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철 /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먼지'는 종종 대자연 앞에서 인간을 낮추는 겸손의 표현이다. 인간은 한 줌의 먼지다. 각자가 살아온 풍경은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할지라도 결국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리튬,베릴륨, 붕소의 일부 동위원소 (6,7Li, 9Be, 10,11B)와 수소를 제외하면 인체와 흙에 담긴 모든 원소는 다 별에서만들어졌다.1)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먼지에 '별'이라는 말을 붙여 겸손에 낭만을 더한다. 인간은 한 줌의 '별먼지'다.
어느 날 지구상의 별먼지들이 서서히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곧이어 문명이 탄생했다. 특히 인간이 금속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지구의 모습은 빠르게 변했다. 금속은 나무나 돌멩이에 비해 훨씬 더 유연하면서도 견고하고 내구성이 뛰어나기에 쇠낫과 같은 농기구에서 부터 금속활자에 이르기까지 각종 기술 혁명을 낳았고, 제국의 탄생, 르네상스,종교개혁, 과학혁명, 시민혁명 등 세계사의 굵직한 장면을 낳는 데 크게 이바지 했다. 금속문명은 증기기관으로 상징되는 산업혁명을 거쳐 현대로 올수록 더욱 극적인 발전을 이룬다. 자유전자를 풍부하게 가진 금속은 탁월한 전기 에너지 전달 매체이자 전자공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재료다. 가전혁명, 컴퓨터, 우주탐사, 인터넷, 스마트폰, 핵발전, 인공지능은 철, 구리, 금을 비롯해 각종 희토류 원소인 텅스텐, 갈륨, 인듐, 스칸듐, 우라늄, 플리티늄, 토륨과 같은 금속이 없었다면 구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인간은 더 이상 소박한 별먼지가 아니라, 금속을 사용하는 별먼지다. 탄소를 기반으로 한 연약한 유기체인 인간에게 금속은 과학기술 문명을 통해 자연을 통제하는 능력을 주었고 신이 정한 질서에서 벗어나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힘을 자각하게 하였다. 동시에 파괴적인 성격을 지닌 금속문명은 인간 소외를 낳고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물질 역시 금속의 하나인 ‘금’이며 많은 이들이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대상이기도 하다. 금속은 이렇게 매력적면서 위험하다. 금속은 또한 모순에 찬 인간의 모습을 가감 없이 반영하는 거울이다.
고대 최초의 철기 도구는 용광로에서 주조한 것이 아니라 철이 많이 함유된 운석을 깍아서 만든 것이었다. 우주 어디에선가 날아온 운석에는 철뿐만 아니라 구리, 은, 납, 금 등 각종 중금속이 담겨져 있다. 수많은 연금술사들이 그토록 찾고자 했지만 도달하지 못했던 비결을 우주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수소보다 무거운 모든 원소의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를 구성하는 여러 물질들이 서로 중력으로 묶여 있어 지구라는 개체를 이루듯이, 양성자와 중성자들은 강한 핵력(strong nuclear force)으로 묶여져 하나의 원자핵을 이룬다. 예를 들어 헬륨핵에는 두 개의 양성자와 두 개의 중성자가, 철(56Fe)핵에는 26 개의 양성자와 30 개의 중성자가 있다. 더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지려면 원자핵 내부에 더 많은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들어오면 된다.
