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일 월요일

마광수의 '논문중심주의' 비판

마광수 교수가 쓴 '한국 인문학의 위기,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글. '이조과거실록'이라고 언급한 책은 '책문'을 말하는 것인 듯하다.

 

한국 인문학이 처한 위기의 원인은,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해서 취미를 못 붙이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요새 인문학 책이 너무 어렵게 써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대중화를 못시키고 있다. 특히나 이상(李箱) 문학상 받았다는 젊은 작가들조차도 나도 읽지 못할 정도로 글을 어렵게 쓴다. 괜히 심각한 척하고 철학적인 척하고 있다. 문사철(文史哲)이 대중과 융합이 안되고 소수의 지식 귀족들, 쉽게 말해서 대학교 언저리를 다닌 사람들과 대학교수들과 일부 매스컴 종사자들끼리만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것 같다.
 
나는 인생론(<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사랑론(<성애론>), 인간론(<인간>), 이렇게 세 권의 책을 에세이 형식으로 써서 출판했다.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같은 책은 독자들이 좀 어렵다고 하는 것 같다. <주역>에 관한 내용도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 책들을 써서 내도 교수들이 인정을 해줘야하는데, 교수들이 그걸 업적으로 인정 안 해준다. 2000년에 연세대 국문과 교수들이 나를 왕따시키고 문과대 교수들도 동조하여 나를 몰아내려고 했을 때, 내가 울화병 걸려 휴직하고 그랬었는데, 그들 말로는 그런 책들은 논문이 아니라 잡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게 문제다. 논문은 넓은 의미로 에세이다. 몽테뉴의 <에세이>를 보면 거의 다 논문이다. 다만 요새처럼 주석 붙이고 참고문헌 붙이는 식으로 현학적이지 않은 것일 뿐이다.
 
니체는 전부 아포리즘, 즉, 단장식(斷章式)의 글들만 썼었고, 파스칼의 <팡세>는 메모 모음집이었다. 외국의 그런 텍스트는 숭배하면서 한국에선 막무가내로 논문중심주의다. 내가 2000년에 그런 이유로 재임명 탈락의 위기를 겪을 때도 <논문중심주의가 한국 인문학을 망친다>고 <한겨레>에 기사가 나간 적도 있다. 나는 한국 대학들의 논문중심주의가 한국의 인문학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논문에 들어가는 인용도 외국 것을 해야만 하는 등 사대주의가 인문학을 망치는 측면도 있다. 미셀 푸코, 들뢰즈, 라캉 등의 성담론은 신주 모시듯이 하면서, 나의 성담론은 깔본다. 한국 인문계의 위기는 학문적 사대주의에서 온다. 한국의 학문이나 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국문학이나 국사 쪽을 빼면 교수들도 전부 미국 유학파니 교수들의 생각이 일종의 혼혈이 되어버렸다.
 
나는 국수주의자는 아니지만 영어 강의에 반대한다. 강의에는 농담도 섞여있어야 하는데 억지로 영어 강의를 한다, 그래서 학생과 교수들의 지식이 더 깊어지지 않고 오히려 얕아진다. 인문학의 목표는 지성의 배양이지 지식의 배양이 아니다. 지식은 수단이고, 지성은 판단력, 추리력 등을 말한다. 지식은 책에 써있는 단순 지식에 불과한데, 지식의 양만 강조하니 지성을 배양하지 못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 입시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에세이인데, 한국에는 대학입시에 논술문제가 있다곤 하지만 진정한 논술이 아니고 퀴즈풀이다. 나라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출제하겠다. 이런 게 미국, 프랑스에서 출제하는 에세이다. 요즘 대입 수능시험이나 논술 시험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시험방법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소위 과거 시험이 어떠했는가 하는 내용을 담은『이조과거실록』이란 좋은 책이 나왔는데, 과거에 장원급제한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우리나라는 기록문화가 대단해서, 왕조실록도 그렇지만 과거 시험 문제와 우수 답안을 다 기록해서 남겨놓았다.
 
과거 시험에서는 에세이처럼 쓰게 해서 인재를 뽑았다. 문제들도 다 희한하다. <사계절은 왜 있는가>, <술의 해독에 대해 논하라> 등이 과거시험 문제였다. 종합적인 인문학적 상식을 요구하는 시험이었던 것이다. 물론 조선조 때 과학기술과 실학이 발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인문학은 그렇게 종합적 교양을 쌓는 에세이를 쓰게 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은 독창적 주관력을 배양시키는 교육으로 가야지 단순히 지식을 암기시키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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