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의 글쓰기를 응원하는’ 손바닥문학상이 올해로 아홉 해를 맞았다. 올해는 지난해 300여 편보다 적은 총 232편이 응모됐다. 그중 <한겨레21> 기자들이 예심을 해 23편을 본심에 올렸다.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 권성우 문학평론가, 이명원 문학평론가가 본심 심사에서 대상작으로 ‘경주에서 1년’, 가작으로 ‘가위바위보’와 ‘푼타아레나스행 택배’를 선정했다. 심사 대표집필을 맡은 이명원 평론가가 제9회 손바닥문학상 수상작과 눈여겨볼 만한 작품들의 심사평을 보내왔다._편집자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의 공모 대상은 동시대의 사회적 이슈를 주제나 소재로 한 픽션·논픽션이다. 그래서인지 본심 대상 작품 23편 역시 신문의 사회면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사건들이 소묘되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이번에는 특히 우리 사회의 다채로운 소수자들이 얼굴을 내민 것이 인상적이었다. 성소수자, 경력 단절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빈곤한 조손가족, 사회적 연착륙에 실패한 청년, 정리해고된 인턴 사원, 차별에 시달리는 혼혈 아동, 가히 동시대의 어두운 단면이 날카롭게 부각됐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손바닥문학상에 응모한 작품들과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서 긍정·부정을 논하기보다 그만큼 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억압과 폭력, 배제적 현실이 이제는 거의 구조화 단계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새삼스러운 인식도 해보았다.
범속한 소재 속 비범한 인식
그렇다고는 하지만, 비극적 상황을 평면적으로 재현하고 탄식하는 데서 그친다면 힘찬 문학적 감동을 찾기 어렵다. 문제를 드러냄과 동시에 그것을 행동에 의해서건, 아니면 정념을 통해서건 뜨겁게 맞서고 팽팽하게 대결하는 내적 극복 또는 저항의 태도가 서사적 긴장과 감동을 가능케 한다. 대개의 좋은 문학작품이 패배 자체에 주목하지 않고 그 과정에 이르는 인물들의 반발력을 공들여 묘사하는 이유는 이런 까닭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본심에 제출된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대단히 어둡고 비관적일 뿐만 아니라 체념적 정조가 지배적이었음은 문제적이다. 서사의 대단원을 자살과 죽음으로 처리하는 작품이 많다. 하지만 이는 비극성을 고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천편일률성, 작위성, 소재의 장악 능력 부재를 드러내는 것으로 판단됐다.
서사적 장악 능력의 문제는 결론 처리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건을 성급하게 봉합하기 위한 빈번한 자살이나 죽음도 문제이지만, 이제 막 중심 사건에 들어왔는데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타협적인 결말을 제시하거나, 열린 결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작가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쓰다가 만 것 같은 작품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손바닥문학상은 가령 일간지의 신춘문예나 문예지의 신인상 제도와 같이 기술적으로 숙련된 작품을 뽑는 제도는 아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체험해왔던 현실에 대한 진솔한 공감 능력과 비판 의식, 삶에 대한 진실 추구 같은 범속한 소재에서 비범한 인식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주로 논의한 작품은 ‘화마’ ‘시간을 접으며’ ‘옛날 통닭’ ‘밤의 목소리’ ‘푼타아레나스행 택배’ ‘가위바위보’ ‘경주에서 1년’ 등 7편이었다.
피로한 현실에서의 탈출과 극복
‘화마’는 안정적인 문장을 가졌다. 그러나 모녀의 신산스러운 인생유전이라는 모티프와 개의 죽음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시간을 접으며’는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시인인 남편이 희생됐다는 설정인데, 그러다보니 죽음조차 낭만적으로 채색되는 단점이 있었다. ‘옛날 통닭’은 무상급식과 태극기집회 사이에서 생활고를 견뎌나가는 노인의 삶을 골계적으로 서술해 서사의 긴장감이 떨어졌다. ‘밤의 목소리’는 2인칭 ‘너’의 서술이 인상적인데, 정규직이 되려고 사장과 성관계를 했지만 해고 통보와 함께 자살해버렸다는 인턴 여성의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앞에서 언급한 작품 5편 외에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작품은 ‘푼타아레나스행 택배’와 ‘가위바위보’ ‘경주에서 1년’이다.
‘푼타아레나스행 택배’는 잠에서 깨자 소파가 되어버린 한 택배 분류 노동자의 몽상을 담고 있다. 카프카식 ‘변신’ 모티프의 패러디인데, 푼타아레나스로 상징되는 이역의 낯선 도시는 피로한 현실에 대한 탈출과 극복의 표상으로 제시된다. 문체나 서사구조 역시 안정적이다.
‘가위바위보’는 소설로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재취업 뒤 워킹맘이 되어 겪는 가족과 직장, 양방향에서의 불안감을 담고 있다. 그것이 몸의 생리적 이상 징후라는 장치로 나타나면서 서사의 핍진성을 높인다.
‘경주에서 1년’은 본심에 유일하게 남은 논픽션 작품이다. 일종의 병상 수기에 해당하는 산문인데, 말기암 환자의 글이라고 보기에 요양원에 있는 환우들에 대한 서술과 묘사,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인식과 성찰이 자못 생동감 있고 사색적이었다. 본심에 올라온 많은 소설 작품의 작중 인물들이 자살과 뜻하지 않은 죽음이라는 상황에 너무 쉽게 노출되는 것과 반대로, 이 작품의 서술자는 설사 한계상황일지라도 살아 있다는 것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담담한 성찰적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
논픽션 위한 ‘발바닥문학상’을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서조차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는… 다시 사랑하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을까. 폐색되어 소진되어가던 우리 생의 에너지는… 다시 흐를 수 있을까.”(‘경주에서 1년’ 중에서)
이런 문장을 읽으면서 우리 심사위원들은 어떤 한계상황에서도 사랑과 생의 에너지가 다시 흘러야 하고, 흐를 수 있음을 이 작품이 증거할 수 있다고 생각해 흔쾌히 대상작으로 결정했다. ‘가위바위보’와 ‘푼타아레나스행 택배’는 가작으로 선정했다. 모두에게 축하드린다.
마지막으로 좀 엉뚱하지만, 종래의 손바닥문학상으로 픽션·논픽션 모두를 공모하기보다 ‘발바닥문학상’의 신설을 제안해본다. 손바닥문학상은 픽션, 발바닥문학상은 논픽션으로 장르를 이분화하면 어떨까. ‘한겨레21 문학상’이라는 제목으로 손바닥문학상 부문, 발바닥문학상 부문으로 나눠 공모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좋은 논픽션도 문학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명원 문학평론가
*본심 심사위원: 최재봉, 권성우, 이명원
출처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6&aid=0000039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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