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재독 한인 종교인 공동 성명서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예레 8,24)
“모든 땅과 물은 나의 옛 몸이고, 모든 물과 바람은 나의 본체”(범망경)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가난했던 조국과 가족을 위해 남의 나라 땅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혹은 다른 여러 직종에 종사하면서도 언제나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살아왔던 독일 내의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의 사대종단(四大宗團) 한인 공동체는 '4대강 사업'을 놓고 벌어지는 작금의 현실에 대하여 심각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산천과 인정 넘치던 두고 온 조국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대한민국이 사라지고 있음을 무척 염려합니다. 돈이 되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부도덕함도 감행하는 물질만능주의라는 병에 대한민국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피 흘려 쟁취한 자랑스러운 민주주의가 꽃을 활짝 피우려다 찬서리를 맞아 움추러들고 있습니다. 마치 역사의 발걸음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듯한 현실입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목적은 '물'이 아니라 '돈'입니다. 말 그대로 ‘돈놀이’ 사업을 벌이는 것입니다. 생명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사람도 아닙니다. 정부가 운하사업을 포기한다고 하고 나서 소위'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는 것이 갑자기 등장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의 4대강은 과연 죽어 있었습니까? 멀쩡하던 4대강이 왜 갑자기 죽은 강으로 둔갑해서, 강바닥을 파내고 댐과 보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곳으로 바뀌었습니까?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과연 그래야만 정녕 강이 살고 홍수가 예방되며 수질이 개선됩니까?
그동안 대한민국의 강이 지속적으로 정비되고 관리되어 왔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또한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류의 마을과 도시에서 유입되는 오수와 폐수를 차단하고 정화하는 것이 우선이고, 홍수 피해를 막으려면 피해가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상류지천을 정비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입니다. 우리는 왜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를 들이대며, 굳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강바닥을 파내고 제방을 높여 배가 다닐 수 있는 수심을 유지하려는지, 유속이 느려지고 퇴적물이 쌓여 오염이 가중될 위험이 높은 데도 왜 그렇게 많은 보를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연이 어찌 되든, 사람이 어찌 되든, 또 생명이 어찌 되든 대한민국은 묻지 않을 태세입니다. 무조건 해놓고 보자는 식의 정부의 태도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거대한 토목공사판을 벌이며 소수의 이해관계를 충족함으로써 다수의 의견과 고통을 무시하는 오만과 자폐의 길을 대한민국은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로써 훗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 정신적 가치를 훼손할 것이 명백합니다.
4대강 사업의 추진은 법치를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합니다
정부는 법치를 내세우면서도 스스로 법치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현재 독일은 운하를 재자연화하고 있습니다. 도나우강의 지류인 이자강 8Km를 원래의 모습으로 돌리는 데에도 10년의 조사기간을 거쳤습니다. 하물며 634Km에 이르는 대공사를 하면서 어떻게 반 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환경영향평가를 해치울 수 있으며, 22조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비에 대해서 국회의 심의도 거치지 않은 채 4대강 전역을 굴삭기로 파헤칠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가공할 ‘속도전’은 단지 한반도의 젖줄만을 유린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하천법’, ‘환경법’, ‘국가재정법’, ‘문화재보호법’ 등을 일시에 뒤집어 버리는 폭거입니다. 국민적 동의를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정부 주도로 강행되는 일방적인 공사는 민주주의를 부인하는 일이기에, 우리는 그 진실성을 의심하게 되고 실효성에 공감할 수 없습니다. 임기내에 서둘러 완공하려는 추진세력들의 욕망과 조급성이 대재앙을 초래할 것임을 짐작하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공사가 즉시 중단되어야 함을 민주주의의 이름과 종교인 양심으로 선언합니다.
