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이사장 신현수)의 55회 인천마당이 27일 부평아트센터 2층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강사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저자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에 출연한 김민식 MBC 프로듀서(PDㆍ이하 피디)다.
김 피디는 1996년 MBC에 입사해 예능국에서 논스톱ㆍ러브하우스 등의 프로그램을 연출했고, 드라마국으로 옮겨 내조의 여왕ㆍ글로리아 등을 연출한 베테랑 피디다. 또한 ‘PD가 말하는 PD’와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등의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또 다른 이력은 MBC노동조합 부위원장으로 공영방송 사수 투쟁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영화 ‘공범자들’에서 그의 외침은 엄혹한 시기에 현장복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김 피디는 ‘미래형 인재와 창작의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밝고 유쾌하게 강연했다. 아래는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공대 출신, 나이 서른에 예능피디에 도전
나는 한양대학교 자원공학과를 나왔다. 자원공학과가 뭐하는 과인지 몰랐다. 알고 보니 광산학과가 이름이 바뀐 것이더라. 직업에 귀천을 따질 수 없지만 나는 광산에서 일할 생각이 없었다. 광산학과라니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
그런데 돌아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 중 하나가 대학 입시 실패였다. 내가 만약 좋은 학과를 갔으면 그게 내 천성인 줄 알고 계속 살았을 거다. 졸업 후 광산에 가기 싫어 쓰리엠(3M)이라는 회사에 들어가 영업했다. 그런데 재미가 없어 나와서 나이 서른에 피디를 시작했다.
살다가 좋지 않은 상황을 만나면 그 덕에 인생이 풀리겠네, 하고 생각한다. 광산학과를 들어간 게 새 진로를 찾을 기회였던 것이다.
대학 1학년 때 사이클 자전거 전국일주를 했다. 공부하기 싫어 건국대에 놀러갔는데, 자전거 전국일주 포스터가 보이더라. 자세히 보니 건국대 자전거 동아리 신입회원 모집이었다. 실망하고 그냥 가려하다가 용기를 내어 동아리에 찾아갔다. 그런데 나를 받아줬다. 타교생이라서 안 된다는 내용이 회칙에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을 살면서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성문화된 조항이 아니라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남이 나를 거절해도 내가 나를 거절하면 안 돼
남이 나를 거절해도 내가 나를 거절하면 안 돼
대학을 졸업하고 영업사원을 하다가 통역사를 잠깐 하고, 예능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어 나이 서른에 피디에 도전했다. 주변에선 ‘방송사에서 너를 뽑겠냐’며 말렸지만, 나는 원서를 써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가 평생을 산다는 건, 돈을 벌고 산다는 건,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거절당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남이 나를 거절할 수는 있지만, 내가 나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시절의 깨달음으로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
딸이 둘 있는데, 이 아이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키울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우리 아이 미래형 인재로 키워라’는 강연을 봤는데, 미래형 인재는 창의성ㆍ역량ㆍ협업, 이 세 가지를 갖춰야한다고 하더라.
창의성은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
우리나라에 피디가 많지만 내 생각에 창의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은 김태호 피디다. 태호는 학교 다닐 때 옷차림이 남달랐다. 노란 머리에, 피어싱을 하고 힙합차림으로 다녔다.
그러다 MBC 피디 면접을 보러 가는데, 머리를 검게 하고 면접복장으로 가려다가 ‘어쩌면 남은 생을 함께할 수 있는 조직에 나를 처음 보이러 가는 건데, 내가 아니라 거짓으로 꾸미고 가는 게 맞는 건가’ 해서 평소 머리색과 옷차림으로 면접을 보러갔다.
면접관들이 예의가 없다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보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태호는 ‘콘텐츠 창작자라는 피디를 뽑으면서 외모와 겉모습을 보고 떨어뜨린다면 그런 방송사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겁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태호는 합격했다. 예능피디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창의성이다. 창의성은 여러 정의가 있는데, 나는 ‘창의성은 용기’라고 생각한다.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다. 열 명 중 아홉 명이 똑같이 하는데 한 명이 다르게 할 수 있다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태호가 조연출 3년을 하고나서 처음 만든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이다. 유재석을 빼고 대부분 비호감이었던 지라, 이게 10년 전에는 굉장히 무모한 캐스팅이었다. 또, 매주 포맷을 바꾸는 건 보통 용감하지 않고서야 시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각자 재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끄집어내는 게 힘든 것이다. 그것을 조금 더 쉽게 하는 건 용기라고 생각한다.
역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
역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
다음은 역량에 관한 얘기다. 역량은 지식ㆍ기술ㆍ태도, 이 세 가지의 합이라고 한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다.
요즘 시대에 지식은 의미가 없다. 시대가 빠르게 바뀌니까 기술도 마찬가지다. 학교와 직장에서 기술을 배우면, 태도가 남는다. 그래서 태도가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좋은 태도를 기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루하루 생활습관이 드러나는 게 태도라고 생각한다. 좋은 생활습관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협업에 대해 얘기하겠다. 내가 공과대학 자원공학과 나와서 영업사원 하다가 드라마 피디를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잘난 사람들을 찾는 것이다. 글 잘 쓰는 사람에게 대본 맡기고, 잘 생긴 사람에게 배역 맡기고, 미적 감각이 좋은 사람에게 카메라 앵글을 맡긴다. 이게 내가 밥 먹고 사는 비결이다.
요즘은 뭘 하더라도 다 함께 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좋은 리액션을 보여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미지의 세계를 즐기는 방법
나는 내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세 가지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싶다. 바로 책과 여행과 연애다.
출처 http://www.isisa.net/news/articleView.html?idxno=37909
이 세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탐험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세상은 더 빨리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세상을 즐기는 방법은 미지의 세계를 즐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걸 즐기는 데 독서와 여행과 연애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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