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여성경제학회 창립 20년…학계 ‘여성 과소대표’ 여전
서울·연·고대 경제학과 교수 102명 중 여교수 단 2명
전국 ‘경제’명칭 학과서 여성 전임교수는 7%
지난 20년 ‘젠더 제도화’에도 경제학계 ‘성 평등’은 미약
바야흐로 ‘82년생 김지영’이 우리사회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여러 사회경제정책에 대한 개입·비판 활동을 펴는 여성경제 연구자집단도 조금씩 성장 중이다. 올해는 한국여성경제학회 창립 20년이다. 그러나 여성정책 연구자집단의 사회경제적 진출은 여성관리자 할당제·목표제가 도입된 기업·공공기관에 비해 성별 ‘과소 대표’ 및 ‘과소 분포’를 여전히 면치 못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의 딸들’
여성경제학자는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를 은유적으로 빗대 ‘애덤 스미스의 딸들’로 불린다. 현재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3개 대학의 경제학과 전임교원(조·부·정교수) 총 102명 가운데 여교수는 불과 2명이다. 서울대 경제학부(36명)와 고려대 경제학과(31명)에는 한명도 없다. 연세대(35명)에는 2012년 이후 임용된 한유진 조교수와 최윤정 부교수가 있다. 세개 대학 경제학과에서 은퇴한 명예·전직교수(총 75명) 중에도 여성은 한명뿐이다. 2009년 서울대 조교수로 신규임용됐던 손시팡(중국인) 교수가 유일하다. ‘여성 교수 없음’을 “경제학의 학문적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겨레>가 교육통계웹사이트 ‘대학알리미’에서 추출한 결과, 국내 대학 중 ‘경제’ 명칭이 들어가는 학과(164개) 소속 교원(전임 교수 및 비전임 강사 포함)은 총 2106명으로 이 가운데 여성은 230명(10.9%)에 불과하다. 전임교원은 훨씬 더 적어 총 1057명 가운데 여성은 74명(7.0%)에 그친다. 반면, 경제학 학위 취득자 가운데 여성 비중은 이보다 훨씬 높다. 2016년 국내 대학원 경제학 박사 학위 취득자 110명 가운데 여성은 27명(24%)이다. 국내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597명)도 여성은 198명(33%)에 이른다. 기업·관료 조직뿐 아니라 연구집단에서도 ‘유리천장’에 앞서 진입단계에서부터 두텁고 견고한 ‘유리벽’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소재 대학만 보면 2000년 이전에 경제학과 교수로 임용된 여성은 단 3명이었다. 김애실(1980년 임용·한국외대)·차은영(1994년·이화여대)·성효용(1999년·성신여대) 교수다. 김대중 정부 들어 국·공립대 여교수 임용 할당제를 도입해 연구집단에서의 ‘적극적 여성고용정책’으로 여교수가 늘어나긴 했다. 그러나 일부 기업이 단지 성평등 이미지를 높이려고 일부 여성임원을 상징적으로 두는 것처럼 대학에서도 여성 경제학자의 교수 진출은 여전히 ”남성 편향’에 가로막혀 있다. 홍태희 조선대 교수(경제학)는 “경제학 여성 박사가 많아졌지만 대부분 전문대로 가고, 주요 대학엔 여성 교수를 찾기 어렵다”며 “교수 가운데 여성이 한 명만 있어도 남성 편향적인 경제학을 감시할 수 있고, 경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도 좋다”고 말했다.
