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 뉴스 검색창에 ‘인적자원’을 쳐보면 40만건이 뜬다. 인적자원엔 ‘투자’ ‘개발’ ‘성장’ ‘경쟁’이란 말이 따라붙는다. ‘자원빈국이기 때문에 인적자원에 투자해 국제 경쟁력을 키워 계속 성장해야 한다.’ 이런 논리를 담은 글이 수두룩하다.
인적자원? 인적자원개발기본법이란 게 있다. “인적자원이라 함은 국민 개개인·사회 및 국가의 발전에 필요한 지식·기술·태도 등 인간이 지니는 능력과 품성”을 뜻한다. 법 목적은 ‘국가 경쟁력 강화’다. 인적자원은 국가가 나서서 개발·투자해야 할 그 무엇이다.
한국은 ‘인적자원 부국’이다. 청년들은 알바로 번 돈, 부모에게 받은 돈을 스펙에 투자한다. 부국의 비극은 이렇게 작동한다. 힘들게 국가·기업이 요구하는 ‘지식·기술’에 ‘태도’까지 갖춰 ‘시장’에 나왔더니, 4차산업혁명에 걸맞은 인적자원이 되라고 요구받는다.
이 말은 오래 쓰였다. 일제가 조선 인민을 착취할 때 이 말을 썼다. 군사독재정권이 근대화와 성장을 명목으로 시민을 동원할 때도 사용한 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인권 신장에 기여했지만, 인적자원 법제화로 ‘시장반응형 인간’ 양산을 본격화했다. 인적자원법은 김대중 정부 후반기 2002년 8월26일 제정됐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반기인 2003년 3월27일 시행됐다. 상기하면, 두 정부 때 교육부 명칭은 ‘교육인적자원부’였다.
인적자원 부국은 비극의 강도와 비례한다. 노동자들이 안전 문제로 죽고, 청년들은 무한경쟁에 시달리며, 을들이 착취당하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갑질도, 부당해고도, 산재도 사람을 자원·자산·상품으로 여긴 결과다. 주인이 국가·기업이다. 공식 인적자원 무리에 들지 못한 청년들은 광물 자원에 빗대 금·은·동 수저론으로 자조한다. 정규직이 된 인적자원은 그간의 ‘투자’를 내세우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한다. 갈라진 청년 세대는 비극의 정점을 이룬다.
잔인한 말이다. 사람을 도구 취급하지 말라 하지만, 이 말은 도구보다 심하다. 사람을 오로지 쓸모 여부, 활용가치로 따진다. 사람은 언제든 필요할 때 가져다 쓰는 물자다. 바닥날 때까지 채굴해 사고팔고 버리다가 그 끝이 보일라 치면 아우성친다. 이 아우성이 저출산 대책을 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 목소리에도 담겼다.
경제경영 용어를 넘어섰다. 진보도, 보수도 쓴다. 관료도, 학자도, 시민운동가도 사용한다. 인적자본은 휴먼 리소스(Human Resource)의 번역어다. 유사어 휴먼 캐피털(human capital)을 옮긴 인적자본도 애용된다. 인적자원을 두곤 국제노동기구(ILO)가 인간을 상품 취급하는 것에 항의했다. 인적자본은 2004년 독일 슈피겔이 선정한 그해 ‘최악의 단어’였다. 한국 사회는 사람을 생산·지배하는 이 말에 스며든 비극과 비인간화에 둔감하다.
다시 이 말을 떠올린 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도종환의 발언을 듣고서다. 그는 최근 ‘문화비전2030’ 정책을 발표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희망을 잃어가는 청년들, 생명·인권 경시로 고통받는 사람들, 블랙리스트로 배제된 예술가들 모두를 보듬는 게 문화의 힘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있는 문화’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오래전부터 ‘사람’을 강조했다. 대통령 문재인의 2012 대선 슬로건도 ‘사람이 먼저다’였다. 현 정부가 사람·생명을 우선하는 정책 기조를 세우려고 노력한다고 본다. ‘사람이 있는 문화’도 그런 차원에서 나왔을 것이다. 정부·여당은 ‘근로자’란 용어를 ‘노동자’로 변경하려 한다. 대통령도 지난 대선 때 헌법의 ‘근로자’는 ‘노동자’로, ‘여자’는 ‘여성’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런 노력이 인적자원법 폐지로도 이어지길 바란다.
한 사회의 언어는 사회 구성원의 생각 방식을 반영한다. 인적자원·자본을 대수롭지 않게 쓰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의 비극은 무시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132058025&code=990100#csidx9b4f8dd22e3a2b99bbab462fdc6f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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