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독서 목록을 만들어나가는 방법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각주를 살피면서 저자가 읽었던 책들을 나도 웬만큼 따라 읽는 것이다. 즉 다음번에 읽을 책은 지금 읽고 있는 바로 이 책 속에 제시되어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독서는 내 경험이기도 하지만,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를 쓴 타이완의 저술가 탕누어의 경험이기도 하다. 만약 이 연쇄가 오랜 시간 끊어지지 않고 잘 이어진다면, 한권씩 쌓아올린 책의 동굴에 들어간 느낌이 들 것이다. 전혀 다른 사유와 경험과 메타포로 짜인 직물에 둘러싸인 느낌. 탕누어는 아마 그 느낌을 알고 있겠지. 그렇게 읽어온 세월이 벌써 50년이니까. 독서는 비슷한 지적 능력을 기르게도 하지만, 그보다는 비슷한 ‘감정의 깊이’를 갖게 하며,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과는 배타적인 경험을 공유하게 하는 면이 있다.
탕누어는 학자도 작가도 아니다. 누가 물어보면 ‘독서가’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글을 써서 수입을 올리니 자유기고가에 가깝지만 그는 글을 쓰기보다는 읽는 게 훨씬 많기 때문에 독서가가 옳다고 주장한다.
미묘한 정확함을 추구하는 괴짜답게 그의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도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자기가 좋아하는 마르케스의 소설 <미로 속의 장군> 속 특정 구절을 뽑아 던져놓고(인용해놓고) 그 아래 자신의 사유를 펼친다. 그런 식으로 챕터를 이어나가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 소설의 구절이 ‘마중물’이 되어 작품 분석으로 시작하는 듯하지만 조금 지나면 책의 중심 주제를 향해 미친 듯이 변신한다. 독서와 기억, 독서와 경험 등이 바로 이 책의 주제다.
물론 독서가 중요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쉴 시간도 모자란다고 답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무언가에 쫓기면서 신경질적인 세계에서는 웬만해선 책을 읽기 힘들다. 탕누어가 말하듯, “독서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자유와 여유, 확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외부 환경에 독서하는 내 자아를 양보할 순 없다.
압축적 근대화는 타이완과 한국 사회의 공통분모다. 탕누어의 책이 우리에게 더 다가오는 이유는 그 닮은꼴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지름길만 밟아온 사회에서는 지진과 같이 거대한 재난이 덮쳐왔을 때 대응을 제대로 못하는데, 이는 “지식이나 전문성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원인은 ‘추격’만 하면서 살아온 사회의 습성에 있다. 타이완 역시 한국처럼 글로벌 첨단 정보에 대해 시차 없는 동보성(同步性)을 추구하다 보니 “가장 굶주리고 병적인 상태에서도 다른 사회보다 앞서려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황급히 서두르다가 과거에 실패하거나 간과한 문제들에서 벌려진 간극을 메우지 못했다. 이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실패했다면 뒤돌아보면서 틈을 조금씩 메워가야 미래의 그림이 괜찮게 그려질 텐데, 여전히 추격하는 데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탕누어에 따르면, 바로 이런 이유로 한국인이나 타이완인은 독서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책을 만들고 나서 타이완에서 그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함께 간 기자가 네 시간 동안 질문을 던졌는데도, 그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속에서 물을 길어 올리듯, 책에서 한번도 이야기되지 않은 것들을 대답으로 내놓았다. 아마도 그의 관심은 책의 내용을 떠난 듯했다. 책을 낸 지 시간이 꽤 지나기도 했고 그는 현재 새로운 독서를 통해 지어진 새로운 사유의 건축물 아래에 서 있기 때문이다. 역시 약간 배타적이었지만,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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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22677.html#csidxdf4c7771c843643bb078c2eaf9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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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속의 장군>. ‘해방자’ 볼리바르를 주인공으로 하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이다. 마르케스는 스페인 식민체제로부터 남미를 해방시킨 키 작은 영웅의 삶을 유장한 필체로 재구한다.
<마르케스의 서재에서>의 지은이 탕누어는 이 소설을 프리즘 삼는다. 마르케스 시선 너머 보이는 볼리바르를 통해 책읽기에 관한 사유를 무지개처럼 펼친다. 탕누어는 대만의 전방위 인문학자로 모든 사물과 현상을 독서와 연관시키는 독특한 인물이다. ‘직업 독자’를 자처하며 카페에 출근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을 읽고 책에 관한 글을 쓴다.