남성들의 경제학을 넘어
지난 1998년 봄 <여성신문>은 “여성경제학의 혁명을 꿈꾼다”는 제목 아래 1년 전(1997년)에 창립된 한국여성경제학회를 다룬 기사를 실었다. 여성경제학의 불모지 상태에서 대학교수 진출은 엄두도 못낸 채 금융권·국책연구원에 가 있던 10여명의 여성 연구자가 모인 친목단체가 당시 72명의 회원을 가진 학술단체로 성장한 것이다. 이들이 ‘반쪽짜리’ 남성 편향 경제학에 반란을 일으킨 건 <남성들의 경제학을 넘어서>를 공동 번역하면서부터다. “소수 종족의 빈민가로 추방돼 있던 여성경제학이 그곳에서 혁명을 꾀한”(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 셈이다. 1970년대 후반 어느 경제학회에 참석한 유일한 여성 회원이던 김애실 교수는 당시 누군가가 부인을 동반한 것으로 착각했을 정도라고 한다. 김 교수는 국내 최초로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추계해온 학자다. 여성경제학회 회원은 현재 200여명으로 양적으로 팽창했다. 통계청장도 두 명 배출했다. 이인실 서강대 교수(전 한국여성경제학회장)와 황수경 현직 통계청장(한국여성경제학회 이사)이다. 여성주의에 기반한 각종 사회경제정책 수립·평가는 젠더 관점에서 생산된 통계 데이터가 관건이라는 점에서 통계청장 배출은 의미가 적지 않다. 여성경제학회의 한 임원은 “단지 학회에 참여하는 여성회원 숫자가 아니라 양성 평등이라는 젠더 관점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요즘 30~40대 경제학 분야 젊은 여성연구자를 보면 젠더 관점을 갖고 여성경제학회에 들어오겠다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예전보다 줄어들고 있다. 이은형 여성경제학회장(국민대 교수)은 “사회경제적으로 젠더 평등이 향상되서 그런 것인지, 성 평등에서 아직도 진전이 없는 현실에 좌절해서 인지 살펴봐야 할 대목”이라며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지만, 가장 개선되지 않는 성 불평등 문제에서 우리는 얼마나 전진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여성주의’ 남성연구자들
지난 1995년 세계적인 페미니즘 경제학자 도널드 맥클로스키(시카고대)는 53살에 자신의 성을 여성으로 전환했다. 이름도 디어드리 맥클로스키로 바꿨다. 여성경제학회에는 남성 연구자 50여명도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기업을 상대로 여성인력 활용분야의 ‘아시아여성지수’ 조사를 벌여온 성상현 교수(동국대 경영학과),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시간을 주로 연구해온 지민웅 박사(산업연구원), 청년층 비정규직의 성별 차이 등을 연구해온 윤명수 교수(인하대) 등이 대표적이다. 윤 교수와 하인혁 교수(미국 웨스턴캐롤라이나대학)는 이 저널의 편집위원도 맡고 있다.
여성 관련 사회경제정책을 연구하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도 석·박사 연구자(총 78명) 가운데 남성이 13명이다. 여성정책연구원은 국내 연구원 가운데 유일하게 ‘성인지 통계’를 구축하고 있다. 각종 사회경제정책이 특정한 성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지를 검토한다. 김태홍 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여성 관련 정책연구과제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며 “여성 일자리, 경력단절 문제, 일과 가정 양립뿐 아니라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을 젠더 관점에서 보는 연구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20년 성과, 아직 ‘미약한 혁명’
2005년부터 여성정책연구원의 주도로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여성관리자 임용목표제가 실시되고, 2007년부터 여성정책연구원에 성인지예산·통계센터가 설치되는 등 성인지적 관점의 ‘젠더 제도화’가 본격 진행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정책수립·시행 과정에서 성별 격차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예산 책정·배분 때 성에 따른 차별적 영향을 평가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 현상’이 말해주듯 사회경제정책과 젠더가 만나는 일은 아직 ‘미약한 혁명’에 머물고 있다. 한 여성경제학회 임원은 “50대 이상 여교수는 대부분 여성쿼터 혜택 등 ‘소수 대표성’ 덕분에 교수 지위에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여성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연구해왔던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제 더 이상 여성정책연구를 수행하지 않는다. 지난 20년 동안 1998년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신설된 이후 주요 정부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실이 만들어지고 2001년 여성부(현 여성가족부)가 출범했지만 경제분야 연구집단 내부의 ‘성 평등’은 여전히 미완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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