강한 핵력은 우주에서 가장 강한 힘이지만 작용할 수 있는 공간적 범위가 매우 좁다. 예를 들어 탄소(12C)핵에는 여섯 개의 양성자와 여섯 개의 중성자가 약 3.3×10-13 cm라는 반경 안에 강한 핵력으로 묶여있다. 이 반경 밖에서는 핵력이 아니라 전자기력이 더 강하게 지배한다. 원자핵이 양의 전하를 갖고 있기에 두 개의 원자핵이 서로 가까이 다가설 때 느끼는 전자기력의 반발은 피할 수 없다. 용케 그 둘이 전자기 척력을 이겨내고 강한 핵력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비로소 강한 핵력으로 뭉쳐져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핵융합을 위해서는 원자들의 운동에너지가 전자기력의 반발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높아야 한다. 새로운 원소의 합성은 대부분의 경우 별이나 초신성과 같이 고온, 고압의 환경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2)
탄소를 비롯하여 질소, 산소, 황, 인 등 생명에 필수적인 원소들과 철은 이렇게 가벼운 원자핵이 융합하여 더 무거운 원자핵을 만드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철은 가장 안정한 원소이고 그보다 더 무거울수록 원자핵의 결합 정도는 점점 더 느슨해진다. 그래서 별 내부의 핵융합 반응은 일반적으로 철에서 멈춘다.3) 만일 온도와 압력이 극도로 높아지면 철이 다른 원자핵과 결합하여 새로운 원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벼운 원소들로 분해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인류 문명에 큰 역할을 한 금, 은, 납, 우라늄을 비롯해 현대의 첨단 기기에 요긴하게 사용되는 희토류 금속은 일반적인 핵융합 반응으로 생성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유일한 방법은 철과 중성자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중성자 포획은 일반적인 핵융합 반응과는 달리 낮은 온도에서도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중성자는 전하가 없기에 다른 원자핵과 결합할 때 아무런 전자기적 반발력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성자는 그 자체로 안정한 입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성자는 원자핵 밖에 홀로 있을 경우 불과 십 분 이내에 양성자, 전자, 중성미자로 붕괴하고 만다. 중성자 포획을 통해 철보다 무거운 원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첫째로는 원자핵에 묶여있지 않은 자유로운 중성자가 만들어져야하고, 둘째로는 그 중성자가 붕괴되기 전에 철과 결합해야한다.4)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대표적인 예로는 태양 질량의 1배에서 8배 이하인 별들이 일생을 다하기 직전 단계에 있는 점근거성열(asymtotic giant branch)이 있다.5) 관측과 이론적 계산에 따르면 이트륨, 스트론튬, 지르코늄, 몰리브데넘, 납과 같은 중금속이 점근거성열 내부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점근 거성렬 내부에서 방출되는 중성자의 양은 팔라듐보다 무거운 금속들을 만들기에는 부족하다.
점근거성열 외에도 초신성 폭발이 가장 무거운 중금속들의 기원일 것이라고 오랜 기간 천문학자들은 믿었다. 아쉽게도 지난 20여 년간 이 문제를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자세한 수치모의실험을 통해 그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초신성 폭발 직전 무거운 별의 중심 핵 내부에서 양성자와 전자의 결합이 활발하게 일어 나기에 수 많은 중성자가 만들어지지만, 그 대부분은 중심 핵이 중력붕괴할 때 생겨나는 중성자별이나 블랙홀로 빨려들어가기에 새로운 원소를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초신성 폭발은 니켈, 구리, 아연같이 상대적으로 원자량이 적은 금속을 만드는 데 그친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원자량이 많은 중금속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퍼즐 조각 하나가 부족하다.
이 퍼즐 조각의 후보로 최근 천문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중성자별 두 개의 병합이다. 두 개의 중성자 별이 병합하면 대부분의 물질은 중력붕괴하여 블랙홀이 될 것이지만, 소량의 물질은(태양 질량의 약 1%) 블랙홀로 빨려들어가지 않고 미약한 초신성 폭발의 형태로 외부에 분출될 수 있다. 이 때가 바로 금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병합의 순간 중성자별이 찢겨질 때 방출된 수많은 중성자들이, 폭발을 통해 핵융합과정을 통해 합성된 철과 같은 원소에 포획되면서 금, 백금, 우라늄, 플라티늄, 토륨 등 원자량이 130이상인 중금속이 생겨나는 것이다.