“어느 비오는 밤, 그는 뱃사람의 거처에서 잤다. 잠에서 깨어나니 한 소녀가 침실 한구석에 앉아 있었다. 녹색 린넨 외투를 입은 소녀의 머리는 반딧불이로 만든 고리 모양의 빛으로 장식돼 있었다. 환상 같은 빛 속에 휩싸여 있었기에 권태로운 모습은 짐작할 수 없었다.” 평생 서른다섯 여성을 애인으로 두었다는 볼리바르한테 반딧불이 소녀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 ‘밤에 수시로 날아 들어오는 작은 새들’ 가운데 한 명이다.
지은이는 이 대목을 거멀못 삼아 ‘반딧불이 불빛 속을 홀로 걷다-유년의 독서’ 꼭지를 직조한다. 어릴 적 추억 한 토막. 빛 조각에 홀려 반딧불이를 잡았지만 손바닥 안에서 발견한 것은 검은색 벌레 시체였다. 추억은 시험공부에 찌든 대만 청소년한테 독서란 반딧불이 시체 같다는 상념으로 옮겨간다. 생각은 대학 시절의 또 다른 추억을 부른다. 외부와 격절된 산꼭대기 마을에서 목격한 반딧불이의 군무. 하나에 초점을 맞춰보지만 그것은 이내 사라지고 또 다른 것이 다가와 빛난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나이듦의 과정과 다르지 않는 것. 술자리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다 대성통곡한 미국 소설가 보니것의 동료 이야기가 추가되며 글은 진득해진다.
“저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지금 이 나이에 제 모습이 어떻게 보이나요. 저는 빌어먹을 소설가밖에 되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는 담론이 된다. 인간한테 긴 유년기는 위기이자 선물이다. 생식과 번식의 진화 사슬에 곧바로 진입하지 않고 무료하면서 신기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무료함은 꿈을 부화하는 온상이다. 유년기는 마땅히 보호되어야 한다. 문제는 유년을 위한 도서가 엉망인 점. 교과서 이야기는 통절하다. 목록과 지은이를 베껴 출판사에 보내 이런 책들이 낼 만한지 물어보니 100% 출판 가능성이 없으며 설령 나온다 해도 300~400권 팔리면 다행이란다. 향기도 불꽃도 없는 교과서는 대자연이 억만 년 동안 아이들한테 준 가장 중요한 선물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논리 전개의 치밀성이 고수의 바둑처럼 복기가 가능하다.
마흔 이후의 독서, 독서의 한계와 꿈, 독서의 방법과 자세 등등의 장도 ‘이하 동문’으로 책읽기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왜 볼리바르일까. 그의 광적인 독서는 여성 편력만큼이나 많고 다양하여, 행로의 결절마다 작은 도서관을 남길 정도였다. 왜 마르케스일까. 책읽기와 글쓰기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은이는 진정한 책읽기는 책쓰기가 될 때 비로소 완결된다고 말한다. 완결된 책은 어디에도 없으며 완결은 읽는 이의 몫이라는 것. 탕누어 스스로 책을 씀으로써 독서의 방법을 시연한 셈이다.
지은이의 마음을 움직인 책들과, 거기서 뽑아낸 구슬 같은 인용문이 읽는 내내 밑줄 긋게 만든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82995.html#csidxad18e9f87dfcba783829853b074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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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누어(唐諾)
본명은 셰차이쥔謝材俊으로 1956년 타이완 이란宜蘭에서 출생했다. 국립타이완대 역사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직업 독자’를 자처하면서 독서와 독서 관련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전방위 인문학자이자 작가인 그는 ‘평생 문자에 관한 일에 전념하다 작고한’ 원로 소설가 주시닝朱西寗의 영향으로 모든 사물과 현상, 이름과 사조를 독서와 연관시켜 사유함으로써 새로운 인문학적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문화비평가이기도 한 그는 주시닝의 딸이자 타이완대 역사학과 동창이며 ‘타이완의 프랑수아즈 사강’으로 불리는 소설가 주톈신朱天心의 남편인 동시에 허우샤오셴 감독 영화의 시나리오를 전부 쓰다시피 한 주톈원朱天文의 제부이고, 중국 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인 중아청鍾阿城과 시인이자 출판인인 추안민初安民의 친구로서 이들과의 순수한 지적 소통을 통해 타이완 문화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권력이나 공리에 연연하지 않는 그는 네 명의 작가가 한집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책상이 없어 매일 아침 단골 카페로 출근해 커피 향기 속에서 오후 다섯 시까지 책읽기와 글쓰기로 하루를 보낸다.
주요 저작으로는 『문자 이야기文字的故事』(한국어판 『한자의 탄생』)를 비롯하여 『세간의 이름들世間的名子』 『커피숍에서 14인의 작가를 만나다』 『독자시대』 『끝盡頭』 『좌전左傳』 등이 있으며 모든 저작이 중국 대륙에서도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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