비하면 다 망하기 직전이었던 셈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부천생협에서 조합비 제도를 실험했다.(한살림 등은 출자금 5만 원 외에 별도의 조합비가 없으나 아이쿱 생협은 출자금 외에도 현재 월 1만3000원의 조합비를 낸다. 편집자) 조합비가 있기 전에는 한 가구가 월 5만 원 정도 구매를 했는데, 조합비 제도를 실시하니까 구매액이 20만 원으로 늘어났다. 조합원 할인 금액을 따져보면 많이 구매할 수록 이득이니까. 2001년에 조합비 제도를 전 조합으로 확대했다.
또 하나는 물류 혁신이다. 부천생협의 물동량이 트럭 반 대이고, 부평생협의 물동량이 트럭 반 대밖에 안 되는데 차량 유지비, 창고 임대료, 인건비는 트럭 한 대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이걸 합쳤다. 그러면 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물류 단계도 줄였다. 예전에는 농촌에서 구매를 하면 개별 조합으로 간 뒤, 개별 조합에서 조합원에게 배송이 됐는데, 물류센터를 만들어 개별 조합으로 가는 단계를 없애고 물류센터에서 바로 조합원에게 가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물류 단계 하나만 줄여도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가 있었다. 이와 더불어 인터넷 구매 배송 시스템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물류는 집중하고 대신 조직은 분화를 했다. 사업은 규모의 경제가 있으니 집중을 해야 하지만, 조직은 커지면 둔중해지고 조합원의 참여도도 떨어지니 계속 나눠왔다. 또한 우리는 약체로 출발했기 때문에 교육에도 사활을 걸었다. 아이쿱은 조합원 교육을 받아야만 가입을 할 수 있고, 가입 후에도 활동 실적이 거의 없으면 탈퇴를 권고하고 있다.
사실 협동조합에 대해 잘 알고 한 일이 아니다. 얼마 전 한신대 장종익 교수에게 부탁해 유럽의 생협 분석을 했다. 유럽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생협이 쇠퇴했고 이탈리아, 스웨덴이 흥한 편인데, 강력한 도매/물류 기능을 갖춘 곳이 살아남았다고 하더라. 유럽도 1980년대 이후 독점 대자본과의 경쟁에 내몰려 생협에도 경영위기가 왔는데 강력한 도매/물류 기능을 통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에 살아 남았다는 것이다. 무식한 시절 세운 원칙이었는데 꽤 괜찮은 원칙이었던 것 같다.
프레시안: IMF 외환위기 때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나.
신철영: 운이 좋게도 외환위기는 거의 겪지 않았다. 해마다 성장률이 50%대를 이뤘고 어떤 때는 100%에 가까울 때도 있었다. SBS의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방영됐을 때 반향이 컸고, 중국에서 멜라민 파동이 이는 등 식품 사고가 터지면서 사람들이 좀 더 안전한 먹거리를 추구하게 됐다. 얼마 전 조합원이 18만 명이 넘었다. 전국 가구의 1%에 해당된다.
프레시안: 새로 생긴 많은 협동조합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은행에서 협동조합의 출자금을 자본이 아닌 부채로 보기 때문에 어렵다고 한다. 아이쿱은 이런 어려움은 없었나.
신철영: 주식회사는 주식을 팔기 전에는 개인이 투자한 자금을 회수할 수 없다. 주식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이 생기고. 협동조합은 탈퇴하면 출자금을 돌려주기 때문에 출자금의 성격이 은행의 기준에 맞지 않을 수는 있다. 이에 협동조합에게는 농협, 신협, 새마을금고 같은 협동조합 금융이 중요한데, 이들은 협동조합이면서도 다른 협동조합에 대한 평가 기준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아이쿱도 협동조합 금융의 도움을 받은 일이 거의 없다. 주거래은행도 국민은행이다. 그것도 CMS 거래를 위해 은행이 필요했는데, 한 군데도 받아주지 않다가 조합원의 도움으로 국민은행에 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다. 지금은 국민은행에게도 상당한 이득이겠지.
프레시안: 괴산, 구례 등지에 대규모 클러스터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을텐데, 제도권 은행 대출이 어렵다면 자금 조달은 어떻게 했나.
