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조선 제22대 왕 정조(재위 1776∼1800)는 '개혁군주'로 통한다. 붕당을 초월해 자리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규장각을 마련하고, 왕권 강화를 위해 직속 군대인 장용영을 설치했다. 자신이 구상한 새로운 정치를 펼치기 위해 한양을 벗어나 수원에 화성을 축조했다.
정조는 특히 정치가 올바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자기를 성찰했으며 신하들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몸소 실천했다.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의 '책문'(策問)에는 이런 국가지도자로서의 자기 성찰과 애민 정신, 민생을 향한 치열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창호(53)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최근 내놓은 독해서 '정조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판미동)에서 학자이자 개혁군주로서 정조의 참모습을 조명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지도자들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동양 고전을 현대적인 의미로 해석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교육철학자 신 교수.
그가 들려주는 정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 책문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 책문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 '책문'은 옛날 선비나 관료들이 모여 툇마루나 정자에 앉거나 뒷마당에 서서 담소하던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시국에 대해 논하거나 현안에 대해 서로 물어보는 거죠. 이러던 것이 과거시험 문제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과거시험의 주체는 당시 임금이었죠. 즉 책문은 임금이 국가 중대사에 대해 정책적인 대안을 묻는 거예요. 특히 조선의 다른 왕들의 책문이 흩어져 있는 것과 달리 정조의 책문은 문집인 '홍재전서'에 한데 묶여 있는 게 특징이죠. 정조는 스스로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지만 좋은 대안을 얻기 위해 신하들에게 질문을 던진 거죠.
책문의 내용은 주로 '백성을 어떻게 먹여 살릴까'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입니다. 물론 내용은 왕이 누구냐, 시대의 특징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죠. 현대에도 5공화국과 6공화국이 지금과 다르고,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정책에 대한 질문은 달라집니다. 정조 시대의 책문은 주로 백성의 복지에 관한 것이에요. 백성이 잘살게 하는 것이 정치에 가장 중요한 문제였죠.
-- 정조의 책문을 번역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몇 해 전 나이가 지천명에 접어들면서 "인생이 뭘까" "학자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라는 고민이 생겼어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했죠. 그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찾아본 글이 정약용의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이었어요. 제가 경기도 남양주에 살고 있는데 평소 그곳에 있는 다산의 묘소를 자주 찾았어요. 또 선조가 정약용처럼 남인 계열이었고, 다산이 첫 유배를 간 곳이 우연하게도 고향 인근인 경북 포항의 장기군이었어요. 무언가 연결된 느낌이 들었죠.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더군요. 그래서 그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찬묘지명'을 보게 됐고 이후 '정약용의 고해'라는 책으로 냈죠. 다산의 삶을 보면 그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18년간의 관직 생활, 18년간의 유배, 다시 18년간의 여생이 이어지죠. 다산은 관직 생활을 할 때 정조의 총애를 받아 특출나게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장을 제공한 사람은 바로 정조였죠. 다산과 함께했던 정조라는 학자군주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죠. 그가 어떤 정치적 결단과 대안을 고민했는지를 보려니 당연히 그의 정책적 열망이 녹아있는 '책문'에 눈길이 갔습니다.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에 학자로서 미래로 더 나아가기 위해 정조의 책문을 번역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니 이건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조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를 펴내게 됐죠.
-- 정조는 어떤 인물입니까.
▲ 정조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천재적인 사람입니다. 책문을 보면 사서삼경, 고전을 깊이 있게 알고 다양한 분야에서 정말 박학다식하죠.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해 훌륭한 문신을 양성합니다. 서얼 출신 중에서 똑똑한 사람이면 등용합니다. 말하자면 정조는 글이나 문화를 숭상하는 '문풍'(文風)을 일으켰죠.
하지만 정조는 정통 유학자였어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중국에서 들어온 서학을 비판했죠. 중국의 고전 문체와는 다른 이상한 문체가 유행한다면서 서학, 패관잡기, 명말청초(明末淸初) 중국 문집을 사악한 것으로 규정하고 금지했습니다. 정조는 공자와 맹자로부터 비롯된 정통 글쓰기를 하라고 합니다. 서얼 출신을 등용한 것도 공자가 바로 서얼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조선에서 서얼을 등용하지 않은 것은 성리학을 잘못 해석했다고 판단한 거죠. 현명한 사람이 있다면 신분과 관계없이 써야 한다는 것이 유학의 기본 입장이라는 거예요. 서경(書經)에서는 '임현'(任賢)이라고 합니다. 현명한 사람이면 등용하라는 겁니다. 신분이 뭐가 중요하냐는 거죠. 중국 고대의 요(堯), 순(舜), 우(禹) 임금은 신분과 관계없이 현명한 사람이 발탁된 경우입니다.
