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람이 매년 1천만원씩 저축을 한다.(금리는 전혀 계산하지 않기로 한다.) 10년이면 1억원이 모이고 100년이면 10억원, 1천년이면 100억원, 1만년이면 천억원이 모인다. 그렇게 1조원을 모으려면 10만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 10조원을 모으려면 백만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 20조원을 모으려면 2백만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 20조원,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다.
만약 그 '어느 사람'이 요즘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88만원 세대'라서 매년 1백만원밖에 저축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20조원을 모으려면 2천만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람들이 백년도 살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2백만년이나 2천만년이나 실감이 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불과 며칠 사이에 학교도서관에 대한 토론에 두 번이나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내 머리 속에는 4대강 사업에 소요된다는 예산 22조원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전국 약 1만개 학교에 약 2천만원 정도의 급여를 주어야 하는 사서를 뽑아서 배치한다면, 2천억원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20조원이면 약 1만개의 학교에 사서를 100년 동안이나 고용할 수 있는 재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림출처: blog.daum.net
복지 부문의 전문연구자인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는 얼마 전에 '22조원의 즐거운 상상'이라는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출산 사회에서 육아부담을 줄이기 위해 거론되는 무상보육. 6세미만의 아동들을 전액 무료로 보육시설에 다닐 수 있도록 하자면 6조원 정도가 필요하다.
--이미 1930년대부터 서구국가가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아동의 사회적 양육 개념을 뿌리 내리게 한 아동수당 제도, OECD 주요국가에서 우리나라만이 외면하고 있는 이 제도의 도입을 위해 필요한 재원은, 12세미만의 아동 모두에게 월 10만원씩 지급한다고 할 때 8조원이 필요하다.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대학의 무상교육을 위해서 필요한 재원은 10조원이다.
--비수급빈곤층을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확대. 보건복지가족부의 공식적인 발표에서도 인정한대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빈곤선 이하이지만 수급권자가 되지 못하는 이들, 나아가 그 120% 수준인 차상위계층이지만 여전히 생활이 어려운 빈곤한 계층임에도 국가로부터 안정적인 급여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모두 410만명. 이들을 위해 적절한 보완책을 행하고 이로써 이들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에 의미 있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현재 기초생활보장 예산 만큼인 약 8조원이 있다면 된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어디 이뿐인가? 건강보험에서 보장해주는 의료비의 보장수준이 평균 65%에 불과하여, 무상의료까지는 아니지만 선진국 수준인 80%의 보장성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정부의 추가 예산소요분은 2조원 정도이다.
--한때 시민사회단체들이 경제위기 하에 괜찮은 사회적 일자리(descent social job)를 창출하여 공공적 성격의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늘리자고 했을 때에도 100만원의 월급을 100만명에게 주기 위해 필요한 재원이 10조원이라 주장했었다.
하지만 이태수 교수는 이런 '즐거운 상상'의 끝이 공허하다고 말한다. 정말 공허하기만 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4대강 사업에 소요될 예산 22조원의 재원 마련과 이 예산 때문에 조정될 수밖에 없는 각종 SOC 사업예산의 축소 때문에 말들이 많다.
나는 이런 논란들이 반갑다.
한 개인 1천만원씩 저금해서 2백만년이나 모아야 할 돈이 20조원. 우리들 개인은 앞으로 2백만년 동안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상상해보아야 한다. 2백만년이라는 세월이면 인간의 진화에 큰 돌연변이가 생겨도 생길 시간이다. 나한테 그런 세월이 주어진다면 뭘 못하겠는가!
그렇듯, 우리 사회도 20조원의 재원이 있다면 과연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진지한 논의를 해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냥 결정된 사업이라고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정말 어디에 써야 할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태수 교수는 "보편적인 복지국가의 확립이란 현실은 사실 그리 멀리 있지도 않은 것이 아닐까?"라고 묻고 있다. 정말 가깝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게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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