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팔아 산 핸드폰> 얘기는 들었어도 '신부님을 팔아 건립한 인권센터' 소린 처음 듣는다. 용산참사 진상규명 운동을 벌인 '죄'로 구속됐다 지난 4월 풀려난 박래군(49)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2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대뜸 '신부님을 팔겠다'는 말을 했다.
그가 팔겠다고 나선 신부님은 다름 아닌 문정현(70) 신부다. 박 이사는 청춘 시절부터 일흔이 되기까지 인권과 평화를 몸으로 실천해온 문 신부를 위로할 뜻으로 헌정공연을 하겠다고 나섰다. 표방하는 바는 분명 문 신부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속살을 뜯어보면 헌정공연으로 한몫 잡아보겠다는 밑그림이 깔려 있다. 그것도 10억원이 목표다. 대기업 후원 없이 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겠단 각오다. 그것도 두당 1만원씩. "일인당 1만원씩 10만명이 모이면 그 까이~꺼 10억 원이야 껌 아니겠니?" 박 이사가 반문해온다. 이름난 인권운동가가 난데없이 돈독이 올라 '돈 좀 모으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인권운동가, 제대로 돈독이 오르다
"늘 눈에 밟혔어요. 혼자 상근하는 활동가들, 사무실도 없이 움직이는 후배 운동가들. 활동비는 고사하고 회의실도 없어 이리저리 메뚜기 뛰듯 활동하는 걸 보면 참... 유가협부터 합치면 내가 인권운동 23년차예요. 그런데도 아직 이 지경이면 이거 우리 참 창피한 거예요."
1987년 민주항쟁 이후 23년의 세월이 흘렀고 인권감수성이 제법 높은 나라가 됐으며 국가인권위원회까지 갖춘 '국격 높은' 나라가 됐지만, 인권단체에 기부되는 금액은 단체당 월평균 150만원 수준. 활동가들의 활동비는 2003년부터 최근까지 적으면 30만원, 많으면 60만원이란다.
"인권운동이 점점 파편화돼 가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힘을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거든요. 인권활동가들이 굉장히 바쁘게 살고 있지만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생계비 때문에 결국 지쳐 떨어져 나가고. 사무실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쳇바퀴 돌듯 계속되고 있거든요. 이걸 타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1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고사상태가 됐다며 상임위원 둘이 사표를 던졌다. 박 이사는 인권운동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잘하고 있었다면 이 같은 파국을 막고 견인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되기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돼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국가인권위가 개판이 된 건 현병철 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도 있지만 인권운동이 제대로 못한 탓도 있다"며 "국가 단위 인권기구가 제대로 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권운동을 탄탄하게 뿌리내리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 같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 견인할 힘이 인권운동에 지금 없다는 게 문제예요. 인권운동이 계속 구멍가게 수준을 유지한다면 결국 손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가게 돼 있거든요."
그가 구상 중인 인권센터는 별것 아니다.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찾아와 정보도 찾고 시민들끼리 함께 일을 도모할 수도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인권의 공공터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1인 인권단체들을 위한 활동이다. 전쟁 없는 세상, 평화인권연대, 국제민주연대, 그리고 동성애자인권연대, 친구사이, 성적 소수자 문화센터 같은 성 소수자 단체들 등 작은 인권단체들이 함께 어깨 겯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면 인권운동의 힘의 집중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제일 속상할 때가 11월~12월말까지 입법싸움 할 때예요. 이땐 국회 앞에서 농성도 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이러저러한 활동을 많이 해야 하는데, 집중을 잘 못해요. 왜냐하면 활동가들이 '알바'를 뛰어야 할 피크타임이거든요. 대개 학원 강사를 하는데 요때 1년치 생계비를 버는 것이기 때문에 하지 말라 할 수도 없지요. 사교육에 반대하면서도 학원에서 '알바' 뛸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참 슬픈 거지요."
'알바' 뛰느라 투쟁 못하는 인권활동가들
외국은 어떨까.
박 이사는 그쪽도 큰 인권단체와 작은 인권단체로 나뉜 점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적어도 한국처럼 활동가들이 사무실 유지에 생돈 '꼴아박으면서' 활동하진 않는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 성 소수자 단체들은 활동가들이 돈을 벌어 사무실을 유지하는 데 쓰고 있지만 서유럽 같은 경우엔 이런 활동은 생각지도 못할 수준이라는 것.
"유럽은 워낙 기부문화가 잘 정착돼 있으니까 시민들이 소수자 인권단체들을 위해 기부하는 데 별 거부감이 없어요. 우린 기부문화도 약한 편인 데다 인권단체에 대한 지원은 더 박약한 편이지요. 노동조합은 그나마 조합비가 있으니까 운영이 되지만 인권단체는 정말 열악해요. 회원들의 회비로 해봐야 알음알음 인맥의 한계가 명백하지요."
그는 꿈이 컸다. 사람들이 모임을 할 수 있는 세미나 룸, 인권 피해자 상담실, 공동의 사무 공간, 전자정보자료실, 작은 공연이 가능한 문화 공간까지 합치니 족히 330㎡(100평)는 돼야 할 것 같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문정현 신부님을 팔기로 작정한 게다.
"인권재단 이름으로는 무엇을 해도 10억원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신부님을 꼬였죠. 결국 신부님을 팔기로 했고, 인권과 평화를 위한 인권센터를 건립한다면 무엇이든 하시겠다며 선뜻 나서주셨어요. 처음엔 포스터 사진도 안 찍겠다고 하셨는데, 카메라 딱 들이대니까 표정이 확 살아 움직이더라고요. 끼가 있어요. 신부님도, 선뜻 이렇게 망가져 주셨습니다! 하하."
박정희부터 이명박까지 36년... 더 울어야 하나요?
4일(목) 토크쇼 '길 위의 신부를 만나다'를 시작으로 5일(금)엔 연극 '저항의 신부를 만나다-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 6일(토)엔 '가을의 신부를 만나다' 콘서트가 이어진다. 신부님을 팔아 인권센터를 건립하는 데 동참한 이들은 가수 안치환, 이한철, 좋아서하는 밴드, 달-바드(Bard), 배우 명계남, 영화감독 여균동, 개그맨 노정렬, 소설가 공선옥, 사진가 노순택씨, 그리고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가 3일간의 대장정을 진두지휘한다.
"사람들은 문정현 신부님 하면 깡패 신부라고들 해요. 그렇지만 제가 아는 신부님은 울보 신부님이에요. 전 더 이상 우리 신부님이 세상문제 때문에 아파하시면서 울지 않기를 바랍니다. 1974년 박정희 군부정권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도합 36년이에요. 더 우셔야 할까요?"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싸움,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사태 등에 이르기까지 문 신부와 박 상임이사는 늘 함께했다. 용산참사로 수배 중이던 때는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한 켠에서 런닝셔츠 바람으로도 두 남자는 함께했다.
박 상임이사의 바람대로 문 신부님이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는 우리들은 무엇부터 해야 하는 것일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