신철영: 아이쿱에는 조합원들에게 돈을 꾸는 전통이 있다. 2000년 말에 시흥에 있는 물류 창고에 불이 났었다. 비상이었다. 실무자에게 당장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보니 현금 2억50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돈을 구할 방법이 없어 난감했다. 비상대표자회의에서 협동조합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다. 화이트보드 하나 놓고 이사는 1인당 1000만 원을 내고 큰 조합은 조금 많이, 작은 조합은 조금 덜 내기로 했다. 상근 직원들도 한 달치 월급을 반납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공짜로 내라고 할 수 없으니 1년 동안 차입을 하기로 했다. 기억하기로 당시 은행 정기예금 이자가 연 10% 정도였던 것 같은데, 우리도 연 10% 이자를 주겠다고 했다. 다만 5%는 개인에게 현금으로 주고 나머지 5%는 조합에 출자를 하도록 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모금을 해보니 2억8600만 원 정도 모였다. 형편대로 100만 원을 낸 사람도 있고 50만 원을 낸 사람도 있고, 일본 생협에서도 800만 원을 보내왔다.
조합원들은 '불이 나서 망했다'고 끝낼 수 없다는 의지가 있었고, 아이쿱이 망하지는 않을 거라는 신뢰도 있었다. 당시 돈을 꾸러 다니면서 "1년 후에는 반드시 갚는다. 갚는 자리에서 다시 꾸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갚는다"고 얘기했다. 결국 1년 뒤 다 갚았다.
그 때부터 돈이 필요하면 조합원들에게 차입한다는 전통이 생겼다. 은행이 돈을 빌려줄 리도 없거니와 은행에 낼 이자, 조합원들에게 내자는 의도도 있었다. 2008년 괴산 클러스터를 추진하면서 모금을 진행했는데, 1구좌를 1000만 원으로 했다. 목돈 있는 사람은 목돈을 내고, 목돈이 없는 사람은 적금식으로 3년에 걸쳐 낼 수 있게 했다. 요즘 은행 예금 금리가 2%대인데, 우리는 세후 4.7%를 준다. 아이쿱이 3년 안에 망하지 않으면 조합원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이런 방식으로 괴산 클러스터 자금 4000구좌 400억 이상을 조성했다. 구례 클러스터도 200억 이상이 모였다.
프레시안: 자금은 마련이 됐지만 괴산 클러스터의 경우 생각보다 추진 일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 같다.
신철영: 땅을 매입하는 과정이 더뎠다. 소유 관계가 복잡한 경우가 많아 대규모 부지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다. 중간에 구례 클러스터라는 변수도 생겼다. 우리 계획에 영호남에 하나씩 물류와 생산단지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는데, 마침 구례에 좋은 조건의 단지가 나와 구례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지금은 괴산에도 200만 평 규모의 부지와 별도의 농공단지가 마련돼서 내년부터는 사업을 본격 추진하게 된다.
프레시안: 아이쿱 친환경 클러스터에 입주하는 기업들도 협동조합인가?
신철영: 지금은 없다. 협동조합 기본법 추진 단계부터 아이쿱 관련 기업들에게 협동조합을 장려하고 있기는 한데, 대부분 유기농 기업이 영세하고 시장이 좁아서 아직은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앞서 클러스터에 입주하는 기업들에게 회사의 주식 49%는 지역 주민들에게 공개할 생각을 하라고 얘기는 하고 있다.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농민들인데, 지금은 농민들이 농업 소득에만 의존해 살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농민들이 자체적으로 기업을 만들기도 하지만 경영에 익숙치 않아 어려움을 겪는 데가 많다. 차라리 기업 경영은 경영 전문가에게 맞기고 농민들은 취업도 할 수 있고 이런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지 않을까 한다.
프레시안: 괴산 클러스터에는 생태마을 계획도 있는데.
