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9일 토요일 오후2시. 목동에 있는 양정고등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월계축전 독서특강' 때문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1982년에 졸업한 이후, 처음으로 모교를 찾아갔으니 27년만의 일이었습니다. 만리동에 있던 모교가 목동으로 이사간 것이 1988년의 일인데, 이사 간 학교를 찾은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인연이 생긴 것은 올초에 정독도서관에서 서울 지역의 학교도서관 사서교사 선생님들의 연수 시간에 제가 한 시간의 강의를 맡게 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강의 시간에 저의 학창시절이었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의 학교도서관의 모습을 언급했는데, 강의가 끝난 뒤 어느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선생님이 바로 양정고등학교의 학교도서관을 맡고 계신 송봉익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름방학 때 도서반 학생들이 대학로에 있는 저의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독서신문'에 게재할 인터뷰 기사를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1학년 학생인 김세현 등 3명의 학생이 찾아와서 1시간 여의 시간 동안 준비해온 질문을 했습니다. 이번 월계축전 때 만들 독서신문의 특집이 양정학교를 졸업한 선배 시인과의 만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정권, 이상규, 조건청 시인 등과 함께 황송하게도 저를 소개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8월 29일 월계축전 때 특강의 강사로 초청되었습니다.
어느덧 한 세대가 지나갔음을 느꼈습니다. 저에게 잊혀지지 않는 월계축전의 장면들이 정말 말들이 달려가듯 지나갔습니다. 그때는 1980년, 5월항쟁이 있었던 해였습니다. 친구 녀석과 문집을 만들면서 우리는 문집의 제목을 '조기(弔旗)'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막상 축전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배포할 즈음에 선생님들께서 이런 제목의 문집은 곤란하다고 하시어 급하게 표지를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 기억들은 아주 큰 역사에서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지만, 개인의 기억 속에는 아주 커다랗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전날 강화 석모도에 누였던 몸을 일으켜 아침 일찍 길을 달려 모교를 찾아갔습니다.
도서관 앞에는 학생들이 '독서신문'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낡은 서가와 책들 사이에 서서 '책읽기와 꿈'이라고 학생들이 던져준 제목으로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꿈은 질문하는 것이다." 질문의 힘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내용의 말들이었습니다.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질문이 나를 밀어간다.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송봉익 선생님께서 서고에서 꺼내온 교지 42호에 실렸던 시, 고등학교 2학년 때 발표했던 시 '방황'과 첫 시집 <아름다운 지옥>의 첫번째 작품인 '진정 사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두번째 시집 <한 그루 나무의 시>에서 '갈매나무'를 낭송해주었습니다.
마침 진명여고 도서관의 사서교사 선생님께서 이끌고 온 진명여고 도서관 학생들도 자리를 함께 했는데, 강의가 끝난 뒤 일일이 한 마디씩 싸인을 해달라고 해서 황송스러웠습니다.
강의 시간 전에 문예반을 이끌고 있다는 강희수 선생은 본인이 문예반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또한 강의 시간 내내 함께 자리를 한 선생님께서는 국어를 담당하고 있는데, 학생들에게 잊지 못할 시간이 되었을 거라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도서관 바로 옆에 위치한 학교의 역사자료실에 들려 손기정 선배의 모습이나 김교신, 윤오영, 안종원, 장욱진 선생 등의 자취를 잠시나마 살펴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축전 전체를 관장하느라 바쁘실 터인데 김창동 교장 선생님께서는 일부러 시간을 내주시어 잠시 말씀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57회 졸업생이라 하셨습니다. 기회가 되고 예산이 마련되면 번듯한 학교도서관을 새로 짓고 싶다는 포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전주여고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독서토론 모임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김창동 교장 선생님은 2007년에 부임해오셨는데, 부임해 오니 문예반이나 도서관 등이 전혀 활동하지 않고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대학에 많은 학생들이 진학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런 점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그런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독서토론이나 문예반, 도서관의 부활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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