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5일 금요일

더러운 진흙, 불편한 진실

         *사진출처: 메디컬투데이

 

오늘 뉴스를 보니, 갑자기 '오니토'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불과 며칠 전까지 '오니(汚泥)'라는 말이 쓰이다가 갑자기 '토(土)'가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오니토'라는 말은 사전에 '표제어'로 아직 오르지 못한 말이다.

 

'오니'는 슬러지(sludge)라는 말의 번역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듯싶다. 하지만 슬러지는 하수오니나 정수오니라는 말처럼 하수 처리나 정수 과정에서 생겨난 침전물을 말한다.

 

그러니 지금 낙동강 보 공사 현장에서 발견되어 문제가 되고 있는 '오염물질을 포함한 퇴적토'는 오니토도 슬러지도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 하천 바닥에 퇴적되어 있는 중금속으로 오염된 모래, 오염된 진흙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퇴적토의 오염기준이 전혀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 퇴적토를 부르는 우리 말도 아직 세밀하게 나누어져 있는 것은 아닌 듯싶다. 여기에 퇴적토, 준설토, 오염퇴적토 등등의 말도 함께 사용되고 있다.

 

더러운 진흙 덩어리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의 가슴에 널리 퍼지고 있다.

 

[사설]낙동강 오니토 중금속 오염 정말 괜찮은가

4대강 사업이 진행 중인 낙동강 보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오니토(오염물질을 포함한 진흙)의 중금속 오염 수준이 논란이 되고 있다.

낙동강 바닥에 '오니 공포'…퇴적토 오염기준 ‘전무’ 

낙동강 구간인 달성보 공사현장과 함안보 공사현장의 가물막이 공사장에서 시커먼 퇴적층이 발견돼 ‘오니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하천이나 호수의 퇴적토는 오염기준치가 전혀 없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준구(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신의 누리집에 '4대강 사업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을 올려놓았는데, 바로 이 '더러운 진흙'에 대한 이야기다.

 

4대강사업의 불편한 진실

내가 한때 교편을 잡고 있었던 뉴욕주립대학은 허드슨(Hudson)강 연변의 올바니(Albany)라는 도시에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늘 한강을 보고 살 듯, 그때는 늘 허드슨강을 보며 살았다. 그곳에서 뉴욕시까지는 자동차로 세 시간 정도 거리인데, 지방도로로 가면 허드슨강을 여러 번 만나게 된다. 고속도로로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지방도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일부러 그 길을 택할 때가 많았다.

강 상류도 마찬가지지만, 올바니에서 뉴욕시에 이르는 허드슨강 연변에는 큰 도시가 하나도 없다. 고작 인구 몇 만 명의 작은 도시들이 점점이 박혀 있을 뿐 거의 전 지역이 짙푸른 숲으로 덮여 있다. 그곳의 캐츠킬 지역은 단풍이 특히 아름다워 가을만 되면 뉴욕시민들이 몰고 온 자동차들이 홍수를 이룬다. 뉴욕시의 수돗물 수질이 좋기로 이름나 있는데, 캐츠킬 한 가운데에 있는 큰 호수를 수원지로 사용하고 있어 원수 그 자체가 깨끗한 덕분이라고 한다.