신철영: 공장을 지을 때도 먼저 땅을 밀어버린 뒤에 공장 짓고 따로 공원 만들고 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캠퍼스형으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공장은 완전히 개방할 생각이다. 견학을 오면 사람들이 유리창을 통해 생산의 전과정을 지켜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주변 마을도 건물을 높이 짓지 않고 마을 안에는 소방차나 구급차 등 응급 차량만 들어가게 하고 차는 마을 밖 차고에 두는 차 없는 마을을 생각하고 있다.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전기자동차 정도는 둘 수 있겠다. 생태건축을 통한 에너지 자립도 생각하고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지열도 이용해야겠지만 나무 자원에서 에너지를 얻는 방법도 구상 중이다. 아직 실행 단계는 아니다. 결국 기술과 돈의 문제이기 때문에 경제성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병원과 학교도 지어야 하는데, 요즘은 대학교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구상하고 있다. 대안학교들이 있지만 고등학교 졸업하면 갈 곳이 없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다른 데서도 대안 대학에 대한 논의가 있긴 한데, 우리는 기술학교로 출발하면 어떨까 한다. 기술 교육을 먼저 실시한 다음에 다른 학문 영역으로 넓혀갈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생각만 하고 있다.(웃음) 이밖에 그린 투어리즘 등도 구상 중이다.
무엇보다 마을을 만들어 정착하는 과정에서 기존 주민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변화를 시켜 나갈 것이냐의 과제가 중요하다. 몇 사람 이주하면 원래 마을에 묻혀 버리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이주를 하면 원주민들과 담이 쳐진 별종들 동네가 될 수도 있다. 이를 허물고 기존 주민들과 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내년에는 나부터 괴산으로 이주할 계획이다.
프레시안: 1년 동안 3000여 개의 협동조합이 생겼다. 협동조합 선배로서 이런 현상을 평가한다면.
신철영: 기본법이 지금보다 더 정비가 되면 특별법에 의한 기존의 협동조합들은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농촌에 있는 작목반들이 기본법에 의한 협동조합으로 전환이 되면 농협에 강력한 도전 세력이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농협이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사실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을 추진한 사람들도 이 법이 도대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까 잘 모르고 있었다. 어떻든 상당히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프레시안도 그렇지 않나.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뒤 경영이 나아졌는지는 모르겠으나 협동조합 기본법이 없을 때는 협동조합을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을 것 아닌가.
빵집들의 경우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시장의 90%를 차지했다고 하는데, 요즘은 동네 빵집들이 모여서 공동 브랜드를 만들고 공동 구매를 하고 기술 교류를 하면서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고 하더라. 얘기를 들어보니 어느 지역에서는 6개 빵집이 모여 어느 빵집은 샌드위치를 잘하고, 어느 빵집은 크림빵을 잘 만들고 이렇게 특화 시켜서 영업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정부에서는 골목상권을 보호한다고 악을 쓰고 있는데, 골목 슈퍼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구매력을 키워 지금보다 나은 가격에 좋은 물건을 사올 수 있으면 골목 슈퍼의 장점에 가격 경쟁력까지 생겨 자생력을 키울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조금만 지원해도 이전보다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프레시안: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해 협동조합 기본법 등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철영: 대표적인 예로 주택협동조합을 들 수 있다. 주택협동조합이 협동조합으로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조합이 부동산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수도권 지역에 신생 법인이 부동산을 취득하면 3배의 중과세를 하게 돼 있다. 하지만 주택협동조합이 잘 되게 하겠다고 이 규제를 푼다고 주택협동조합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작용만 늘어날 수 있다. 협동조합을 위해 제도 개선을 하면 엉뚱한 세력만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의료생협도 법을 만들어 놓으니 이른바 '사무장 병원'들이 우후죽순 생겨서 진짜 의료생협들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간판을 바꿔 다는 주객전도 현상이 나오지 않았나.
제도 개선은 신중해야 한다. 시민사회진영의 실책 중 하나가 법과 제도를 마련해 두기만 하면 잘 작동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주민자치위원회, 학교운영위원회 등 자치 제도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지역 유지들이 자리 차지하고 있지 않나. 제도 도입 이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이냐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라는 그루터기는 있는게 낫다. 생협법도 1998년에 생겼는데, 당시 슈퍼하는 분들이 반대해 법이 누더기가 됐다. 생협 진영에서는 법을 받자 말자 논란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 정도의 법이라도 필요했다. 문제는 힘이 얼마나 있느냐다. 당시에 생협이 지금 정도만 됐어도 법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힘이 약하면 엉뚱한 사람들만 좋은 일 시킬 수도 있다.
