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바탕 잡아주자
동아일보 1960.05.05 기사(칼럼/논단)
튼튼한 바탕 잡아주자
어른들에게 '반성의 날'이 되기를
강소천
지난 4월 우리 때묻은 어른들은 젊은이들이야말로 이 나라의 기둥이라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그들 앞에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5월 어린이날과 어머니날이 다가왔습니다. 어린이날을 맞을 때마다 나는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무슨 일을 해주었나?" 하는 미안한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날에까지 어린이를 이용했습니다. 어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꽃다발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역사가 꾸며지는 오늘 38회 어린이날을 맞게 됩니다.
이런 바쁜 때이어서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까지 미처 손이 가지 못하여 행사를 위한 어린이날은 굉장하지 못할는지 모르지만 이번 어린이날이야말로 우리 어른들도 뜻있게 보내야 할 날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입버릇같이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요 겨레의 희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어린이들을 위한 무슨 시책이나 어떤 시실이 있었으냐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이들이 힘껏 공부하고 마음껏 놀 수 있는 환경과 시설을 얼마나 마련해 주었습니까.
이제 어린이들이 진정 이 나라의 내일의 주인이라고 깊이 느꼈거든 어린이들을 위한 여러가지 시설을 하루바삐 해 주어야겠습니다.
기껏 한다는 게 일류학교 지망을 위한 시험준비 과외공부 그게 어린이교육의 전부가 되어버리고 '빽'이니 '사바사바'가 학교 안까지를 흔들어놓고 있지 않습니까.
언제부터 통과시킨다던 "학교도서관법"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고 언제부터 만든다던 문교부의 "우량도서선정위원회"가 여지껏 한번의 회합도 안 가졌으니 기막힌 일이 아닙니까.
누가 어린이 편에 서 있습니까. 누가 그들의 대변자가 되어 주겠습니까. 이번 어린이날은 어른들이 두 손을 가슴에 얹고 깨끗한 피를 뿌린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어린이들에 대한 태도를 달리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그들을 바로 가르치고 바로 이끌어 나가야 이 나라의 참된 민주주의는 이룩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낍시다.
일제에 물들고 권력과 돈맛을 익힌 우리 어른들은 티없는 동심에서 바르고 깨끗한 것을 배웁시다.
다시는 어린이들의 어린 가슴에 총뿌리를 겨누는 일이 없도록 어른들은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어머니들은 사치와 허영심에서 잠깨어 어린이들의 생활을 침범하거나 빼앗지 맙시다. 피아노니 무용이니 하는 재롱에 취하여 어린이들을 곡예사로 만들지 맙시다.
우선 좋은 국민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키우고 길러줍시다.
터도 닦지 않고 모래 위에 집짓기에 급한 그런 어리석은 건축가가 되지 말고 인간이 되는 기본 바탕을 튼튼하게 자리잡아 줍시다.
학교 교사들은 자기 어린이들을 욕하거나 때리지 말고 부리고 시키지 맙시다. 부모같이 친구같이 사랑과 정으로 대합시다.
백해무익한 어린이들의 만화책을 만드는 분들은 이제 그런 일을 그맙둡시다.
어린이날이 어린이를 기쁘게 해주는 날인 것은 물론 우리 어른들에겐 반성의 날이 되어야겠습니다.
말로만 떠들지 말고 하나하나 플랜을 세워 실천에 옮겨야겠습니다.
이번 어린이날을 맞이하는 어린들은 너나할것없이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은 모든 교장 교사들은 모든 어린이들을 위해 일하는 이들은 어린이들에게 대해 미안한 마음과 뉘우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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