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8일 수요일 경향신문의 황경상 기자의 보도. 녹색당 창당을 준비하는 김종철과 하승수 대담. “지금은 문명사적 전환기… 경제·사회구조 새 틀 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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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태닉 현실주의.’
생태주의처럼 삶의 근원적 문제를 성찰하는 움직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비웃는 세태에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65)이 내놓은 대답이다. 흔히 말하는 현실주의는 “침몰 중인 선박 갑판에서 고작 의자 몇 개의 위치를 바꿔놓는 것을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근 녹색당 창당에 나선 김 발행인의 모습도 그들에겐 ‘몽상가’로 비춰질지 모른다. ‘녹색평론’은 2012년 첫 호의 특집으로 ‘지금 왜 녹색당인가’를 다뤘다. 정당정치와 거리를 둬 온 그간과 다른 모습이다. 표제글을 쓴 하승수 변호사(44·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도 풀뿌리 시민운동에만 주력했지만 이제는 녹색당 창당에 앞장서고 있다.
“아주 묘한 것이 몇 년 전만 해도 녹색당이 시기상조라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젠 만시지탄이라고들 그러더군요.” 김 발행인은 지난 16일 하 변호사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녹색당을 안 했던 건 시기상조였다기보다 이 사회가 움직일 수 있을까 싶어 체념했던 겁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고 바뀌었어요. 사고가 나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 생각을 하니까 몇 해 동안 체념했다는 사실 자체가 용서받을 수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알면서 체념한 것은 범죄입니다. 죽을 때까지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당 준비 중인 녹색당(http://kgreens.org)에는 현재 약 1800명이 가입했다. 정당법은 5개 시·도에서 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만 정당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월말 출범이 목표인 녹색당의 당면과제가 당원 모집인 까닭이다. 해서 ‘지금 왜 녹색당인가’라는 질문도 쏟아질 수밖에 없다.
김종철=지금까지는 한쪽은 자본가, 한쪽은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는 양당 체계였다. 서민을 대변한다고 해도 산업노동자가 중심 축이다. 정당도 화석연료와 핵발전에 토대를 둔 산업활동에 기반했던 셈이다. 이 구조 속에서 여성이나 청소년, 이주노동자나 농민 등 생산 기여도가 낮은 계층은 소외됐다. 그런 산업시스템은 이제 종말을 고할 시점이 왔다. 경제와 사회구조를 새로 짜려면 패러다임 전환과 그에 맞는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
하승수=녹색당에는 여성들의 참여가 높다. 지난 15일 열린 제주 발기인대회도 70%가 여성들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10~20년 뒤 어떤 세상에서 살아야 할까 생각하면 쉽게 녹색당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김종철=세계 경제가 장기적으로 회복되더라도 옛날 같은 고도성장은 없다. 한국 진보진영의 보편복지 논의는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 구조가 계속될 것이란 전제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지금은 레토릭이 아니라 실제로 문명사적 전환이 다가오고 있다. 석유 생산의 정점(오일피크)은 지나갔고 석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제체제는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하승수=지금 복지 논의가 근시안적이라는 것은 농업 문제가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을 봐도 알 수 있다. 기본적 생존의 문제인 핵발전 중단 문제도 마찬가지다. 농업이나 에너지 문제는 장기적 전망으로 풀어야 하는데.
김종철=농촌이 튼튼해져야 지역경제가 살고 수도권 집중 문제도 해결된다. 세종시 하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어느 나라도 지역경제는 1차 산업이 떠받친다. 녹색당은 지역 분산적 소규모 자연에너지 생산 체계를 갖추려고 한다. 독일도 태양광·풍력 등으로 이런 체계를 장려해서 36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중앙집중적 발전시스템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서 그렇지 물리적으로 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하승수=우리나라는 오히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정책인) 발전차액 지원제도(FIT)도 폐지했다. 우리의 삶이 팍팍해지는 근본 원인은 중앙집중구조다. 농업과 농촌을 살려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고 생태주의도 가능하다. 골프장 건설을 막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지금 건설 중인 동네가 하나같이 가난하고 피폐하기 때문에 개발을 막을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김종철=우리의 많은 문제가 일극집중에서 비롯된다. 그 가까이에 몰려들고자 하는 욕망을 청소년들에게까지 강요하니 요즘 문제가 된 것 아닌가. 이것을 기존 정치권, 정당에서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겠나. 농촌 출신 의원은 많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결사반대하지 않았다.
하승수=농지는 직접 경작하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 원칙도 무너졌다. 부재지주 농지가 60%를 넘는다. 헌법 기본원칙이 무너졌는데도 아무 문제의식이 없다.
김종철=현재 정치시스템은 진보정당도 포함해서 결국 정권 창출과 국회의원 재선이 목표일 수밖에 없게 돼 있다. 단기적 전망밖에 없다. 녹색당을 ‘반(反)정당적 정당’으로 이름붙인 것은 기존 정당과 다른 철학을 갖고 다른 실천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점에서 ‘반정당’이지만 정치적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는 ‘정당’으로 가야 한다. 생활·문화·정치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지만 개인이나 시민단체의 힘으로는 문제제기를 계속할 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없기 떄문이다. ‘반정당적 정당’은 그런 고민이 담겼다.
하승수=시민운동가들이 개인적으로 정치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치적 신념을 그대로 가지고 가지 못한다. 기존 질서에 편입되다보니 정당을 변화시키기보다 본인이 변화됐다. 시민운동가들의 정치참여는 필요하다. 다만 신념을 지키면서 참여할 통로가 있어야 하는데 녹색당이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서구의 녹색당 자체가 시민사회운동에 기반해서 만들어졌고, 그 가치들이 그대로 정치권에서 주장되고 반영됐다.
김종철=그를 위해서는 기초당원들도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녹색당은 당의 일꾼을 뽑을 때 추첨제와 선거제를 혼합해 운영하려 한다. 꼭 선거만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어느 나라 녹색당이든 가치의 핵심은 실질적 민주주의다. 그게 안 되면 녹색당을 할 필요가 없다.
하승수=대의원을 추첨으로 뽑으면 서로 대의원을 장악하려는 폐해도 사라질 것이다. 추첨제는 실제 검토됐지만 기존 진보정당도 내부 권력 투쟁이 심해 실현하지 못했다. 정당 구조도 지역 분권으로 가야 한다.
김종철=꼭 이번에 성과를 내야 한다기보다 시민운동을 한 단계 높이는 측면에서 천천히 실속있게 갔으면 한다. 지역에서 고립돼 분산적 활동하던 시민운동이 녹색당을 통해서 네트워크를 만들어 하나의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국제적 녹색당 네트워크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인류 사회 전체가 위기인데 우리나라만 잘해선 안된다. 이미 녹색당은 아시아에도 일반화됐다.
하승수=얼마 전에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 녹색당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관심이 많은 걸 보면 이제 녹색당을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녹색당은 미래의 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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