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22일,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국제수학연합(International Mathematical Union)이 주최하는 필즈상 수상식이 열렸다. 필즈상은 4년에 한 번 숙학계에서 뛰어난 공적을 쌓은 수학자 몇 명에게만 주는 수학계 최고의 상이다. 이 해 필즈상은 '푸앵카레 추측(Poincare conjecture)'을 해결한 수학자인 그리고리 페렐만에게 수여될 것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 상을 받기 위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마드리드로 날아오지 않았다. 필즈상 역사상 전대미문의 수상 거부. 언론은 '푸앵카레 추측'이라는 100년의 난제를 해결한 이 '수수께끼의 수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기사로 만들었다.
나는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의 대학 풍토를 살짝 비틀면서 언급한 도정일 교수의 칼럼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버섯 따러 간 천재 수학자'에서 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생각할 거리는 그리샤 페렐만 같은 사람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태어나 학위를 한다면 그가 대학에 취직이나 할 수 있을까, 버섯이나 따러 다니고 영광도 명예도 돈도 내팽개치는 사람이 한국 대학사회 어느 곳에 발붙일 수 있을까라는 문제다. 그가 천재라면 우리의 교육이, 우리 대학들이, 그런 유형의 천재를 길러내고 보듬을 수 있을까. 돈 될 ‘대형연구’ 같은 것에나 목매단 대학들이 혼자 외롭게 무언가를 추구하는 페렐만 스타일의 학자를 쫒아내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그리샤, 너는 한국에는 오지 말라. 여긴 버섯의 숲도 없다네."
<100년의 난제,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라는 책을 읽었다. 재미있다. NHK 교양프로그램 프로듀서인 가스가 마사히토라는 이가 바로 이 '수수께끼 수학자'를 취재한 이야기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뒤따르는 취재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흥미로운 수학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기도 하다.
가스가 마사히토도 취재 과정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토로하였듯이, 수학 분야의 고유 언어 즉 '수학언어'(보통 한두 개의 수식으로 표현되는 그것)를 이해하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사실 이 책에는 수식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난해한 '수학언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수학자들이 도전해서 풀고자 하는 문제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푸앵카레 추측'이 묻고 있는 것은 우리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가하는 질문과 연관이 있다. 과연 우주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 책에 소개된 것으로는 2008년 3월 시점까지의 결과로는 (1)우주의 나이는 약 137억 살이다. (2)우주의 크기는 적어도 780억 광년 이상이다. (3)우주의 조성은 약 5%가 통상의 물질, 23%가 정체 불명의 암흑 물질, 72%가 암흑에너지라고 생각한다. (4)WMAP 위성 자료에 지금의 우주 모델 이론을 적용하면 우주는 영원히 팽창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는 대우주의 가장자리에 서서 눈에 보이는 범위만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자료는 우주의 곡률은 제로, 다시 말해 평평하다고 말하지만 과연 대우주가 평평한 것인지는 모른다. "일찍이 인류는 지구를 오로지 평평한 평면이라고 믿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는 겨우 대우주의 가장자리에 서서 눈에 보이는 범위만으로 우주의 형태를 파악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앵카레 추측'이라는 것이 흥미로운 것은 인간은 우주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우주 바깥으로 나간다'는 말은 얼마나 막막한가, 얼마나 상상력을 발동해야 하는가.) 상태에서도 우주의 형태를 알 수 있는 실마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그런데 불과 4백년 전의 사람들만 하더라도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과연 우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 책에는 '푸앵카레 추측'을 풀고자 했던, 수학자들의 100년간의 노력을 추적하면서 윌리엄 서스턴 박사의 '기하화 추측'도 소개하고 있다. 우주는 적어도 여덟 가지 형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가하는 질문도 질문이지만, 이 책에서는 수수께끼 주인공인 그리고리 페렐만이 왜 필즈상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거의 완전한 은둔자가 되어 버섯이나 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왜 페렐만이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단절하게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하나의 해석으로 제시되는 것이 그의 스승인 미하일 그로모프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불필요한 일은 철저히 버리고, 자신을 사회에서 완전히 차단시켜 문제에만 집중했습니다. 그의 순수성이 7년 동안 고독한 연구를 가능하게 했고,동시에 필즈상을 거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업적을 평가할 때 순수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수학, 예술, 과학, 어디든 타락이 생기면 소멸의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도 논의 순수성이 일정 수준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붕괴할 것입니다. 의식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수학은 순수성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학문입니다. 자신의 내면이 무너지면 수학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내면이 무너지면 수학은 불가능하다"는 말. 이것 차라리 수학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종교인이거나 시인의 말이라 해야 할 것이다.
수학 분야 책의 목록을 쌓아가고 있는 '살림math'의 책들은 또 무엇이 나올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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