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8일 목요일

되돌아본 2017 출판·문학계/ 김유진 김향미 경향신문 기자

출판 산업의 위축과 독자 감소라는 몇 년째 되풀이되는 현실은 올해도 출판계를 비켜가지 못했다. 새해 벽두에 도매상 송인서적이 부도를 낸 데 이어 출판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출판을 둘러싼 환경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과 과학, 소설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흐름이 나타나고 출판인들 스스로 희망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내부적으로 결실 또한 적지 않은 한 해였다. 2017년 출판·문학계를 네 개의 키워드 중심으로 돌아본다.
■ 더 깊고 넓어진 페미니즘·과학 
페미니즘 관련 서적은 올해 78종이 출간되면서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지난 8월 방한한 ‘맨스플레인’의 작가 리베카 솔닛의 신작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를 비롯해 <페미니즘 리부트> <그런 남자는 없다> 등 국내 저자들이 쓴 페미니즘 관련서도 쏟아져 나왔다.
특히 문학 분야에서 페미니즘 바람이 거세게 일었다. 지난해 10월 출간된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올해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며 누적 판매 50만부를 기록했다. 이혼을 겪는 여성들이 등장하는 김숨의 <당신의 신>, 레즈비언 커플인 딸과 어머니를 다룬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강화길의 <다른 사람> 등 국내 여성작가들의 작품도 잇따라 발표됐다. 조남주 등 7명의 젊은 여성 작가들은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를 냈다. 
과학도서 붐은 과학 전문 잡지 창간으로 이어졌다. 지난 9월 동아시아는 ‘메이커스: 어른의 과학’을, 이음은 과학비평잡지 ‘에피’(이음)를 창간했다.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등 과학과 사회의 접점을 모색하는 책도 큰 호응을 얻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페미니즘의 인기는 여성이 겪는 불평등이 해소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본다”며 “과학책들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흐름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 소설의 인기와 ‘나’에 집중한 독자들 
올해는 소설이 많이 읽혔다. 교보문고의 소설 분야 점유율은 10.1%(12월3일·판매 권수 기준)로, 최근 10년간 가장 높은 수치였다. 김영하, 김애란, 김훈, 황석영, 무라카미 하루키,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신간이 몰려 나와 소설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현재의 삶을 즐기라는 ‘욜로’(Yolo)의 메시지가 출판계에서도 주목받았다. ‘나’와 삶,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자세가 곧 독서로 이어졌다. 인간 내면과 삶을 사유하는 소설과 시의 인기가 곧 이를 증명한다. 에세이 분야에서도 <언어의 온도>를 비롯해 <자존감 수업>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 삶에 관조적인 에세이가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일본 소설은 올해 역대 최대 판매량(80만부, 교보문고)을 기록했고, 소설 분야 전체에서 한국 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에 근접했다. 
■ 출판계 의미있는 실험들 
도서 시장의 장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개성있는 큐레이션을 내세우는 독립서점이 올해도 100여개 문을 열었다. 지난 6월 서울국제도서전은 다양한 기획전을 열면서 할인행사 없이 역대 최다 관람객인 20만명을 끌어모았다.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등 1인출판사 세 곳이 함께 낸 ‘아무튼’ 시리즈는 새로운 협업 모델을 만들었다. 창비의 시 전문 애플리케이션 ‘시요일’,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오디오북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 등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시도였다. 민음사의 ‘쏜살문고’ 등 문고본과 리커버 재출간도 독자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그러나 대형 서점 매대 논란이 불거지는 등 자본을 앞세운 대형 서점 체인과 인터넷 서점이 여전히 시장에서 지배력을 행사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동네서점이나 독립출판의 문화적인 의미는 크지만 운영자의 상당수가 업계에서 밀려난 이들이라는 점에서 출판산업의 구조적 파행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블랙리스트 이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박근혜 정부 당시 ‘찾아가는 도서전’ ‘세종도서 선정·보급’ 등의 사업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적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기호의 <차남들의 세계사>, 김종배·조형근의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등이 피해를 봤다. 또 한국문학번역원도 이시영, 김연수, 김애란, 박범신 등 을 지원사업에서 배제했다. 
올해 도종환 시인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으로 각각 취임했다. 문체부와 문예위의 우선 과제는 “블랙리스트 적폐청산”이다. 또 출판·독서 문화의 토대를 다시 쌓는 작업이 필요하는 지적도 나온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사서교사 임용이 신년엔 228명까지 늘어났다고 한다”면서 “결국엔 책 읽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책의 방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272107015&code=960205#csidx100dc50cc66a7afa8a3272d8d0c1e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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