이런 청정지역을 뚫고 흐르는 허드슨강이기에 수질도 엄청나게 좋으리라고 짐작하며 살았다. 새빨갛게 단풍이 든 숲을 배경으로 유유히 흐르는 허드슨강의 푸른 물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뉴저지의 팰리세이드 절벽에서 내려다 본 허드슨강 최하단의 물도 전 세계 어느 강에 비해 더 깨끗하게 보인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이런 허드슨강이 수질오염의 문제를 앓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허드슨강의 수질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안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를 통해 수질이라는 것이 겉보기와는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허드슨강의 수질오염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제너럴일렉트릭(GE)사로 알려져 있다. 이 기업이 방류한 PCB라는 유독물질을 함유한 퇴적층이 두고두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허드슨강 일대에서 일체의 어로행위를 금지한 미국정부의 조치를 보면 그 심각성의 정도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자랑처럼 내보이고 있는 4대강사업의 청사진에도 더없이 푸른 물이 숲 사이로 흐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 사업을 통해 수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유난히 푸른 색을 일부러 골라 썼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런 유치한 대중조작에 넘어가는 사람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 밑에 파묻혀 있는 진실까지 조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진실은 단 한 가지, 4대강사업이 환경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4대강사업 공사가 한창인 낙동강 퇴적토에서 발암물질인 비소가 미국환경보호청(EPA) 기준치보다 더 높게 검출되었다는 신문 보도를 보면서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천 문제 전문가로 구성된 학술단체인 대한하천학회가 조사, 분석한 결과라고 하니 믿을 만하지 못하다고 무시해 버리기도 어렵다. 또한 고도성장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마구잡이로 내다버렸던 시절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런 분석결과가 나온 것이 그리 놀랍지 않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강바닥에 묻혀 있는 오염물질을 헤집어내는 준설작업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유독물질이 포함된 퇴적층을 파헤치는 일이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비교적 깨끗한 최근의 퇴적층 아래에 조용히 묻혀 있을 때는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그것을 헤집어 내는 순간 온갖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뜻의 비유다. 그런 문제들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없는 상황에서 준설작업을 강행하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예상대로 정부는 온갖 방법으로 문제를 호도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는 비소 검출량이 기준치 이하라는 정반대의 분석결과를 제시해 진화에 나섰다. 또한 이중오탁방지막을 이용한 흡입식 준설방식을 채택할 것이기 때문에 수질이 나빠지지 않게 만들 자신이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정부 일각에서는 EPA 기준이 너무 보수적으로 책정된 것이기 때문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하천 문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쪽의 말이 맞는지 평가할 능력이 없다. 또한 내가 직접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한하천학회의 분석결과를 믿으라고 말할 처지도 아니다. 그러나 공신력 있는 학술단체에서 문제가 제기된 이상 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데는 하등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명백히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얼버무리기로 적당히 넘어가려는 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퇴적층의 유독물질 농도가 과연 위험수준인지의 여부는 쉽게 가려낼 수 있다.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제3의 주체가 엄밀한 실험환경하에서 분석해 보면 어느 쪽 말이 맞는지 바로 드러나게 된다. 나는 정부가 즉각 이 작업을 위촉해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믿는다.

진실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한, 그 어떤 논의를 해보았자 시간과 노력의 낭비일 뿐이다. 이런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도 갖가지 구실을 붙여 차일피일한다면 자신이 없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셈이 된다.

어떤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낙동강뿐 아니라 한강과 영산강의 퇴적물에서도 유독물질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된 바 있다고 한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08년에 실시한 정밀분석의 결과라 하니 그냥 넘겨버릴 일은 분명 아니다. 만약 이것이 정확한 분석결과라면 현 상태의 4대강사업은 일단 중단되어야만 한다. 이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을 것이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다. 낙동강뿐 아니라 다른 강에서도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은 만일의 경우에 발생할 재앙이 전국토의 규모로 확대될 것임을 뜻한다.

유독물질이 포함된 퇴적층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 사람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허드슨강 준설문제를 놓고 왜 25년이란 긴 검토기간이 필요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설사 허드슨강의 경우에는 준설이 정답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하더라도, 여건이 다른 낙동강의 경우는 그 반대의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강과 영산강의 경우는 낙동강의 경우와 또 다를 수 있다. 정밀한 사전 검토 없이 준설만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것은 바보나 할 짓이다.

나아가 준설이 정답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더라도 ‘어떻게’라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미국사회는 이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25년이라는 긴 시간을 썼다. 아무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3년 안에 그 큰 규모의 4대강사업을 모두 마치겠다는 말은 매우 무모하게 들렸다. 이렇게 문제가 명백하게 제기된 상황에서 예정대로 공사를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만용이다.

어제 밤 한 방송은 세계 유일의 단양쑥부쟁이 군락지가 4대강사업의 불도저에 처참하게 짓밟혀진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멸종된 줄 알았다가 자생 군락지를 발견해 기뻐했던 것이 오래지 않은데,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멸종의 길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대체군락지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런 사전 대비 없이 그대로 군락지를 밀어 버렸다고 그 방송은 보도하고 있었다. 대체군락지라는 것도 옹색하지 짝이 없는 아이디어지만, 그 약속마저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무신경이 딱하다.

그러나 단양쑥부쟁이의 슬픈 이야기는 서막 중의 서막에 불과할 뿐이다. 앞으로 4대강사업으로 인한 환경 파괴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두고두고 우리 귀에 들어올 것이다. 앞으로 나올 이야기는 이보다 훨씬 더 슬픈 것일지도 모른다.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몸을 내던져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대강사업이 환경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임을 예상하는 데는 특별한 전문지식도 예견능력도 필요 없다. 평범한 상식으로 생각해 보면 뻔히 내다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4대강사업의 잠재적 위험에 대해 정부와 보수 언론은 모른 척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의 부자연스러운 표정에서 4강사업의 ‘불편한 진실’이 과연 무엇인지를 읽어낼 수 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진정으로 용기가 있다면 이 불편한 진실을 낱낱이 파헤쳐야 마땅한 일이 아닐까? 어떻게 하든 곧 드러날 진실이라면 아무리 감추려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 그 진실이 무엇이든 정면으로 도전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길을 찾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오직 그것만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말해주고 싶다.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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