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연령인구(15∼64세)가 줄기 시작했다. 작년에 3763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생산인구가 올해 7000명 줄었다. 2년 후부터는 감소 폭이 20만 명을 넘게 된다. 반대로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올해 31만 명 늘어 708만 명이 됐고, 증가 폭은 앞으로 더 커진다. 노후대책이 발등의 불이고, 여기서 많은 문제가 비롯된다.
개인이 은퇴 후 소득을 얻는 길은 가족의 도움을 받는 방법, 국가로부터 복지 혜택을 받는 방법, 그리고 그동안 모아둔 자산으로부터 자산소득을 얻는 방법, 이 세 가지밖에 없다. 크게 보면 모두 세대 간 주고받기다. 자녀를 키우고 부모를 부양했던 대가로 자신도 부양을 받거나, 그동안 세금을 냈던 대가(또는 정책적 배려)로 정부가 걷은 생산물의 일부를 소비하거나, 생산인구에게 자본이나 토지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것이다.
인구구조가 안정적일 때는 이렇게 세대 간 자원순환이 이뤄지며 경제가 굴러간다. 그러나 은퇴자가 늘고 생산인구가 축소돼 국가 전체가 늙어가는 초유의 상황에선 문제가 복잡해진다. 개인들이 노후대비를 아무리 철저히 해도 아래 세대 생산인구가 줄면 생산물에 대한 청구권을 놓고 극심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노후세대가 모아둔 식권은 많은데 젊은 세대가 생산하는 밥은 많지 않은 형국이다. 이때 개인들의 선택은 은퇴 전에 더 많은 식권을 모으는 것밖에 없다. 더 많이 저축하고, 저축한 돈은 안전자산에 넣는 것이다.
문제는, 수백만 명이 동시에 저축을 늘리니 소비가 부진해져 일자리와 소득이 줄고, 이들이 동시에 안전자산을 찾으니 좋은 길목 땅값만 오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래세대의 생산능력에 도움을 준다면 경제가 선순환하겠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무엇보다 땅값 상승은 생산력을 높이는 ‘자본축적’이 아니다. 경제학에서 자본은 ‘생산된’ 것이면서 생산력 있는 자산이다. 건물 밑의 토지(위치)는 생산된 것이 아니므로 애초에 자본이 아니다. 한국 땅을 다 팔면 캐나다 땅을 두 번 살 수 있다 해서 그만큼 자본축적이 더 됐다고 할 수 있나. 노후대비 자금이 높여 놓은 땅값은 대다수 젊은이들에겐 풍부해진 자본이 아니라 높은 진입장벽이고 생산비용이다. 기업가정신이 설 자리가 없다.
따라서 개인들이 땅 소유권을 매개로 미래세대의 생산물을 더 많이 가져오는 제로섬(또는 마이너스섬) 게임에 몰두하는 상황을 막고, 노후자금이 미래세대의 생산력을 높여 세대 간 상생을 이루도록 방향을 틀어주는 것이 국가 노후대책의 근간이 돼야 한다. 사회안전망으로 노후세대의 원초적 불안감을 덜어주는 동시에 경제의 한 부분에 몰린 자원과 에너지가 미래세대의 생산성을 높이는 인적·물적 투자와 혁신에 쓰이게 하고, 과감한 저출산 대책으로 인구구조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생산적 금융과 함께 적극적 재정운용이 절실하다.
고령화 때문에 앞으로 돈 쓸 일이 늘어나니 국가는 지금부터 재정을 아끼라는 충고도 많다. 나라 곳간을 잘 지켜 미래세대에 부담을 주지 말자고 한다. 당연히 국부는 낭비해선 안 된다. 하지만 국부는 곳간에 넣는다고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의 통찰을 상기하자. 나라의 부는 돈(귀금속)을 많이 쌓아 놓는다고 커지는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 많아져야만 커진다. 즉, 식권을 나라 곳간에 아무리 많이 쌓아놔도 밥 지을 사람이 줄고 생산성이 정체되면 국부는 줄어든다. 따라서 개인들이 노후를 위해 식권을 끌어다 땅에 묻고 있을 때 국가는 그것을 걷든 빌리든 가져다가 생산능력 확대에 써야 국부를 늘리고 노인복지의 기반도 닦을 수 있다. 지대추구 행위에 과세해 재정지출에 쓰는 것은 건전재정에도 부합하니 필수다. 국채도 필요하면 활용해야 한다.
국가가 은퇴를 앞둔 개인처럼 지출을 주저하면 어찌 되겠는가. 당장 국가재정의 건전성은 지켜지겠지만 가계재정의 부실화, 특히 젊은 가계의 부실화는 계속 방치된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도 살 곳도 없이 방황하며 자발적 구조조정(결혼 및 출산 포기)에 내몰리는 사태가 지속되면 결국 국부가 축소되고 개인들의 노후대책도 무용지물이 된다. 개인은 늙어도 국가는 늙지 않는 것이 진정한 노후대책이다. 개인이 미래세대에 대한 청구권을 볼 때 국가는 미래세대의 생산능력을 봐야 한다. 미래세대가 줄고 있으니 이들에게 더 많이 투자하는 길밖에 없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출처 https://goo.gl/H2shW1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home/3/all/20171205/87581892/1?lbFB=1da15eed33b8cb4843b11e348b05926#csidxa731b8d7f2bd161b23ae56aef0e94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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