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세미나·저널·강좌·출판 활동…앞선 연구로 ‘급진적’ 평가도
ㆍ페미니즘 연구 늘 암흑기지만 지금이 더 어색한 시대인 듯
한국 사회에서 이윤을 목적으로 모이거나 종교적 신념으로 뭉치지 않은 집단이 20년 넘게 독자 생존하기는 쉽지 않다. 운동단체가 아닌 학술·연구단체, 그것도 ‘마이너’한 주제인 여성주의를 다루는 경우라면 더 힘들다.페미니스트 연구공동체를 지향하는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이하 여이연)의 20년은 그 자체로 ‘역사’다. 1997년 9월 설립된 여이연은 줄곧 제도권 밖에서 ‘세미나-저널-강좌-출판’의 네 가지 축을 통해 새로운 담론을 생산해왔다. 최근 페미니즘 열풍이 일면서 과거 펴낸 책들이 다시 소환되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여이연이 구축한 담론의 저력을 들여다볼 수 있는 현상이다.
지난 7일 여이연이 21년째 둥지를 틀고 있는 서울 혜화동의 사무실을 찾았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5층 다락방에 들어서니 낡은 책 냄새가 확 밀려왔다. 원년멤버로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임옥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62)와 이현재 대표(49·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한우리 운영위원(33·영문과 박사과정생)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이연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대표하는 이들과 함께 그간의 성과와 과제, 현재 페미니즘 물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페미니즘의 죽음부터 부활까지…“그럼에도 살아남았다”
- 여이연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임옥희 이사장 = 시작할 때부터 참여한 묵은 세대다.
이현재 대표 = 2006년부터 활동한 늦깎이다.
한우리 운영위원 = 학부 때부터 강좌를 들었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면서 세미나에 참석했다.
- 21년째 소회는.
임 = 2000년대 들어 페미니즘의 죽음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힘든 시기도 겪었다. 지금은 N개의 페미니즘이 존재하는 시대다. 페미니즘이 핵분열을 일으킨다. 재미있는 현상이 되살아난 것 같다.
이 = 20주년 기념행사 때 ‘굿즈’로 만든 가방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존했다(Nevertheless we persisted)’고 적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한 = 늘 암흑기였던 것 같다.
임 = 지금 상황이 더 어색하다. 많은 사람들이 해시태그에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선언하는 시대가 얼마나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 ‘여성문화이론’에 담긴 의미는.
이 = 인문학의 주요 담론을 가져와서 여성주의 안에 깔린 근본 개념이나 사고방식을 질문하는 데 주력했다. 급진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시대를 너무 앞서나갔다. 당시 낸 책들이 판권 계약 만료로 절판됐는데, 지금 필요한 책들이다.
임 = 페미니즘을 가르치며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서 제도권 밖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이론을 생산할지 고민했다. 한국 페미니즘 언어를 만들어내려고 했다.
■ 제도권 밖에서 여성 담론을 이끌다
- 가장 의미 있는 담론은.
임 = 지금 주디스 버틀러의 책을 안 읽어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여/성이론’ 창간호에서 버틀러에 관해 글을 썼을 때만 해도 ‘도대체 버틀러가 누구야’라고 이야기했다. 이제는 버틀러가 가진 현재성을 맥락화시켜 과거와 달리 버틀러를 이해하려는 듯하다.
이 = 20주년을 맞아 ‘여/성이론’에 수록된 논문을 쭉 살펴보는데, 지금 논의되는 것들을 이미 해서 놀랐다. 문학·영화·드라마 비평 등 페미니즘 문화비평도 우리 줄기의 하나였고, 재생산과 생산의 노동관계 담론도 이끌었다. 페미니즘 정신분석도 돈이 되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했다. 성노동 논쟁도 그랬다. 미운 짓만 많이 한 것 같다(웃음).
임 =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까지는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가지고 제도에 들어가 정책결정을 하는 ‘페모크라트’가 생산됐다. 그 이후 페미니즘이 곤두박질치는 시기가 왔다. 제도 바깥에서 비판의 목소리와 언어를 생산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연구소의 힘이었다.
이 = 퀴어이론도 선점해서 많이 했다. 지금 밀고 있는 이론은 교차성 페미니즘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한 = 워마드 계열의 자칭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여자만 안고 가겠다’고 한다. 성소수자·트랜스젠더 등 여성이 아닌 사람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면 ‘꿘페미’(운동권 페미니스트) 또는 ‘쓰까 페미’(섞는다), ‘교차 페미’로 부르면서 ‘래디컬 대 교차’라는 프레임이 생겼다. 이 대립 자체가 잘못됐다.
임 = ‘여자만’이라는 논리는 생물학적 근본주의에 입각해 있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인 것으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것인지를 말한다. 젠더는 관계적인 개념이고 젠더 안에는 권력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얼마 전 임은정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은)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관계, 갑을관계라고 지적했다.
