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 독설가, '주례사 비평' 따윈 없다!
[프레시안 books]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작가의 얼굴>
이 글을 준비하는 중에 트위터에 단문 하나가 올라왔다. 라이히-라니츠키의 죽음을 알리는 글이었다. 이미 90세를 넘긴 나이였던 만큼 놀라운 일은 아니나, 그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이 지난 3월이었으니 비보가 닥치기에는 아직 좀 더 시간이 있을 듯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문인들뿐만 아니라 독일 연방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를 비롯한 여러 정치가들과 유대인 단체장들, 그리고 대중적인 TV 스타들까지 300여 명이 참가했다. 독문학 교수이자 중량감 있는 비평가이기도 한 토마스 안츠는 그를 위한 조사에서 이렇게 썼다.
"라이히-라니츠키가 2차 대전 후의 독일에서 가장 성공한, 가장 영향력이 큰, 그래서 가장 논란이 된 문학비평가였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평가로서 그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도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문학에 그처럼 깊은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라이히-라니츠키는 독일에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일찍이 문학비평가가 이렇게 유명하게 된 사례는 독일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의 유명세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그가 1988년부터 2001년까지 오랜 세월동안 독일 제2의 방송 ZDF에서 진행한 TV 문학프로그램 <문학 사중주>였다.
거기서 그는 특유의 거침없는 언변과 날선 판단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빼앗았다. 바르샤바의 게토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유대인으로서, 거의 편집증적으로 문학에 열광한 문학도로서, 독일 유수의 신문들인 <디 차이트>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문예란을 이끈 편집자로서, 혹독한 비평으로 수많은 작가들을 적으로 만들면서 "문학의 교황" "대비평가"라는 별명을 얻은 비평가로서 그는 실로 대중적이고 떠들썩한 삶을 누렸다.
무수한 작품들에 대한 그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가 독일에서 비평가의 대명사로 우뚝 선 인물이라는 것, 문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누구보다도 크게 불러일으킨 사람이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한때 우리 문학계에서 이른바 '주례사 비평'이 문제된 적이 있었다. 작품에 대한 엄격하고 공정한 판단보다는 칭송 일변도의 비평을 함으로써 비평이 광고가 되어버리고 작가와 비평가들이 특권적인 이너서클을 구성하는 데 대한 비판이었다. 이에 비추어 보자면 라이히-라니츠키의 비평은 주례사 비평의 대척점에 서 있었다. 그는 작가의 명성이나 중요도에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을 주저 없이 표명했고, 많은 경우 혹독하리만치 부정적인 그의 판단들은 대서특필되어 스캔들을 일으켰다. 1995년 8월, 그가 귄터 그라스의 신작 <광야(Ein weites Feld)>에 대해 "전적으로 실패한 작품", "완전한 졸작"이라며 공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후일 그라스는 라니츠키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화해를 위해 노력했지만, 라니츠키는 자신의 판단을 수정할 것을 거부하고 끝내 그라스가 내미는 손을 맞잡지 않았다. 그의 판단은 언제나 분명했다. 심지어 1992년에 펴낸 그의 비평집 두 편은 제목이 <온통 혹평>, <온통 예찬>이었다. 그러나 혹평이든 호평이든 그가 언급하는 책들은 확실히 더 잘 팔렸다. 판매량만을 생각한다면 그가 언급하지 않는 것보다 혹평을 해주는 것이 훨씬 나았다.
본의 아니게 라니츠키의 적이 된 사람들도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의 혹평에는 갈구하던 것을 찾지 못한 사람의 실망이 담겨 있었다. 비평은 어떤 외적인 요소에도 굴하지 않고 철저하게 공정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었고, 그는 이런 확신을 누구보다도 더 엄격하게 실천했다.
2003년에 발표된 <작가의 얼굴>(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문학동네 펴냄)은 라니츠키가 평생 모은 작가들의 초상화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그 작가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덧붙인 책이다. 이 책에서도 라니츠키는 비평가가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자신이 모범으로 삼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에 대한 다음의 글귀는 그 자신의 좌우명이기도 했다.
"그는 주류 의견에 영합할 생각이 없었고, 특정 그룹이나 사조를 표방한 적도 없었다. 홀로 선다는 것은 그에게 비평가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제였으며, 독립성은 비평가의 직무를 온전히 수행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다."(19쪽)
독일 초기낭만주의의 대표적 비평가 프리드리히 슐레겔에 대한 다음의 글귀도 마찬가지로 독립성을 강조한다.
"슐레겔은 결코 글로써 아부하지 않았고, 오히려 종종 반항적으로 굴었다. 그래서 괴테의 심기를 거슬렀고, 실러의 분노를 샀다."(51쪽)
독일의 선구적 비평가인 루트비히 뵈르네에 대한 다음의 서술도 마찬가지다.