-- 정통 유학자인 정조는 왜 '개혁군주'라고 불립니까.
▲ 영조와 정조의 재위 시기를 흔히 '유학의 르네상스'라고 합니다. 임진왜란이란 큰 전쟁을 겪은 이후 한동안 조선은 문화를 부흥시킬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전란으로 국토가 황폐해져 먹고 사는 일이 가장 큰 문제였죠. 시간이 흐르면서 백성의 생활이 안정되니까 영조와 정조 시대에 문예를 부흥시킬 분위기가 된 거죠. 또한 조선이 창건되고 꽤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적폐'가 많았죠. 시대가 바뀌고 백성의 요구는 달라지는데 성리학이라는 '고인 물'에 대해 변화가 필요해진 겁니다. 정조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성리학을 기반으로 올바르게 바꿔갈 방법을 고민했어요. 기존 성리학의 잘못된 것을 정상적으로 만들려고 했지, 기존의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든 것은 아니었어요. 어차피 조선은 유학의 나라였으니까요.
-- 정조의 개혁은 성공했습니까.
▲ 예를 들어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는 당쟁을 해소하기 위해 당파 간의 세력에 균형을 꾀한 탕평책을 썼어요. 정조도 조정과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탕평책을 계속 썼죠. 하지만 정조가 승하하자마자 급격하게 당파 간의 싸움이 첨예해지죠. 개혁이 성공했다면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바로 무너져 버렸어요. 즉 정조는 비뚤어진 것을 바로 세우려는 의지와 열망이 강하고 개혁을 선호했던 군주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개혁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개혁에 대한 의지는 굉장히 소중한 거죠.
-- 정조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습니까.
▲ 정상적이지 않은 사회와 백성의 삶에 대한 고민이었죠. 임금은 기본적으로 백성을 먹여 살릴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즉위하고 보니까 조정에서부터 백성을 먹여 살릴 자세가 안 돼 있는 거예요. 정조는 신하들을 크게 꾸짖고 대안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또 백성의 실상을 알기 위해 전라도나 강원도 유생을 불러 그 지역 백성을 먹여 살릴 방도를 묻습니다. 정조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백성을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였죠.
-- 정조의 고민이 현대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 정조책문에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은 '치란'(治亂)이에요. 어떻게 하면 나라가 안정되고, 어떻게 하면 혼란스러워지느냐를 묻죠. 그러면서 정조는 자기를 먼저 돌아봅니다. 책문을 보면 3분의 2가 정조의 이야기입니다. 정조책문은 바로 정조의 철저한 자기 성찰이자 고백이자 반성이었죠. 사람들이 '나의 책문'을 써보면 좋겠어요.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배울 점은 자기 성찰입니다.
두 번째는 타자와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정조의 책문을 보면 정조는 항상 마지막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말은 어떤 것이라도 말해달라고 하죠. 정조는 굉장히 개방적으로 의사소통했어요. 이건 바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배려를 다른 말로 하면 유학의 '인'(仁)이에요. 정조는 생활 속에서 '인'의 정신을 실현하려고 했죠. 자기를 깊이 성찰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소통하면 우리 각자는 물론 사회가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정조가 책문에서 첫 번째 던진 질문은 정치입니다.
▲ 정조가 즉위한 첫해 실시한 과거시험 문제는 '정치적 안정과 혼란은 어디에서 오는가'였어요. 그러면서 정조는 우주 자연의 기운인 기수(氣數)와 인사(人事)를 이야기하죠. 정조는 우주의 순환으로 봤을 때 자신이 성군(聖君)이 될 시기인지, 아니면 좋은 신하를 등용하고 정책을 잘 펼치면 성군이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죠. 정치의 안정이나 혼란은 기수 때문인가, 인사 때문인가 라는 고민이죠.