독일인은 독일의 운하가 성공모델이라는 한국사람을 비웃습니다
100년 전 운하가 지어질 당시 독일은 유럽 물류의 요충지였고, 도로가 발달하지 않은 탓에 운하가 경제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빠른 운송수단을 선호하는 현대에 와서 운하는 그 경제적 가치를 상실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금 독일의 운하는 다시금 재자연화 되고 있습니다. 강을 준설하고 직선화한 후 30년이 지나면서부터 주변 토지의 지하수면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100년 후인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홍수와 갈수(渴水)를 막기 위해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여 라인강을 옛날로 되돌리는 공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독일의 운하를 성공모델이 아니라 반면교사로 여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그릇된 신념에 부화뇌동하여 실패를 되풀이하려는 대한민국을 독일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역사적 교훈이 생생한 독일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이런 부끄러운 행태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게 만들기에 이렇게 반대 서명과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4대강 사업을 중단하십시오!
이미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생명을 존중하는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자연과의 상생을 추구하는 시민들이 수차례에 걸쳐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를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언론은 끝까지 귀를 막고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뜻을 받들지 않고 도리어 오해와 무지와 편견이라며 무시하고 내리누르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대한민국에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대형 콘크리트 수족관인 청계천도 5년이 안 가 금이 가고 지반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무모함을 저지르지 마십시오. 탐욕의 매서운 광기 아래서 지금도 무수한 생명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입 없는 자연의 참담한 기도가 결국 내일에는 오만한 인간의 절규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독일에 살고 있는 사대종단 성직자와 신도들은 지난 3월 12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발표한 '생명문제와 4대강 공사에 관한 주교회의 선언문'과 3월 25일 대한 불교 조계종 환경위원회에서 발표한 성명서 '생명의 근원인 강을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은 중단되어야 합니다'와, 4월 2일 부활절에 발표한 개신교의 '생명과 평화를 여는 2010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에서 밝힌 입장을 지지하고 동참합니다. 조상 대대로 가꾸어 온 소중한 국토, 앞으로도 몇 만년을 아껴야 할 신성한 작품, “수 만년을 거쳐 바람과 물, 뭇 생명들이 이루어 놓은 대자연의 섭리를”(불교성명서에서 인용) 송두리째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즉시 중단할 것을 신앙인으로서 엄중히 요청합니다. 부디 '개발과 경쟁'이 아니라 '생명과 공존'이라는 양심의 길을 선택하여, 대한민국과 우리의 후손에게 긍지를 지니고 살 수 있는 조국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세계, 산천, 초목, 부처, 보살, 중생, 유정과 무정 등 모두가 함께 어울러 출렁이는 생명의 큰 바다는 그야말로 장엄하다.”(화엄경)
“저의 생명을 칼에서, 저의 목숨을 개들의 발에서 구원하소서.”(시편 22,21)
2010년 5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 재독 전 6개 지역 한인천주교회 사제단과 신자 일동
프랑크푸르 트 주임 김광태 신부, 쾰른주임 오동영 신부, 루르주임 조영만 신부, 베를린주임 최경식 신부, 뮌헨주임 이영재 신부, 함부르크주임 최태식 신부, 유학사제 김형수, 이균태, 윤정현, 정지원, 박형순, 정진만, 최종훈, 이영덕, 허찬욱, 김성우, 이동욱 신부 외 신자 773인
- 기독교 재독 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정광은 목사(함 부르크한인교회), 부회장 윤종필 목사(라인마인한인교회), 이 진수 집사(남부지방 한인교회), 서기 어유성 목사(노드라인 베스트팔렌 한인연합교회) 외 신자 200인
- 대한 불교 조계종 한마음선원 독일지원
혜진 스님 외 사부대중 50인
재독 정토회 법당 일동
프랑크푸르트 법당 송임덕 총무 외 신도 50인
- 재독 원불교 교당 일동
레겐스부룩 교당 이윤덕 교무, 원법우(Stabnau) 교무, 프랑크푸르트 교당 최원심 교무 외 교도 6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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