"물론 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모름지기 평론가에게 적이 없다면 엉터리나 다름없고, 그게 두렵다면 다른 밥벌이를 찾아야 하는 법."(68쪽)
이 책에 실린 라니츠키의 글들은 모두 또 하나의 초상화들이다. 문장들은 속도감이 있고, 자유롭게 연상하여 쓴 듯한 부분도, 따로 사실들을 정리하여 쓴 듯한 부분들도 있다. 전체적으로 글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고 경쾌하다.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문학사에서도 주요한 사실들로 취급되는 것들을 농축한 글귀들이 많지만, 라니츠키의 개인적인 경험과 판단을 보여주는 부분들도 많다.
어느 쪽이건, 오랜 사색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함축적인 문장들이 돋보인다. 이런 문장들은 여러 문학사적인 사실들과 개인적인 경험들을 오랜 세월에 걸쳐 곱씹고 종합하고 겁듭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나오기 힘들다. 그리고 그의 판단들은 대개 정확하다. 이는 작품들에 대한 평가에서만이 아니라 작가들에 대한 인물평에서도 그러하다. 하인리히 하이네에 대한 다음의 문장은 촌철살인이다.
"장미와 패랭이꽃을 꺾었으나 그걸 받아줄 사람이 없는 이의 슬픔을 그는 노래한다."(78쪽)
라니츠키가 이 책에서 유대인 작가들을 많이 다루는 것은 유대인으로서 독일에서 문학의 황제로까지 군림하게 된 자신이 그들에 대해 느끼는 유대감을 보여준다. 레싱이 그렸던 현자 나탄, 독일에서 인정받은 최초의 유대인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 괴테를 그린 화가 모리츠 오펜하임, 루트비히 뵈르네, 하인리히 하이네,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베르펠 등이 모두 유대인들이다.
또한 그는 이 책에서 독일 작가들 외에도 셰익스피어와 솔 벨로 등의 외국작가들, 리하르트 바그너와 구스타프 말러와 같은 음악가들도 다루고 있다. 라니츠키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의 얼굴>은 거의 대부분의 지면을 널리 알려진, 혹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여러 독일 작가들에게 할애하고 있다. 이들의 작품이 라니츠키의 전문분야였고, 그는 잘 모르는 데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성격이었다. 라니츠키 특유의 최상급 표현이 자주 나타나는 문장들, 오랜 경험에 바탕한 전문가의 내공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그의 문장들은 독일문학으로 이끄는 최상의 초대장이다. 공연한 무게를 잡는 일도, 괴팍한 언어의 기교로 판단능력의 부재를 은폐하는 일도 없는 명쾌하고 경쾌하고 한껏 무르익은 이 초대장을 펼쳐보는 독자들은 상당한 소득을 얻게 될 것이다.
"라이히-라니츠키가 2차 대전 후의 독일에서 가장 성공한, 가장 영향력이 큰, 그래서 가장 논란이 된 문학비평가였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평가로서 그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도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문학에 그처럼 깊은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 라니츠키가 수집한 하인리히 하이네의 초상화.(로레다노, 잉크 드로잉, 1981년). ⓒ문학동네 제공 |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라이히-라니츠키는 독일에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일찍이 문학비평가가 이렇게 유명하게 된 사례는 독일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의 유명세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그가 1988년부터 2001년까지 오랜 세월동안 독일 제2의 방송 ZDF에서 진행한 TV 문학프로그램 <문학 사중주>였다.
거기서 그는 특유의 거침없는 언변과 날선 판단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빼앗았다. 바르샤바의 게토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유대인으로서, 거의 편집증적으로 문학에 열광한 문학도로서, 독일 유수의 신문들인 <디 차이트>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문예란을 이끈 편집자로서, 혹독한 비평으로 수많은 작가들을 적으로 만들면서 "문학의 교황" "대비평가"라는 별명을 얻은 비평가로서 그는 실로 대중적이고 떠들썩한 삶을 누렸다.
