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일 화요일

사서 고생하는 진정한 사서/ 이권우가 만난 사람 - 16. 인천 화도진도서관 박현주 사서, 아침독서신문, 2018년 10월 1일

출처 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18/10/01/201810010911001625.html

사서 고생하는 진정한 사서
이권우가 만난 사람 - 16. 인천 화도진도서관 박현주 사서
<ⓒ박현주>
농담이지만 핵심을 찌르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촌철살인. 도서관인이 즐겨 쓰는 말로, “사서 고생한다”가 있다. 사서라는 낱말로 벌인 말장난이다. 누구나 다 고생이다. 살아가는 일이 어디 만만하던가. 그런데 굳이 사서 하는 고생이라면 말이 다르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한다는 말은 아닐 테다. 주변의 격려나 칭찬이 따른다는 말도 아니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보다 다른 곳에서 더 칭송된다는 뜻은 있다. 눈치 보지 않고 올곧게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할 테다. 따지고 보면 마땅한데 남들은 그렇게 살지 않건만,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서 가운데 사서 고생하는 사람으로 대표 격인 인물이 있다. 화도진도서관의 박현주. 일례로 강좌를 여는 일부터 보자. 사회에 인문학 열풍이 불기 전에 일찌감치 인천 일대의 도서관에서 인문학 강좌를 열었다. 강의료도 부족하고 인적 네트워크도 약한 시기였다. 그래도 사회 변화의 조짐을 빨리 읽어냈고, 도서관의 역할과 인문학 강의는 상당히 어울리는지라 선도적으로 이끌었다. 도와주는 이도 없고 경험도 없다 보니 서울 인사동에 있던 문예아카데미가 진행한 강좌를 그대로 가져와 인천에서 시작했다. 그게 1997년의 일이다.

이때 뿌렸던 씨앗은 최근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그이가 옮겨가는 곳마다 여는 ‘길 위의 인문학’이나 ‘인문독서아카데미’는 속된 말로 늘 대박을 터트린다. 주제 알맞고 강사 빼어나고 홍보 잘되니 일이 안 풀릴 리 없다. 여러 도서관에서 다양한 강좌를 열지만 입맛 까다로운 시민의 욕구를 잘 충족하는 강의는 대부분 기획력과 인적 네트워크의 소산이다.

반응이 좋을 만하다. 기실 그런 강좌를 대학 졸업한 다음 들을 만한 곳이 없었잖은가. 저자 초청 강연 정도로, 그것도 대체로 어린이책 저자 중심에 가끔 문인이나 명사를 불러와 열었던 강연회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게 구성해 선보였고.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알려야 모여들 테니 홍보하려고 애썼다. 지금은 SNS가 있으니 훨씬 나아졌지만 처음에는 그것도 큰일이었다. 먼 길 온 강사들을 잘 챙겼다. 한번 인연 맺고 끊을 사이가 아니다. 시민이 좋아하는 강의라면 때와 장소를 바꾸어 다시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서가 사서 고생하면 시민이 행복해짐을 알기에 일관되게 일했다.

그이는 1984년 인천시교육청 소속 공공도서관의 사서가 되었다. 첫 발령지는 개관한 지 일 년 된 인천중앙도서관. 당시 인천에는 인천시립도서관과 부평도서관밖에 없었다. 사서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도 지원도 부족한 상태에서 도서관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더 사서 고생할 일이 터지고 말았다. IMF 이후 공무원 구조 조정이란 명목으로 도서관 명칭을 평생학습관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일이었다. 법으로 보면 도서관 관장은 사서가 맡아야 한다. 이를 피하는 방편으로 명칭을 바꿔 행정직이 관장을 맡을 수 있게 하려는 거였다. 내부의 힘으로는 부족했다. 시민사회에 손을 내밀었다. 인천에서 쭉 자라고 공부한지라 도움 줄 선후배가 많았다. 잘 살아왔다는 뜻일 테다. 너도나도 도움을 주어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때부터 그이는 도서관에 갇혀있는 사서가 아니라 시민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보기 드문 사서가 되었다. 사서 고생하는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선 셈이다. 이후 시민 단체의 추천으로 제5회 다산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 도서관에는 역사가 없다. 급하게 새로 크게 세운 도서관은 많지만, 그 지역의 역사를 품고 있어 그 자체로 역사가 되는 도서관은 드물다. 책으로 지역공동체와 연계하고 그 지역공동체의 역사를 기록하고 보관하는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 문화관광부에서 도서관 특화지원사업을 한다는 공문이 왔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인천을 배경으로 한 것이 많다. 근대적 개항지 인천에는 유물과 유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는 이는 드물었다. 아무리 오지랖 넓기로 소문난 그이지만 모든 것을 떠맡을 수는 없었다. 자료만이라도 제대로 모으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화도진도서관에 근무할 적에 향토사와 개항기를 주제로 한 특화사업을 신청했다. 한차례 낙방하는 어려움을 겪고 2000년 7월 특화도서관으로 지정되어 1억 원의 자료 구입비를 지원받았다. 이 지원금을 종잣돈 삼아 현재의 ‘향토·개항문화자료관’을 열었다.

그이는 현재 화도진도서관에서 네 번째 일하고 있다. 그동안 자료 수집을 위해 애썼다. 사진은 물론이고 도서나 지도류 같은 자료들도 풍부히 모았다. 인천에서 발행한 일본어 신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수소문 끝에 일본국립국회도서관에서 마이크로필름을 사와 디지털화하고 영인 신문까지 제작했다. 여러 차례 소장 도록과 기증 자료 도록도 발간했다. 20년 가까이 모아온 자료가 1600점에 이른다. 마침 올해가 화도진도서관 개관 30주년이라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서 10월 3일까지 특별기획전을 한다. 이름하여 ‘자료로 본 인천의 근현대’. 이제 화도진도서관은 자신이 뿌리내린 지역의 역사를 안게 되었다. 기록하고 보관하고 열람하는, 살아있는 지역사의 한 본보기를 세웠다. 사서 고생한 보람이다.

누구나 도서관과 사서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교과서적인 설명은 잘 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려고 사서 고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이는 공공도서관은 민주 시민의 역량을 키우는 배움터야 하고, 지역 시민과 독서 문화를 잇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역의 특성에 맞는 도서관 서비스를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지역아동센터, 작은도서관, 병원, 군부대, 장애인 시설, 미혼모 시설, 노인 요양 시설, 도서 지역에 찾아가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그이가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보이는 영역은 사라진 책과 사라질 책이다. 북한과 공산권 자료 접근이 제한되던 시절, 정부에서 관리하는 지역 공공도서관의 특수자료실에서 특수 자료 취급 인가를 받고 그 분야의 자료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을 5년 정도 맡아서 했다. 1980년대 중반 일반 열람이 금지되었던 책을 따로 보관했던 시절이었다. 도서관의 장서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폐기되는 책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그 책마저 도서관에서 사라지면 시민이 원할 때 열람할 수 없다. 도서관은 버리는 곳이 아니라 보관하는 곳이다. 그런데 편의성 때문에 마구 버린다. 그이는 소망한다. 공공도서관이 누구에게도 침범받지 않는 안전하고 온전한 ‘책의 집’이 되기를.

그이는 이 인터뷰를 여러 차례 거부했고 나는 끈질기게 설득했다. 사서 고생하는 진짜 사서를 세상에 알리고 싶고, 어쩌면 다시 못 볼 사서 고생하는 사서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다.

이권우_도서평론가,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저자 / 2018-10-0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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