이 = 교차성 논의는 페미니즘 진영 내 통합이 아니라 논의 풍성화의 전략이다.
■ 페미니즘은 우리 안의 타자를 돌보는 것…실천의 기초가 되는 담론
- 성폭력 고발 등 최근 여성이슈에도 대응하나.
이 = 담론의 문제로 풀다보니 한 박자 느릴 때도 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정형화된 모습이 존재하는데, 피해자 담론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를 논의한다. 예를 들어 한샘 성폭력 사건에서 보듯이 피해자는 섹슈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법적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얼마든지 욕구나 지향성을 가지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한 = 요즘 나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감각을 가지면 페미니스트라는 생각이 만연한데, 그건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에 가깝다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존재의 양식을 바꾸는 일이다. 어떻게 사고하고 세상을 바라보고 관계 맺는지를 고민하는 게 페미니스트다.
이 = 실천이 지속되려면 방향 설정이 필요하고, 담론이라는 기초가 필요하다.
- 20주년 기념으로 펴낸 <다락방 이야기>에서 엄마, 돌봄노동자 등 현실의 여성 주체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고 말한다.
한 = 모든 페미니즘은 여성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소수자를 배제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방식을 계속 고민한다.
이 = 여성의 경험도, 특히 계급차가 있을 경우 너무나 다르다. 트랜스젠더가 성노동을 하는 이유는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결과적으로 남녀 임금격차를 가져온다. 페미니즘은 우리 안의 타자를 돌보는 것이다. 그들과 손잡는 의제를 더 찾아내려고 한다. 퀴어 관련 일을 하는 이유도 제대로 된 여성주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한 = ‘여자만 안고 간다’고 할 때 여자는 추상화되고 뭉뚱그려진 덩어리다. 교차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구체적인 여성의 이야기, 살아 있는 여성의 위치와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
임 = 여성은 나이·인종·장애·계급·제3세계·이주민 등 여러 정체성을 다 가로지르는 것으로 구성된다.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자원이 너무나 빈약한데, 그중에도 위계가 있다. 여성이 직장생활을 하려면 다른 여성을 고용해야 한다. 같은 여성 내에도 갑을관계가 생긴다. 여자들끼리의 싸움이 아닌데도 여자에게 아웃소싱된 문제들 때문에 싸우고 경쟁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여성들도 서로 자원을 나눠야 한다. 페미니즘이 수행해야 하는 여성의 정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 한국 여성운동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는데.
임 = 모든 여성들이 한목소리를 낸 사안이 호주제 폐지였다. 신자유주의 시대 자원을 둘러싼 갑을, 권력관계로 을이 되는 남자도 존재한다. 페미니즘은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모두가 해방되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삶과 사회를 구성하는 것을 지향한다. 여성의 이해만 주장한다면 페미니즘의 의미를 하향평준화하는 것이다.
이 = 운동권 내에서 페미니즘을 등한시한 것, 이른바 ‘적녹보 패러다임’에서 성계급이 근본 모순이라는 점도 각성시켰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당시에는 성노동 이슈화도 적극적으로 했다.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당시 성명서도 냈다. 촛불집회 때는 ‘페미존’을 함께 만들었고, 박근혜 정권을 가부장적 카르텔로 명명했다.
■ 후속세대 양성이 과제
- 제도권 여성학 입지가 좁아졌다. 앞으로 활동은. 미래는.
임 = 여성학과는 이화여대, 계명대밖에 없다. 나머지는 협동과정인데 그나마도 성신여대, 숙명여대는 폐지했다. 페미니즘이 일자리 창출이 안된다는 생각이 있다. 페미니즘이 학문으로 재생산될 역량은 계속 쪼그라들 것이다.
이 = (그나마) 요즘 학과에서 페미니즘 철학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페미니즘 담론을 주도하고 풍성화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가장 절실한 것은 후속세대 양성이다. 페미니즘을 하면서 먹고살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나 때까지만 해도 희생정신이나 공동체의식으로 가능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이연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보니 마음이 편하다. 서로에게 강한 통일성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왔다.
임 = 활동 초창기부터 운동으로서의 출판을 해왔다. 대형 출판사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세미나 참석자들이 논의한 것들을 책으로 묶어내면서 이론실천을 했다. <딸에 대하여>라는 소설을 보는데, 가족 없이 혼자 늙어가는 여자의 삶이 마치 페미니즘의 미래 같다고 느꼈다. 가난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미래세대에 같이하자고는 못하지 않을까. 여기는 보수부터 좌파, 안티 페미니즘까지 다 있다. 혼종성, 다성성 때문에 지속적인 가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본다.
한 = 그래서 살아남았다. 두 분은 (미래가) 비관적인 것 같다(웃음). 계속해서 강좌나 세미나를 여는 게 중요하다. 20년간 그 역할을 해왔다. 여성단체 활동가부터 대학생, 직장인, 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는 접속의 공간이 여이연이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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