중요한 것은 정조의 말 속에 지도자로서의 고민과 염려가 담겨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방법을 묻죠. 정조는 관리가 되려는 과거 응시자들과 함께 고민해보자고 하죠. 이런 자세를 가지면 실수나 실패가 적어지겠죠.
-- 한국은 정치적으로 안정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 결국 사람 사이에 신뢰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문제죠. 유가에 보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있습니다. '인'은 사랑, '의'는 정의, '예'는 예절, '지'는 지혜죠. 한양의 구조를 보면 중앙에 보신각(普信閣)이 있고, 동서남북에 흥인지문(興仁之門),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홍지문(弘智門)이 있어요. 인의예지신에 따라 배치한 거죠. 다른 것은 모두 문인데 신만 각이죠. 신뢰의 집에서 동서남북의 문을 드나든다는 뜻입니다. 인의예지의 중심에 바로 신이 있습니다. 믿음이 마음속에 자리 잡아야 스스로 흔들리지 않고 정치의 혼란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정조는 신뢰를 크게 강조해요. 신뢰가 없으면 혼란이 옵니다. 소통이 안 되는 것도 신뢰가 없기 때문이에요.
-- 그렇다면 정치는 신뢰만 있으면 안정될 수 있습니까.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기본 특성은 서로 싸우는 거예요. 정치는 절대로 안정되지 않는 속성이 있죠.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고 해결 방법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불안정하니까 안정되게 하려고 다양하게 접근해보는 거죠.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안정돼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어느 정도 안정돼 보일 때 정치가 안정됐다고 표현할 뿐입니다.
서경에 '사기종인'(舍己從人)이란 말이 있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따르라는 뜻이죠. 이것은 나대지 말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으라는 거예요. 정조는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답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듣는 자세가 되어 있는 거죠.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은 자만에 불과합니다.
지도자는 잘 듣는 것이 중요해요. 지금 원자력발전소 문제를 보면 찬반을 떠나서 대통령이 주변을 많이 돌아보지 않은 것 같아요.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 전에 전문가, 지역주민 등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는 과정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정치는 어차피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귀를 열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 혼란을 줄이고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직자는 어떠해야 합니까.
▲ 공직자, 공무원이라고 하면 '공'(公)이란 글자가 뭔지 먼저 알아야 해요. 공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을 한 결과에 대해 절반은 내 것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다른 사람 몫이라는 거죠. 곧 공은 내 것, 네 것을 주장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공직자의 가장 중요한 자세로 극기복례(克己復禮)와 살신성인(殺身成仁)을 들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욕망을 조절해 예로 돌아가고, 몸을 낮추고 사랑을 베풀라는 뜻이죠. 바로 사욕을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기여를 했다고 해도 절반은 내 것이 아니고 나머지 절반도 다른 사람과 함께 이뤘다고 생각해야 하죠.
-- 권장하고 싶은 고전은 무엇입니까.
▲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요즘 보면 사람들이 근본이나 본질을 보지 않고 곧바로 쓸 수 있는 처방만 찾으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되죠. 본질을 보지 않으면 결코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질을 담고 있는 책을 읽어야 하죠. 그게 바로 고전입니다. 고전에 나오는 좋은 구절 하나를 빌려 써먹기만 하지 말고 끝까지 깊이 읽고 곱씹어야 해요.
특히 대통령이나 리더라면 사마천의 '사기', 제나라 관중이 지은 '관자' 같은 고전이 좋습니다. 관자는 중국 고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죠. 또 시경(詩經)이나 굴원이 쓴 '초사'(楚辭) 등 시(詩)를 읽는 것이 좋아요. 시는 함축적이어서 생각을 많이 하게 하고 뜻을 다양하게 풀어볼 수 있기 때문이죠. 지도자가 생각을 많이 할수록 정치를 좀 더 안정되게 할 수 있습니다.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 다산의 목민심서(牧民心書)도 좋은 고전입니다.
--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 몇 해 전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한글로 풀이해 책을 냈습니다. 지금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등 삼경(三經)을 한글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한문을 잘 읽지 않잖아요. 이제 한글로 우리 시대에 맞게 고전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가 학문적으로 우리 사회에 많은 빚을 졌어요. 지금까지 저를 도와주고 길러준 대한민국에 빚을 갚기 위해 재능기부 차원에서 평생교육원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무료로 '동양고전특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goo.gl/dSxsV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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