프레시안: 마지막으로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 중인 후배들에게 조언을 할 것이 있다면.
신철영: 초기에는 다 어렵다. 우리도 어려웠다. 결사를 하고 난 뒤 핵심 일꾼들이 자기 돈을 갖다 쓰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럴 때 잘 못 생각하면 요령만 부리게 될 수 있다. 사업적인 이득만 추구하거나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을 방법만 찾게 된다. 이득을 추구하거나 정부의 지원을 아예 받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조합원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으면서 꾸준하게 갈 수 있어야 협동조합이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앞으로 협동조합의 숲이 조성돼서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협동조합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정착 시키고 복지 사회로 나아가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30년 가까이 된 생활협동조합은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교과서라고 부를 수 있다. <프레시안>은 1993년부터 협동조합에 뛰어들어 지금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신철영 아이쿱생협사업연합회 친환경유기식품클러스터 추진위원회 신철영 집행위원장을 지난 19일 부천에서 만나 '협동조합 선배'로서의 조언을 구했다.
▲ 신철영 집행위원장. ⓒ프레시안(김하영) |
신 위원장은 생협 사업 외에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의장,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 노사관계소위원회 위원장, 부천경실련 공동대표, 경실련 사무총장, 지방분권국민운동 공동대표,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 등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분야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신 위원장은 내년 괴산으로 이주해 아이쿱생협 친환경클러스터 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프레시안: 언제 어떤 계기로 생협을 시작하게 됐나.
신철영: 1992년에 민중당 후보로 부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었다. 당시 정당을 유지하려면 1.5%이상 득표를 해야 하는데, 250여 개 선거구에서 입후보자가 52명 밖에 안 됐다. 그래서 당선은 꿈도 못 꾸고 후보를 최대한 많이 내야 한다고 해서 석 달 준비하고 출마했다. 그런데 결국 정당은 해산 당했다.(웃음)
선거 치르고 나서 노동자만을 기반으로 운동 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생협을 시작했다. 1993년에 한우리생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1994년 한마음생협과 통합해 부천생협으로 이름을 바꾸고 내가 초대 이사장이 됐다.
프레시안: 아이쿱생협이 시작된 건 언제인가.
신철영: 처음에는 개별 조합들이 각자 구매를 했다. 마늘 사러 단양에 가고 쌀 사러 강화에 가고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다녔다. 그 당시 생협중앙회라는 도매 기능을 하는 조직이 있었는데, 우리밀 사업을 하다가 적자가 나서 사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개별 조합들이 연합해서 사업을 하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그 때 규모가 제법 큰 생협들이 수도권 사업 연합회를 출범시켜 두레 생협이 됐는데, 거기에 참여하지 못한 올망졸망한 생협 6개가 모여 1998년 아이쿱 생협연합회를 설립했다.
프레시안: 규모가 작은 생협들이 모였으면 초기 상황이 열악했을텐데.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나.
신철영: 1998년 결산을 해보니 아이쿱 연매출이 15억 원 정도였다. 한살림이 107억 원이었으니 7.7배인가 차이가 났다. 아이쿱 6개 생협 부채가 5억4000만 원 정도였는데, 연매출에 비하면 다 망하기 직전이었던 셈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부천생협에서 조합비 제도를 실험했다.(한살림 등은 출자금 5만 원 외에 별도의 조합비가 없으나 아이쿱 생협은 출자금 외에도 현재 월 1만3000원의 조합비를 낸다. 편집자) 조합비가 있기 전에는 한 가구가 월 5만 원 정도 구매를 했는데, 조합비 제도를 실시하니까 구매액이 20만 원으로 늘어났다. 조합원 할인 금액을 따져보면 많이 구매할 수록 이득이니까. 2001년에 조합비 제도를 전 조합으로 확대했다.
