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교수의 누리집에서. "너무 늦었다고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2010년 11월 17일 오전 10시 52분에 작성된 글이다.
너무 늦었다고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4대강사업 중 경상남도가 맡고 있는 낙동강 13개 구간 사업권을 회수하겠다고 경상남도에 공식 통보했다고 한다. 지난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예고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다. 앞으로 이 갈등이 어떻게 수습되어 갈지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던 정부라 해도 이번 일까지 불도저로 밀어붙이듯 일방적으로 처리해 버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실 4대강사업을 둘러싼 정부와 경상남도 사이의 갈등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갈등의 근저에는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데 따른 극심한 국론 분열이 도사리고 있다. 과거에도 여러 가지 이슈와 관련되어 국론이 분열된 양상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처럼 전 국민이 두 집단으로 나뉘어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인 사례는 기억하기 힘들다. 설사 공사가 계획대로 모두 끝난다 하더라도 국론 분열의 상처는 오랫동안 치유되지 못한 상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 동안 4대강사업에 관해 수없이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정부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해준 적이 없다.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4대강사업이 꼭 필요한 이유를 설득하기는커녕, ‘죽어버린 강을 살려야 한다’는 식의 선문답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데 골몰해 왔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한 때 대화를 통해 이견을 해소하겠다는 제스추어를 쓰더니 그것마저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그 말이 나온 후 변변한 토론회 하나라도 열린 적이 없었다.
정부가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보궐선거에서 의석 몇 개 늘리고 지지율이 몇 퍼센트 오른 데 따른 자신감의 회복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기야 이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에 진정한 관심을 보인 적은 별로 없다. 여론의 폭풍이 거셀 때는 잠시 고개를 숙이는 척하다가 그것이 지나가고 나면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 이 정부의 특징이다. 촛불시위 때도 그랬고, 지방선거 때도 그랬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제는 그나마 4대강사업의 당위성을 설득하려는 노력 그 자체를 하지 않는 상황이다. 지금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최대의 논리는 ‘공사를 중단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배째라’식 전략을 쓰려고 그 동안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 가며 속도전을 벌여 왔던 것이 분명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장마철에도 공사를 강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가 이런 전략으로 나올 것이 뻔히 내다보였다. 정부는 지금 4대강공사가 자기네들이 꾸민 시나리오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 모른다.
예전에도 지적한 바 있지만, 공사가 상당히 진척되었기 때문에 중단할 수 없다는 논리는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다. 이미 들어간 돈은 매몰비용(sunk cost)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의 의사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고려해야 할 유일한 사항은 4대강사업을 계속할 경우 더 이상의 낭비가 일어날 것인지의 여부뿐이다. 앞으로도 10조원 이상의 돈을 퍼부어야 할 텐데 이마저 낭비되는 결과를 빚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얼마의 돈이 들었든, 타당성이 없다는 판단이 선다면 4대강사업은 지체 없이 중단되어야 한다.
문제는 사정을 잘 모르는 대중에게 정부의 이 엉터리 논리가 아주 잘 먹혀든다는 데 있다. 경제학을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매몰비용의 논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바로 이 맹점을 파고들어 지금 이 단계에서 공사 중단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선전공세로 여론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더군다나 보수언론들까지 가세해 이 엉터리 논리를 지원하고 나서는 바람에 대놓고 반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공사 중단을 논의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주장은 국민에 대한 일종의 위협에 불과하다. 하루라도 더 일찍 공사를 중단하는 것이 단 한 푼의 돈이라도 절약할 수 있는 길이며 우리 국토의 파괴를 손톱만큼이라도 막는 길이다. 준공식의 테이프를 끊기 전이라면 언제든 중단이 필요한지의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 공사를 중단함으로써 낭비되는 돈이 아깝기는 하지만, 계속하면 훨씬 더 큰 낭비가 발생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손절매(損切賣)를 하지 못해 손실을 키우는 것이 어리석은 일인 것처럼, 이미 들인 돈이 아까워 더 큰 낭비를 감수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
정부는 국민의 완전한 합의 없이 추진된 사업이 정권 교체와 더불어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지를 똑똑히 보아야 한다. 참여정부 시절 여야 합의하게 결정된 행정복합도시 계획도 정권이 바뀌자마자 곧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참여정부의 야심작이었던 전국 각지의 혁신도시들도 현 정부하에서 그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자신 있게 예측하지 못한다. 4대강사업처럼 여론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사업이라면 정권 교체의 충격을 절대로 이겨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임기 안에 4대강사업을 끝내려고 더욱 초조하게 서둘렀는지 모른다. 그러나 완공 테이프를 끊었다고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공사는 끝났을지 몰라도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은 그때부터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그런 논의 자체를 억눌러 왔지만, 정권이 바뀌면 분위기가 180도 바뀔 것이 분명하다. 4대강사업이 갖고 있는 모든 문제점이 낱낱이 밝혀질 것은 물론, 심지어 완공된 보들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될 것이다.
우리가 4대강사업에 대해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예고 없는 대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강을 따라 대규모 저수지들이 들어섬에 따라 지하수 수위도 달라질 것이고 기후 패턴도 달라질 것이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대규모 홍수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고, 보로 가둬둔 물이 썩어버리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강 연변의 생태계가 크게 교란될 것임은 물론,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도 난데없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줄지어 발생하게 되면 필경 보들을 모두 허물어 버리고 원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뀌고 나면 아무도 팔 걷고 나서서 4대강사업의 정당성을 옹호해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전 정권이 무모하게 벌인 사업이라는 성토만이 난무할 것이 틀림없다고 본다. 심지어 지금은 음으로 양으로 정부를 지원하고 있는 보수 언론마저 시치미 떼고 성토 대열에 합류할지도 모른다. 나중에 그런 수모를 겪지 않으려면 귀에 거슬리더라도 반대파의 목소리를 경청해야만 한다. 왜 이들이 목숨을 걸고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파국으로 치닫는 길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어떤 심각한 돌발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정부가 사업 강행의 의지를 결코 꺾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만약 지금 이 단계에서 사업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고 있다면 애당초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사를 시작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 것은 더 큰 불행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4대강 곳곳에 박혀 있는 커다란 대못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손해를 끼치는 일만은 한사코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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