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표정훈은 이 칼럼에서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는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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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은 1930년대 말부터 소설과 산문 여럿을 일본어로 썼다.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은 1940년 잡지에 연재한 일본어 소설 ‘녹색의 탑’이다. ‘이효석 전집’(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제6권에 우리말로 번역돼 실려 있다. 김사량이 일본어로 쓴 단편 ‘빛 속에’(1939년)는 일본의 아쿠타가와상 후보로 올랐다. 1938년 이후 ‘조선어’ 금지 및 탄압이 본격화하면서 작가들은 창작 활동을 중단하거나 우리말로 집필하되 발표하지 않거나 일본어로 집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륵(본명 이의경)은 1920년 독일에 도착해 독일 잡지에 ‘하늘의 천사’(1931년)를 발표한 이후 여러 작품을 독일어로 발표했다. 대표작 ‘압록강은 흐른다’(1946년)는 큰 주목을 받으며 일부가 독일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강용흘은 1919년 미국으로 가서 자전적 영문 장편소설 ‘초당’(1931년)을 발표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김은국은 1954년 미국으로 건너가 영문 소설 ‘순교자’(1964년)로 큰 명성을 얻었다.
폴란드 출신 영국 작가 조지프 콘래드는 선원 생활을 하다 1878년 영국에 정착하고 1894년 37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20세가 넘어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영국에 도착할 당시 그가 아는 영어 단어는 10개를 넘지 않았다. 중국 출신 미국 작가 하진도 20세 무렵부터 직장에 다니며 영어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30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영문학 학위를 받고 영문 소설로 전미도서상, 펜포크너상 등을 수상했으며 보스턴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오싱젠은 1988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중국에서 반체제 작가로 지목되고 작품이 금서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로도 작품을 쓰고 자신의 작품을 직접 프랑스어로 번역도 한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인도계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는 자신의 모국어라 할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산문을 써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책이 입은 옷’ 등을 펴냈다. 20년간 이탈리아어에 매료돼 익힌 결과다.
작가에게는 언어의 국적이나 정체성 못지않게 언어 그 자체가 중요하다. 라히리가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내 말에만 속했다. 난 나라도, 확실한 문화도 없다. 난 글을 쓰지 않으면, 말로 일하지 않으면 이 땅에 존재한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출처 http://news.donga.com/3/all/20171016/867627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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