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러 서점에 들러보면 규모와 무관하게 한산한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규모가 크고 시설도 제법 깨끗한 체인형 중고서점에 가보면 사정이 다르다. 손님들로 활기가 느껴질 정도다. 이른바 3대 기업형 중고서점(알라딘, 예스24, 개똥이네)의 전국 매장 수만 83개에 이른다. 새 책 판매는 어렵고 중고책만 날개를 단 근래의 출판시장 동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며칠 전 발표된 ‘2017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한국출판연구소, 문화체육관광부) 결과를 봐도, 도서 구입처 중 주로 중고서점을 이용하는 사람의 비율은 성인이 ’13년 1.5%, ’15년 2.4%, ’17년 3.1%이고, 초중고 학생은 ’13년 2.0%, ’15년 3.4%, ’17년 4.9%로 4년 전 대비 2배씩의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중고책의 전체 출판시장 대비 점유율은 아직 적은 편이지만 새 책 판매가 아닌 2차 시장(중고책 매매) 규모가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면서 새 책 시장을 상당 부분 침식 내지 대체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해는 대표적인 중고책 업체인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온라인에서 중고책을 취급하기 시작한지 10년, 오프라인 매장 영업을 개시한지 8년차가 되는 해이다.
기업형 중고서점 매출 3천억 원대, 새 책 출판시장 손실액 7.6%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국 중고서점 수는 약 500개 정도다. 이 가운데 기업형 중고서점 매장 수는 약 20% 정도이지만 오프라인 중고서점 매출액의 80%를 차지한다. 파레토 법칙(80:20 법칙)과 일치하는 수치다.
중고책 시장은 매장과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 업체의 소비자 매매(B2C), 판매자와 수요자 간의 직거래(C2C, P2P, 오픈마켓) 방식으로 각각 약 2천억 원(1천984억 원)과 1천300억 원(1천35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최소액(약 1천억 원) 기준이라 해도 현재의 단행본 출판시장 규모로 보면 연간 7.6% 정도의 새 책 판매 기회를 잠식한 셈이다.
개인이 경영하는 중고서점은 한국전쟁 이후 형성돼 전국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1970년대까지 번창했으나 차츰 쇠퇴기를 맞이했다. 현재처럼 기업형 중고서점이 주도하는 시장이 발달한 것은 1990년대 후반 인터넷서점의 중고도서 판매, 그리고 2011년 이후 인터넷서점의 오프라인 매장 확대와 궤를 함께 한다. 전통적인 개인 경영 중고서점은 신간 판매 시장을 보완하는 2차 시장으로서의 기능이 강했다. 절판된 책, 오래 전에 발행된 책을 구할 수 있고, 호주머니가 가벼운 독자들이 저렴하게 헌 책을 구매하는 보조적인 유통 경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의 기업형 중고서점은 바이백 영업(새 책을 50% 가격에 매입)으로 중고 상품을 대량 양산하거나, 인터넷서점의 새 책 판매 코너에서 중고책을 함께 소개하는 등 수익을 위해서라면 새 책과 헌 책을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인 이익 우선주의로 치닫고 있다.
결국 기업형 중고서점이 확대 재생산하는 중고도서 시장이 커질수록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은 저자, 출판사, 신간 서점들이다. 중고책 매매는 이들의 수익 구조와 차단돼 있을 뿐만 아니라 새 책의 판매 기회까지 빼앗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신간 도서의 발행을 위해서는 새 책 판매에 따른 수익금의 확보가 전제돼야 하지만, 이러한 출판산업 가치사슬 구조가 기업형 중고서점에 의해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1차(신간) 시장과 2차(중고책) 시장의 유통질서가 혼재되지 않고 제 기능을 하며 보완적인 상생 관계가 되도록 혁신될 필요가 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인터넷서점이 새 책 판매 화면에서 중고책을 동시에 판매하는 일이 없도록 분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소비자간 거래인 오픈마켓에서도 발행 후 6개월 이상 지난 책만 취급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도서정가제 규정 위반에도 해당하는 바이백 영업의 제한 기한을, 현행 발행 후 6개월 이상에서 최소 18개월 이상으로 하는 방안 등이 사회적 협약으로나 관련법 조항으로 도입돼야 할 것이다.
독자들의 중고책 매매 수요가 커진 것은 새 책과 거의 다름없는 상태의 책을 반값에 가까운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경제성에 기인한다. 특히 경제적 약자들이 중고책의 주요 매매자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를 해소하려면 공공도서관, 학교도서관, 대학도서관, 직장도서관 등 도서관의 기능과 역할을 대폭 확충하는 것이 근본 대안이다. 중고책 수요의 상당 부분은 문학, 자기계발서, 어린이책과 같은 대중적인 출판 장르의 책이다. 독자가 경제적 부담을 줄이면서 독서 수요를 충족하는 방법은 도서관에서 위축되고 있는 도서구입비를 충분히 확보함으로써 다양한 책을 구비하는 것이 사회적 해법이다. 출판 생태계를 살리면서 독자의 독서권도 보장하는 길이 여기에 있다.
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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