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0년 5월 9일 인터넷판. 아마도 2010년 5월 10일자 칼럼으로 실릴 글인 듯싶다. 소설가 윤성희의 글이다. 제목은 '어두운 밤의 하얀 테두리'. 독서인증제와 필독서와 독서장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윤성희는 말한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말해줄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억지로 될 수 없듯이, 책을 사랑하는 일도 억지로 될 수 없다고."
몇 년 전 외국 여행을 갈 때였다. 같이 간 선배가 직업란에 ‘발레리나’라고 적었다. 소설가보다 훨씬 멋지다, 하며 우리들은 웃었다. 앞으로는 여행을 다닐 때마다 평소 되고 싶은, 그러나 결코 될 수 없는, 꿈들을 적어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 뒤로 입국신고서에 직업을 적지 않는 나라를 다닐 때면 좀 서운한 기분마저 들었다. 언젠가는 꼭 자동차수리공이라고 적어봐야지, 하고 결심을 해보기도 했다.
누군가 직업이 뭐예요? 하고 물으면 소설가예요, 하고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고만 싶어진다. 쓴다는 일은, 아무리 해도, 기대치에 다다르지 않는다. 게다가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같은 일을 이삼십 년 정도 하면 달인의 경지에 이르는 경우도 많은데 글을 쓰는 일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첫 문장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보면 자전거를 처음으로 배우는 초등학생 같다는 기분이 든다. 소설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묻는다. ‘저는 글 잘 쓰는 사람이 부러워요. 어떻게 하면 잘 쓰죠?’ 하지만 요즘에는 그보다 이런 것을 더 자주 묻는다. ‘제 아이가 책 읽는 걸 싫어해요. 어떻게 하죠?’ ‘혹시 독서지도 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솔직히, 그런 질문을 몇 년 전에 받았다면, 요즘 엄마들은~ 하면서 혀를 찼을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의 가장 큰 일 중 하나가 독서장을 쓰는 일인 걸 알고부터는 조금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나는 독서인증제인가 하는 제도가 있어서 정해진 필독서를 읽고 독서장을 작성해야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올해 처음으로 알았다. 조카는 독서장을 쓰는 걸 싫어한다. 독서인증제에서 1급을 받으려면 정해진 분량의 권장도서를 읽어야 하는데, 그 분량을 보니 나라도 하기 싫을 듯했다. 과연 일 년에 오십 권씩을 읽는 선생님들이 몇이나 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그걸 못 따라가는 아이를 둔 부모들은 나처럼 글을 쓰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하면 책을 읽게 할까요?’ 하고 묻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 가장 즐겨보던 책은 <보물섬>이라는 만화책이었다. 독자카드를 보내서 책받침을 받던 날의 흥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중학교 1학년 때 독후감 숙제에서 나는 C를 받았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한 번도 독후감 숙제에서 A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12년의 정규 교육을 받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글쓰기에 관련된 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내가 사랑한 것은 글자들을 뚫어지게 보는 것이었다. 과자 봉지에 적힌 성분 표시를 읽고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책을 읽고 방바닥에 누워서 가만히 그것을 상상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글을 쓰는 일이 좋아진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독후감을 쓰는 일에 젬병이었던 나는 부모님들에게 어떻게 하면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독서장을 쓸 수 있는지, 알려 줄 수가 없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말해줄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억지로 될 수 없듯이, 책을 사랑하는 일도 억지로 될 수 없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어두운 방의 하얀 테두리를 좋아하였다.” 어두운 방에 쪼그리고 앉아서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의 테두리를 구경하는 꼬마 아이. 그런 아이의 가슴은 우물처럼 깊게 파여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많은 것이 고일 것이다. 마르지 않는 샘이 될 것이다. 글은 그 후 쓰면 된다.(*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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