또 하나는 물류 혁신이다. 부천생협의 물동량이 트럭 반 대이고, 부평생협의 물동량이 트럭 반 대밖에 안 되는데 차량 유지비, 창고 임대료, 인건비는 트럭 한 대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이걸 합쳤다. 그러면 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물류 단계도 줄였다. 예전에는 농촌에서 구매를 하면 개별 조합으로 간 뒤, 개별 조합에서 조합원에게 배송이 됐는데, 물류센터를 만들어 개별 조합으로 가는 단계를 없애고 물류센터에서 바로 조합원에게 가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물류 단계 하나만 줄여도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가 있었다. 이와 더불어 인터넷 구매 배송 시스템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물류는 집중하고 대신 조직은 분화를 했다. 사업은 규모의 경제가 있으니 집중을 해야 하지만, 조직은 커지면 둔중해지고 조합원의 참여도도 떨어지니 계속 나눠왔다. 또한 우리는 약체로 출발했기 때문에 교육에도 사활을 걸었다. 아이쿱은 조합원 교육을 받아야만 가입을 할 수 있고, 가입 후에도 활동 실적이 거의 없으면 탈퇴를 권고하고 있다.
사실 협동조합에 대해 잘 알고 한 일이 아니다. 얼마 전 한신대 장종익 교수에게 부탁해 유럽의 생협 분석을 했다. 유럽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생협이 쇠퇴했고 이탈리아, 스웨덴이 흥한 편인데, 강력한 도매/물류 기능을 갖춘 곳이 살아남았다고 하더라. 유럽도 1980년대 이후 독점 대자본과의 경쟁에 내몰려 생협에도 경영위기가 왔는데 강력한 도매/물류 기능을 통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에 살아 남았다는 것이다. 무식한 시절 세운 원칙이었는데 꽤 괜찮은 원칙이었던 것 같다.
프레시안: IMF 외환위기 때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나.
신철영: 운이 좋게도 외환위기는 거의 겪지 않았다. 해마다 성장률이 50%대를 이뤘고 어떤 때는 100%에 가까울 때도 있었다. SBS의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방영됐을 때 반향이 컸고, 중국에서 멜라민 파동이 이는 등 식품 사고가 터지면서 사람들이 좀 더 안전한 먹거리를 추구하게 됐다. 얼마 전 조합원이 18만 명이 넘었다. 전국 가구의 1%에 해당된다.
프레시안: 새로 생긴 많은 협동조합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은행에서 협동조합의 출자금을 자본이 아닌 부채로 보기 때문에 어렵다고 한다. 아이쿱은 이런 어려움은 없었나.
신철영: 주식회사는 주식을 팔기 전에는 개인이 투자한 자금을 회수할 수 없다. 주식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이 생기고. 협동조합은 탈퇴하면 출자금을 돌려주기 때문에 출자금의 성격이 은행의 기준에 맞지 않을 수는 있다. 이에 협동조합에게는 농협, 신협, 새마을금고 같은 협동조합 금융이 중요한데, 이들은 협동조합이면서도 다른 협동조합에 대한 평가 기준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아이쿱도 협동조합 금융의 도움을 받은 일이 거의 없다. 주거래은행도 국민은행이다. 그것도 CMS 거래를 위해 은행이 필요했는데, 한 군데도 받아주지 않다가 조합원의 도움으로 국민은행에 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다. 지금은 국민은행에게도 상당한 이득이겠지.
프레시안: 괴산, 구례 등지에 대규모 클러스터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을텐데, 제도권 은행 대출이 어렵다면 자금 조달은 어떻게 했나.
신철영: 아이쿱에는 조합원들에게 돈을 꾸는 전통이 있다. 2000년 말에 시흥에 있는 물류 창고에 불이 났었다. 비상이었다. 실무자에게 당장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보니 현금 2억50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돈을 구할 방법이 없어 난감했다. 비상대표자회의에서 협동조합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다. 화이트보드 하나 놓고 이사는 1인당 1000만 원을 내고 큰 조합은 조금 많이, 작은 조합은 조금 덜 내기로 했다. 상근 직원들도 한 달치 월급을 반납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공짜로 내라고 할 수 없으니 1년 동안 차입을 하기로 했다. 기억하기로 당시 은행 정기예금 이자가 연 10% 정도였던 것 같은데, 우리도 연 10% 이자를 주겠다고 했다. 다만 5%는 개인에게 현금으로 주고 나머지 5%는 조합에 출자를 하도록 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모금을 해보니 2억8600만 원 정도 모였다. 형편대로 100만 원을 낸 사람도 있고 50만 원을 낸 사람도 있고, 일본 생협에서도 800만 원을 보내왔다.