무수한 작품들에 대한 그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가 독일에서 비평가의 대명사로 우뚝 선 인물이라는 것, 문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누구보다도 크게 불러일으킨 사람이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한때 우리 문학계에서 이른바 '주례사 비평'이 문제된 적이 있었다. 작품에 대한 엄격하고 공정한 판단보다는 칭송 일변도의 비평을 함으로써 비평이 광고가 되어버리고 작가와 비평가들이 특권적인 이너서클을 구성하는 데 대한 비판이었다. 이에 비추어 보자면 라이히-라니츠키의 비평은 주례사 비평의 대척점에 서 있었다. 그는 작가의 명성이나 중요도에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을 주저 없이 표명했고, 많은 경우 혹독하리만치 부정적인 그의 판단들은 대서특필되어 스캔들을 일으켰다. 1995년 8월, 그가 귄터 그라스의 신작 <광야(Ein weites Feld)>에 대해 "전적으로 실패한 작품", "완전한 졸작"이라며 공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 1995년 8월 <슈피겔> 지의 표지. 라니츠키가 <광야>를 찢는 장면을 몽타주로 구성했다. 아래쪽에 '"친애하는 귄터 그라스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위대한 작가의 좌절에 대해'라는 문구가 있다. |
후일 그라스는 라니츠키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화해를 위해 노력했지만, 라니츠키는 자신의 판단을 수정할 것을 거부하고 끝내 그라스가 내미는 손을 맞잡지 않았다. 그의 판단은 언제나 분명했다. 심지어 1992년에 펴낸 그의 비평집 두 편은 제목이 <온통 혹평>, <온통 예찬>이었다. 그러나 혹평이든 호평이든 그가 언급하는 책들은 확실히 더 잘 팔렸다. 판매량만을 생각한다면 그가 언급하지 않는 것보다 혹평을 해주는 것이 훨씬 나았다.
본의 아니게 라니츠키의 적이 된 사람들도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의 혹평에는 갈구하던 것을 찾지 못한 사람의 실망이 담겨 있었다. 비평은 어떤 외적인 요소에도 굴하지 않고 철저하게 공정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었고, 그는 이런 확신을 누구보다도 더 엄격하게 실천했다.
▲ <작가의 얼굴>(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그는 주류 의견에 영합할 생각이 없었고, 특정 그룹이나 사조를 표방한 적도 없었다. 홀로 선다는 것은 그에게 비평가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제였으며, 독립성은 비평가의 직무를 온전히 수행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다."(19쪽)
독일 초기낭만주의의 대표적 비평가 프리드리히 슐레겔에 대한 다음의 글귀도 마찬가지로 독립성을 강조한다.
"슐레겔은 결코 글로써 아부하지 않았고, 오히려 종종 반항적으로 굴었다. 그래서 괴테의 심기를 거슬렀고, 실러의 분노를 샀다."(51쪽)
독일의 선구적 비평가인 루트비히 뵈르네에 대한 다음의 서술도 마찬가지다.
"물론 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모름지기 평론가에게 적이 없다면 엉터리나 다름없고, 그게 두렵다면 다른 밥벌이를 찾아야 하는 법."(68쪽)
이 책에 실린 라니츠키의 글들은 모두 또 하나의 초상화들이다. 문장들은 속도감이 있고, 자유롭게 연상하여 쓴 듯한 부분도, 따로 사실들을 정리하여 쓴 듯한 부분들도 있다. 전체적으로 글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고 경쾌하다.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문학사에서도 주요한 사실들로 취급되는 것들을 농축한 글귀들이 많지만, 라니츠키의 개인적인 경험과 판단을 보여주는 부분들도 많다.
어느 쪽이건, 오랜 사색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함축적인 문장들이 돋보인다. 이런 문장들은 여러 문학사적인 사실들과 개인적인 경험들을 오랜 세월에 걸쳐 곱씹고 종합하고 겁듭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나오기 힘들다. 그리고 그의 판단들은 대개 정확하다. 이는 작품들에 대한 평가에서만이 아니라 작가들에 대한 인물평에서도 그러하다. 하인리히 하이네에 대한 다음의 문장은 촌철살인이다.
"장미와 패랭이꽃을 꺾었으나 그걸 받아줄 사람이 없는 이의 슬픔을 그는 노래한다."(78쪽)
라니츠키가 이 책에서 유대인 작가들을 많이 다루는 것은 유대인으로서 독일에서 문학의 황제로까지 군림하게 된 자신이 그들에 대해 느끼는 유대감을 보여준다. 레싱이 그렸던 현자 나탄, 독일에서 인정받은 최초의 유대인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 괴테를 그린 화가 모리츠 오펜하임, 루트비히 뵈르네, 하인리히 하이네,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베르펠 등이 모두 유대인들이다.
또한 그는 이 책에서 독일 작가들 외에도 셰익스피어와 솔 벨로 등의 외국작가들, 리하르트 바그너와 구스타프 말러와 같은 음악가들도 다루고 있다. 라니츠키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의 얼굴>은 거의 대부분의 지면을 널리 알려진, 혹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여러 독일 작가들에게 할애하고 있다. 이들의 작품이 라니츠키의 전문분야였고, 그는 잘 모르는 데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성격이었다. 라니츠키 특유의 최상급 표현이 자주 나타나는 문장들, 오랜 경험에 바탕한 전문가의 내공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그의 문장들은 독일문학으로 이끄는 최상의 초대장이다. 공연한 무게를 잡는 일도, 괴팍한 언어의 기교로 판단능력의 부재를 은폐하는 일도 없는 명쾌하고 경쾌하고 한껏 무르익은 이 초대장을 펼쳐보는 독자들은 상당한 소득을 얻게 될 것이다.
/이재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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