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한 편의 영화가 개봉된다. 나는 세 번이나 극장을 찾았고 팝콘도 먹지 않고 혼자 앉아있었다. 그래, 그랬다. 영화포스터 맨 하단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5월, 전 세계인의 가슴을 두드리는 영화가 옵니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Poetry)>다.
나는 당시 대중영화인데 '시(Poetry)'라고 제목이 붙은 데 놀랐고, 전 세계인의 가슴을 두드리는 영화가 온다, 는 포스터 문구에 한 번 더 놀랐다.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진출했고 각본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런데 케케묵은 이야기를, 그것도 이 나라에선 흥행에 실패한 영화이야기를 왜 끄집어내는 거야. 이렇게 반문하는 독자들을 위해 훌쩍, 7년이 지난 지금으로 와 이야기하나 더. 이달 초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 겸 전 MBC PD가 해직 1997일 만에 신임 MBC 사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뉴스타파로 이적한 후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자백>과 <공범자들>. 지난 8월 개봉한 영화 <공범자들>은 KBS, MBC 등 언론을 망친 주범들과 그들과 손잡은 공범자들이 지난 10년간 어떻게 이 나라를 망쳤는지 그 실체를 생생하게 다룬 작품이다.
그래, 그랬다. 그런데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망치고 속인 것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온갖 적폐로 나라 전체를 들어 올려 탈탈 털어낸 다음 다시 내려놓아야 할 지경 아닌가.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는 문학을 비롯해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쳐 작동했고 그 꼬리와 몸통이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이창동 감독의 <시(Poetry)> 또한 피해를 입었다. 칸에서 각본상 받은 영화를 영화진흥위가 0점 처리, 지원을 받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으니까 말이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삼류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난 10년간 이 나라 문화예술계는 무서울 정도로 망가졌고 시(문학)는 어처구니없게도 그 자체가 '감옥'이었다. 어쩌다 이 모양이 된 걸까.
물론 지난 10년간 나라를 망친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문학을 가면으로 쓴 문인들도 있다. 시인이자 작가 장정일은 지난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인(文人)들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글을 신문에 실었다.
황석영: 상스러운 입담꾼, 김지하: 병든 망상가, 이문열: 강담사(講談師·길거리에서 소설 등을 읽어주고 돈 받는 사람), 이외수: 채신머리없는 기담가…. 그의 이런 비판은 소설가 이문열이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지냈던 일과 소설가 황석영이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했던 일, 시인 김지하가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은 형편없고 안철수는 깡통"이라며 박근혜 후보를 공개 지지했던 일 등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또 있다. 시인이나 작가는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조갑제, 정규재, 변희재, 지만원 같은 지식인(?)과 문필가(?)들을 보면 글쓰기 자체가 '반성'과 '이상'을 동반하게 마련이라는 믿음을 분쇄한다고 장정일은 말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망친 10년을 어떻게 복구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입으로만 거창하게 정치나 경제에서 찾을 수 있는 일이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전 세계인의 가슴을 두드리는 영화 한 편, 시 한 편이 그 시작이 될지 모른다. 모든 문화예술 특히 시는 살아 있는 어린 시절,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부동의 그 어린 시절을 우리 안에서 되찾도록 도와준다.
해서, 권한다. 짧은 시 한 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행여 시가 어렵다면 아동문학가이자 글쓰기 교육자였던 이오덕 선생과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무려 30년 동안 주고받았던 편지를 모은 서간집부터 읽자고.
그 서간집의 제목은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그래, 곧 새해다. 모르는 당신께도 웃음 건네며 묻고 싶다.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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