조합원들은 '불이 나서 망했다'고 끝낼 수 없다는 의지가 있었고, 아이쿱이 망하지는 않을 거라는 신뢰도 있었다. 당시 돈을 꾸러 다니면서 "1년 후에는 반드시 갚는다. 갚는 자리에서 다시 꾸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갚는다"고 얘기했다. 결국 1년 뒤 다 갚았다.
그 때부터 돈이 필요하면 조합원들에게 차입한다는 전통이 생겼다. 은행이 돈을 빌려줄 리도 없거니와 은행에 낼 이자, 조합원들에게 내자는 의도도 있었다. 2008년 괴산 클러스터를 추진하면서 모금을 진행했는데, 1구좌를 1000만 원으로 했다. 목돈 있는 사람은 목돈을 내고, 목돈이 없는 사람은 적금식으로 3년에 걸쳐 낼 수 있게 했다. 요즘 은행 예금 금리가 2%대인데, 우리는 세후 4.7%를 준다. 아이쿱이 3년 안에 망하지 않으면 조합원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이런 방식으로 괴산 클러스터 자금 4000구좌 400억 이상을 조성했다. 구례 클러스터도 200억 이상이 모였다.
프레시안: 자금은 마련이 됐지만 괴산 클러스터의 경우 생각보다 추진 일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 같다.
신철영: 땅을 매입하는 과정이 더뎠다. 소유 관계가 복잡한 경우가 많아 대규모 부지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다. 중간에 구례 클러스터라는 변수도 생겼다. 우리 계획에 영호남에 하나씩 물류와 생산단지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는데, 마침 구례에 좋은 조건의 단지가 나와 구례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지금은 괴산에도 200만 평 규모의 부지와 별도의 농공단지가 마련돼서 내년부터는 사업을 본격 추진하게 된다.
▲ 아이쿱 친환경클러스터의 '생협밸리' 구상도. 구상 단계로 아직 계획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아이쿱 |
프레시안: 아이쿱 친환경 클러스터에 입주하는 기업들도 협동조합인가?
신철영: 지금은 없다. 협동조합 기본법 추진 단계부터 아이쿱 관련 기업들에게 협동조합을 장려하고 있기는 한데, 대부분 유기농 기업이 영세하고 시장이 좁아서 아직은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앞서 클러스터에 입주하는 기업들에게 회사의 주식 49%는 지역 주민들에게 공개할 생각을 하라고 얘기는 하고 있다.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농민들인데, 지금은 농민들이 농업 소득에만 의존해 살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농민들이 자체적으로 기업을 만들기도 하지만 경영에 익숙치 않아 어려움을 겪는 데가 많다. 차라리 기업 경영은 경영 전문가에게 맞기고 농민들은 취업도 할 수 있고 이런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지 않을까 한다.
프레시안: 괴산 클러스터에는 생태마을 계획도 있는데.
신철영: 공장을 지을 때도 먼저 땅을 밀어버린 뒤에 공장 짓고 따로 공원 만들고 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캠퍼스형으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공장은 완전히 개방할 생각이다. 견학을 오면 사람들이 유리창을 통해 생산의 전과정을 지켜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주변 마을도 건물을 높이 짓지 않고 마을 안에는 소방차나 구급차 등 응급 차량만 들어가게 하고 차는 마을 밖 차고에 두는 차 없는 마을을 생각하고 있다.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전기자동차 정도는 둘 수 있겠다. 생태건축을 통한 에너지 자립도 생각하고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지열도 이용해야겠지만 나무 자원에서 에너지를 얻는 방법도 구상 중이다. 아직 실행 단계는 아니다. 결국 기술과 돈의 문제이기 때문에 경제성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병원과 학교도 지어야 하는데, 요즘은 대학교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구상하고 있다. 대안학교들이 있지만 고등학교 졸업하면 갈 곳이 없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다른 데서도 대안 대학에 대한 논의가 있긴 한데, 우리는 기술학교로 출발하면 어떨까 한다. 기술 교육을 먼저 실시한 다음에 다른 학문 영역으로 넓혀갈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생각만 하고 있다.(웃음) 이밖에 그린 투어리즘 등도 구상 중이다.
