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광 임 시와경계 부주간 |
“문학은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는 선생이다. 부모나 상담사도 치유시키지 못하는 청소년의 의식에 소설이나 시가 그 무엇보다 훌륭한 선생 역할을 해왔다”
지난 9월 월간 ‘현대문학’에 15년 전 발표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 4편을 서강대 이태동 명예교수의 비평과 함께 수록하여 세간의 이야기꺼리가 됐었다.
호불호 평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21일, 민주당 도종환 의원의 국정감사 지적에 의해 현 정부의 내년도 문화예술지원 사업계획 확정이 확인되면서 문학계는 물론 여론에서 문학 홀대론이 불거지고 있다.
기초 예술지원 분야 중 문학지원 사업이었던 ‘문학나눔사업’이 전면 폐지되고 ‘우수 학술·교양도서 선정사업’에 일반예속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문학계는 기존의 사업 명칭 유지와 지원을 바라는 입장이다. 이는 정부가 가시적인 정책으로 문화예술부흥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문학의 가치와 기능에 대한 근시안적 안목을 드러냈다는 염려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분리 시행되어왔던 ‘문학나눔사업’과 ‘우수도서 지원사업’의 의의와 목적은 엄연히 다르다. ‘문학나눔사업’은 40억 원 규모의 문학도서 보급 사업으로 소외계층, 소외공간에 대한 예술접근성 및 문학창작자에 대한 간접지원을 목적으로 해왔다.
그나마 MB정부 5년간은 기초 예술지원 7개 분야 중 문학분야 지원은 총 관련 예산의 4%로 꼴찌수준으로나마 명맥을 유지해 왔던 것에 반해 박근혜 정부는 전면 폐지 일반예산으로 편성 확정한 것이다.
반면에 ‘우수도서 지원사업’은 기존 50억원 규모를 통해 우수교양·학술도서를 선정하는 출판계지원 사업이다. 문화관광체육부는 ‘문학나눔사업’을 일반예산인 ‘우수도서 지원사업’에 예속 통합하여 시행하되 기존의 90억 원 보다 142억 원 규모로 예산을 대폭 늘린 것인 만큼 지속적으로 확대 시행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체부는 두 사업간 목적이 훼손되지 않을 범위 내에서 관계자 자문 등을 통해 시행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23일 발표했지만 문학 홀대론에서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문학은 문화예술의 꽃 중의 꽃이다. 문화예술의 최상위가 문학이라면 문학의 상위는 소설이요 시라는 말이다.
인류역사 이래 정치와 정책은 수없이 바뀌어왔으나 문학이 오늘까지 자리매김해 온 데는 그만한 가치와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치와 기능이 가시화 되지 않는다 하여 문학을 문화예술일반예산에 편성 시행하는 현상은 세계 속 국가적 정체성 또한 일반화하겠다는 의미로 비유 확대 취급받아도 무방하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문학은 한 국가를 규정하는 중요한 집단의식이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또한 문학만큼 최고의 유능한 선생은 없다. 문학은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는 선생이다. 국가의 미래가 교육에 달려있다면 그 교육계획과 교수 방법이 백년지대계를 결정하게 된다.
수없이 많은 교육계획 수립들이 변천과정을 겪어 왔으나 문학은 성장기 방황하는 청소년의 마음에 꿈을 꾸는 청년들의 정신과 함께 해왔다. 부모나 상담사도 치유시키지 못하는 청소년의 의식에 소설이나 시가 그 무엇보다 훌륭한 선생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한 문학은 창작자나 독자 모두 자유로운 자리매김이 있어야 하는 분야이다. 창작자와 독자가 다이렉트로 만나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텍스트라고 하는 작품이 있고 그 작품은 독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기능과 가치를 달리 발휘하게 된다. 창작자의 창작의욕이 위축된 상황에서 우수한 작품이 나올 리 만무하며 독자 또한 현 사회문화의 트렌드를 도외시해가며 우수한 문학작품을 찾아 읽을 적극성을 발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학술·교양도서는 현실을 살아가는 옷이 된다면 문학은 정신이 거처할 집이 된다는 것을 자본 논리만이 갑이 되는 작금의 시대에 어찌 알 것이며 어찌 가시화 될 수 있겠는가. 문학이야말로 가시화한 국정정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