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7일 토요일

삶에서 `휴식`을 잊었던 분…이제 평안하시길/ 권성우 문학평론가

모처럼 문우들과 정담을 나누는 중에 갑자기 날아온 선생님의 부고를 접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깊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 슬픔은 어떤 분석도 객관화도 불가능한 그런 통절한 마음의 영역입니다. 글쓰기와 학문 탐구에 모든 열정과 정성을 바친 당신의 숭고한 인생에 대해, 그 과정에 존재했던 한 만남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대학 신입생이던 1982년 어느 가을날, 당신의 강의를 들으며 제 인생의 윤곽은 운명과도 같이 결정되었지요. `대학 수업이란 정녕 이런 것이구나`를 직접 느끼게 만들었던 그 가슴 설레던 시간, 그토록 매력적이며 열정적인 강의를 아직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학우들에게 `서울대 3대 명강의`라 널리 회자되던 바로 그 수업이었지요. 마성과도 같은 그 시간을 통해 지적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는 당신의 저서와 만나며 간절한 마음으로 멋진 문학 비평과 에세이를 쓰는 저를 상상하곤 했답니다. 그해 겨울 당신의 첫 예술기행집 `문학과 미술 사이`(1979)를 접하며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설렘과 독특한 매혹을 느꼈답니다. 물론 거기에는 빛나는 지성과 아름다운 감성, 깊은 허무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지요. 비평이나 예술 기행이 이토록 멋진 글이라면, 정말이지 저도 언젠가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답니다. 생각해 보니, 그 시간 이후 제 인생은 당신의 열정과 자취를 좇는 과정, 역으로 당신의 학문과 글쓰기라는 그 거대하고 경이로운 울타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제 나름의 글쓰기를 찾기 위한 과정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행 등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면 매일 원고지 20장 분량의 글을 썼던 당신의 각별한 습관과 정성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단독 저서만 해도 150권을 훌쩍 넘는, 그토록 엄청난 열정의 의미에 대해 반추해 봅니다. 올해 봄날까지도 지속되던 당신의 쉼 없는 글쓰기 노동은 죽음 즈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중단되었지요. 

제 인생과 학문의 영원한 스승 김윤식 선생님, 당신과 한 시대를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당신의 글, 삶, 말, 책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평생 동안 어떤 파벌이나 조직에도 속하지 않고 고독하게 자신만의 성채를 쌓아 올리신 선생님의 그 운명적인 외로움과 깊은 허무를 사랑합니다. 그 환각에 대한 동경까지도 존중합니다. 

1985년 4학년 비평론 수업 때 갑자기 해 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선연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읽었고, 각계의 숱한 전문가도 만나 보았다. 방학마다 늘 외국을 비롯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그런데도 내일 결정해야 할 사소한 고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여러분,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당대 최고의 석학 중 한 분이 토로하는 이 발언을 통해 저는 겸허한 지성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답니다. 머리보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라는 선생님의 조언을 뼛속 깊이 새기겠습니다. 

당신과 함께한 아주 일상적이며 사소한 장면까지도 너무나 그립습니다. 고서로 둘러싸인 선생님의 고적한 연구실에서 꾸중을 듣던 그 아픈 순간까지도 제 마음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던 동부이촌동 서재, 그 책의 숲에서 열정적으로 문학과 시대, 인간에 대해 설파하시던 선생님의 정정한 목소리를 떠올려 봅니다.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 비평문단과 국문학계, 아니 당신이 없는 이 세계 자체를 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이 땅의 비평과 근대문학 연구는 아연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답니다. 

당신은 20대 중반부터 `노예선의 벤허`와 같은 운명을 응시하며 "죽음 이외의 휴식은 없는" 바로 그런 삶을 살아 왔습니다. 이제 저 밤하늘의 별이 된 당신께서 영원히 평안한 `휴식`을 취하시기를 마음 깊이 바랍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공부만 하지 마시고, 책만 읽지 마시고, 소설가 최인훈, 비평가 김현 선생님과 함께 편하고 즐거운 시간을 맘껏 향유하시기를 염원합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인해 한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선생님의 안식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늘 부족한 당신의 영원한 제자 권성우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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