무엇보다 마을을 만들어 정착하는 과정에서 기존 주민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변화를 시켜 나갈 것이냐의 과제가 중요하다. 몇 사람 이주하면 원래 마을에 묻혀 버리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이주를 하면 원주민들과 담이 쳐진 별종들 동네가 될 수도 있다. 이를 허물고 기존 주민들과 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내년에는 나부터 괴산으로 이주할 계획이다.
프레시안: 1년 동안 3000여 개의 협동조합이 생겼다. 협동조합 선배로서 이런 현상을 평가한다면.
신철영: 기본법이 지금보다 더 정비가 되면 특별법에 의한 기존의 협동조합들은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농촌에 있는 작목반들이 기본법에 의한 협동조합으로 전환이 되면 농협에 강력한 도전 세력이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농협이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사실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을 추진한 사람들도 이 법이 도대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까 잘 모르고 있었다. 어떻든 상당히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프레시안도 그렇지 않나.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뒤 경영이 나아졌는지는 모르겠으나 협동조합 기본법이 없을 때는 협동조합을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을 것 아닌가.
빵집들의 경우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시장의 90%를 차지했다고 하는데, 요즘은 동네 빵집들이 모여서 공동 브랜드를 만들고 공동 구매를 하고 기술 교류를 하면서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고 하더라. 얘기를 들어보니 어느 지역에서는 6개 빵집이 모여 어느 빵집은 샌드위치를 잘하고, 어느 빵집은 크림빵을 잘 만들고 이렇게 특화 시켜서 영업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정부에서는 골목상권을 보호한다고 악을 쓰고 있는데, 골목 슈퍼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구매력을 키워 지금보다 나은 가격에 좋은 물건을 사올 수 있으면 골목 슈퍼의 장점에 가격 경쟁력까지 생겨 자생력을 키울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조금만 지원해도 이전보다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프레시안: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해 협동조합 기본법 등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철영: 대표적인 예로 주택협동조합을 들 수 있다. 주택협동조합이 협동조합으로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조합이 부동산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수도권 지역에 신생 법인이 부동산을 취득하면 3배의 중과세를 하게 돼 있다. 하지만 주택협동조합이 잘 되게 하겠다고 이 규제를 푼다고 주택협동조합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작용만 늘어날 수 있다. 협동조합을 위해 제도 개선을 하면 엉뚱한 세력만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의료생협도 법을 만들어 놓으니 이른바 '사무장 병원'들이 우후죽순 생겨서 진짜 의료생협들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간판을 바꿔 다는 주객전도 현상이 나오지 않았나.
제도 개선은 신중해야 한다. 시민사회진영의 실책 중 하나가 법과 제도를 마련해 두기만 하면 잘 작동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주민자치위원회, 학교운영위원회 등 자치 제도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지역 유지들이 자리 차지하고 있지 않나. 제도 도입 이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이냐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라는 그루터기는 있는게 낫다. 생협법도 1998년에 생겼는데, 당시 슈퍼하는 분들이 반대해 법이 누더기가 됐다. 생협 진영에서는 법을 받자 말자 논란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 정도의 법이라도 필요했다. 문제는 힘이 얼마나 있느냐다. 당시에 생협이 지금 정도만 됐어도 법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힘이 약하면 엉뚱한 사람들만 좋은 일 시킬 수도 있다.
프레시안: 마지막으로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 중인 후배들에게 조언을 할 것이 있다면.
신철영: 초기에는 다 어렵다. 우리도 어려웠다. 결사를 하고 난 뒤 핵심 일꾼들이 자기 돈을 갖다 쓰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럴 때 잘 못 생각하면 요령만 부리게 될 수 있다. 사업적인 이득만 추구하거나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을 방법만 찾게 된다. 이득을 추구하거나 정부의 지원을 아예 받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조합원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으면서 꾸준하게 갈 수 있어야 협동조합이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앞으로 협동조합의 숲이 조성돼서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협동조합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정착 시키고 복지 사회로 나아가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_facebook.asp?article_num=601312241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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