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교육학>(Pedagogy of Freedom)이란 파울로 프레이리가 1997년 가을학기 동안 하버드교육대학원(HGSE)에서 가르치로 예정되어 있던 해방교육학에 관한 대학원 세미나를 위해 쓴 책이다.
프레이리는 이 책에서 교사 양성 과정에서 거의 배울 수 없는 근본적인 지식들을 강조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지식들이 세계에 대한 비판적 읽기의 발달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판적 읽기의 과정은 매우 역동적인 과정이다.
1997년 5월 2일 파울로 프레이리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하버드교육대학원은 해방교육학에 관한 세미나를 취소했다. 프레이리와 함께 하버드교육대학원에서 해방교육학 세미나를 조직했고, 프레이리의 사후에 이 책의 영어판을 만든 페트릭 클락(Patrick Clarke)에 따르면 "보수적인 조직적 경험주의로 그 모습을 드러낸 하버드교육대학원의 숨은 이데올로기가 그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하버드교육대학원은 프레이리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교육자이지만 그의 이론과 사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강좌가 일반강좌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페트릭 클락은 이렇게 묻는다. "'문해정치학과 정책(The Literacyu Politics and Policy)'이라고 이름 붙인 대학원 과정마저도 프레이리를 일절 언급하지 않고 가르치려 하는 문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런 일은 마치 영미문학 교수들이 셰익스피어를 건너뛰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그것은 많은 이들이 프레이리의 비판적 이론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증거일 거라고 페트릭 클락은 말한다. 우리가 문해(literacy)에 대해 이야기하고, 문해교육에 대해 논의할 때 프레이리를 배제하는 것은 '일종의 극단적 반지성주의'이고 사실상의 '사상 검열'이다.
나는 이 책 전체를 평가하거나 주된 논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독서에 대한 짧게 언급된 대목을 인용한다. 프레이리는 '비판적 읽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독자는 저자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독자는 "텍스트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통해 주체가 되는 과정을 경험"해야 한다. '비판적 읽기'를 통해서만이 "올바르게 생각하고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다.
독서를 무엇인가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보는 사람에게 비판적 읽기란 불가능하다. 책 스무 권을 읽었다고 으스대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스무 권씩이나 말이다! 독서는 텍스트와 일종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 관계 속에서 택스트는 나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그 텍스트에 몰두하면서 그 텍스트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통해 주체가 되는 과정을 경험한다. 독서를 하는 동안 그 책이 마치 오로지 저자만의 생산물이라는 듯, 그 텍스트가 지닌 내용의 포로가 되어선 안 된다. 이것은 올바르게 생각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효과가 적은 읽기의 전형이다.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사람대사람 옮김, <자유의 교육학>, 아침이슬 2007년,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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