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다. 겨울이 유달리 추웠기 때문일까? 참 이 봄을 기다렸다. 3월의 대학 캠퍼스만큼 봄을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드물 것 같다. 정보문화관 6층에서 내려다보는 3월 캠퍼스의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정겹다. 내게도 저 찬란한 젊음처럼 설레고 웃고 떠들고 마시던 3월의 봄이 있었는데 싶은 시샘에 젖다가, 이내 그 차이를 깨닫게 되고 20여 년이란 시간이 바꿔놓은 대학의 봄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그때 3월의 대학 게시판들은 형광 색상지들로 가득 도배되어 있었다. 색상지 벽보에는 동아리 회원 모집 공고부터 초중고 동문회를 알리는 내용이 굵은 매직으로 쓰여 있다. 하루에 세 시간 자며 '순종적인 신체'로 지내온 '찌질한' 수험생활은 대학에서 2주만 보내면 잊혔다. 과에서, 동아리에서, 동문회에서 처음 본 선배들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어려운 책 이름들을 술술 대면서, 고등학교 때는 전혀 몰랐던 세상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술을 사줬다. 속표지에 멋진 말을 적어 신입생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는 시대였다.
그러나 학교 앞에는 작은 서점들이 두어 개씩 있었다. 서점 안에는 책을 읽으며 약속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있었고, 서점 밖 벽에는 커다란 메모판이 있어서 학생회, 학회, 동아리, 동문회 모임이 어디에서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곧 대학 안의 여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들과 관계를 맺었다. 오늘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직접 얼굴을 맞대고 사람을 만나는 '대면적 인간관계'가 압도적인 참으로 아날로그적인 시절이었다.
오늘날 정보의 습득과 처리에서 디지털 매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증가했다. 지하철, 도서관, 학회실에서 종이신문을 보는 대학생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지하철 맞은편에는 스마트폰을 보는 일곱 명이 있을 뿐이다.
교수가 주는 학점도 절대평가였으며, 학생이 강의를 평가하는 일도 없었다. 이메일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성적이나 출석 따위의 '하찮은' 문제로 교수에게 이메일을 할 이유도 없었다. 수업은 사정이 있으면 빠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비대면적 관계'의 비중이 증가한 오늘날, 학기 초부터 학기 말까지 교수들은 학생들의 자잘한 이메일에 시달린다. 학생들은 출결 체크에 민감하고, 조별 활동 '무임승차자'의 존재에 분개하며, '학점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에서 받게 될지도 모르는 그 어떤 불이익도 참을 수 없다.
디지털 정보 매체의 확산과 비대면적 관계의 일상화의 이면에는 우리의 생각과 품행을 규정하는 일종의 '인식틀'의 변화가 놓여 있다. 20여 년 전과 달리 오늘날 '불평등은 정당할 뿐 아니라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소위 '공정함'에 대한 늘어난 요구도 이의 반영이다. 경쟁은 일반화되고, 경쟁의 결과에 대한 평가와 서열화도 일반화되었다. 불평등한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사라지고, 그 안에서의 자리바꿈을 저해하는 지엽적 요소들에만 민감하다.
오늘날의 이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자신의 위치는 가늠할 수 있지만, 전체 구조의 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대학생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불안의 정체와 맞물려 있다. 경쟁과 불안의 세계에는 안식처뿐만 아니라, 구조 자체를 인식하려는 노력과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신입생이었던 내게 책을 선물해줬던 선배들이 이 3월의 신입생들에게도 존재한다면 그나마 불안이 덜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당장 바꾸지 못할 커다란 세상이라 해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때 3월의 대학 게시판들은 형광 색상지들로 가득 도배되어 있었다. 색상지 벽보에는 동아리 회원 모집 공고부터 초중고 동문회를 알리는 내용이 굵은 매직으로 쓰여 있다. 하루에 세 시간 자며 '순종적인 신체'로 지내온 '찌질한' 수험생활은 대학에서 2주만 보내면 잊혔다. 과에서, 동아리에서, 동문회에서 처음 본 선배들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어려운 책 이름들을 술술 대면서, 고등학교 때는 전혀 몰랐던 세상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술을 사줬다. 속표지에 멋진 말을 적어 신입생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는 시대였다.
그러나 학교 앞에는 작은 서점들이 두어 개씩 있었다. 서점 안에는 책을 읽으며 약속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있었고, 서점 밖 벽에는 커다란 메모판이 있어서 학생회, 학회, 동아리, 동문회 모임이 어디에서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곧 대학 안의 여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들과 관계를 맺었다. 오늘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직접 얼굴을 맞대고 사람을 만나는 '대면적 인간관계'가 압도적인 참으로 아날로그적인 시절이었다.
오늘날 정보의 습득과 처리에서 디지털 매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증가했다. 지하철, 도서관, 학회실에서 종이신문을 보는 대학생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지하철 맞은편에는 스마트폰을 보는 일곱 명이 있을 뿐이다.
교수가 주는 학점도 절대평가였으며, 학생이 강의를 평가하는 일도 없었다. 이메일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성적이나 출석 따위의 '하찮은' 문제로 교수에게 이메일을 할 이유도 없었다. 수업은 사정이 있으면 빠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비대면적 관계'의 비중이 증가한 오늘날, 학기 초부터 학기 말까지 교수들은 학생들의 자잘한 이메일에 시달린다. 학생들은 출결 체크에 민감하고, 조별 활동 '무임승차자'의 존재에 분개하며, '학점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에서 받게 될지도 모르는 그 어떤 불이익도 참을 수 없다.
디지털 정보 매체의 확산과 비대면적 관계의 일상화의 이면에는 우리의 생각과 품행을 규정하는 일종의 '인식틀'의 변화가 놓여 있다. 20여 년 전과 달리 오늘날 '불평등은 정당할 뿐 아니라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소위 '공정함'에 대한 늘어난 요구도 이의 반영이다. 경쟁은 일반화되고, 경쟁의 결과에 대한 평가와 서열화도 일반화되었다. 불평등한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사라지고, 그 안에서의 자리바꿈을 저해하는 지엽적 요소들에만 민감하다.
오늘날의 이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자신의 위치는 가늠할 수 있지만, 전체 구조의 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대학생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불안의 정체와 맞물려 있다. 경쟁과 불안의 세계에는 안식처뿐만 아니라, 구조 자체를 인식하려는 노력과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신입생이었던 내게 책을 선물해줬던 선배들이 이 3월의 신입생들에게도 존재한다면 그나마 불안이 덜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당장 바꾸지 못할 커다란 세상이라 해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광근 다르마칼리지
출처 http://www.dg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130
출처 http://www.dg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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