지난 2월 검출이 발표되어 사람들을 흥분시킨 중력파는 두 개의 블랙홀이 병합할 때 방출되었다. 중성자별의 병합 역시 상당히 강한 중력파를 만들 수 있다. 두 개의 중성자별이 쌍성계를 이루어 공전할 경우 중력파로 인해 각운동량과 에너지를 잃어버리면서 공전 궤도는 점점 짧아지고 결국 어느 순간에 둘은 하나로 병합한다. 이 과정에서 관측이 가능할 만큼 강한 세기의 중력파가 나온다.
블랙홀의 병합도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지만, 중성자별 병합은 중금속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줄 것이다. 대부분의 블랙홀 병합은 강력한 중력파를 만드는 것 외에는 전자기파의 방출 없이 조용히 사라지고 말지만, 중성자별의 병합은 중력파 발생과 동시에 감마선에서는 매우 강력한 감마선 폭발체(gamma-ray burst)를, 그리고 가시광선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약한 형태의 초신성6)을 동반할 것으로 예측된다. 무엇보다 중력파와 동시에 일어나는 약한 초신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천문학자들은 원자량 130이상 원소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얻을 것이다.
중력파 연구단은 올해 하반기부터 한층 향상된 검출기로 중력파 탐색을 시작할 예정이고, 중성자별 두 개의 병합이 만드는 중력파도 조만간 검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니 블랙홀의 중력파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말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중성자별의 병합을 알리는 중력파를 기다리자. 인류의 역사를 좌지우지한 금의 합성 순간을 연주하는 장엄한 서곡이자, 우라늄과 플라티늄의 합성을 통해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명암을 암시하는 전조가 아닌가? 물론 소박한 금반지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연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축복하는 노래라고 받아들여도 좋다. 빠르면 올해 하반기, 늦어도 내년이 다 가기 전일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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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은하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헬륨 역시 약 85% 정도는 별 내부가 아니라 빅뱅 초기에 만들어졌다. 헬륨은 우주에 수소 다음으로 많은 원소이지만 그 특성상 다른 원소와 결합하여 분자를 만들지 않고, 인체와 흙을 구성하는 성분에서는 볼 수 없다. 지구상에서 헬륨은 일부 방사능 원소가 내뿜는 알파입자로만 관찰될 뿐이다.
2) 참고로, 조지 가모프는 터널 효과라 불리는 양자역학적 현상이 이 장벽을 상당히 낮추어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태양 밝기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태양 중심부가 현재 보다 백 배 이상 온도가 높아야만 가능했을 것이다.
3) 철에서 핵융합이 멈춘다고 말할 때 엄밀하게는 56Fe에서 멈춘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철은, 철을 포함하여 니켈이나 코발트와과 같이 철과 원자량이 비슷한 원소들, 즉 철종족 원소(iron group elements)를 의미한다.
4) 원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양성자의 개수다. 양성자가 두 개면 헬륨, 여섯이면 탄소, 스물 여섯이면 철. 반면에 중성자의 개수는 원소의 정체성을 바꾸지는 않고 다만 중성자 수에 따라 각각 원자량이 다른 동위 원소가 될 뿐이다. 예를 들어 탄소의 경우 중성자가 6개면 12C, 7개면13C, 8개면 14C. 중성자 포획은 그래서 처음에는 더 무거운 동위원소를 만든다. 예를 들어 56Fe가 51개의 중성자를 포획하면 107Fe가 된다. 중성자를 포획함으로써 더 무거워졌지만, 철이라는 정체성은 바뀌지 않는다. 다른 한 편에서, 모든 원소들은 양성자와 중성자의 수가 얼추 비슷할 때 가장 안정하다. 어떤 원소 내에 중성자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원자핵은 불안정해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다시 말해 중성자 수가 양성자 수보다 지나치게 많은 원자핵에서는, 중성자 일부가 전자를 방출하면서 양성자로 변한다. 이 과정을 흔히 베타붕괴(beta decay)라고 한다. 베타붕괴를 통해 중성자의 수는 줄고 양성자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원소는 정체성이 바뀐다. 예를 들어 107Fe 원자핵 내부에서 21개의 중성자가 베타붕괴하면 양성자 47개와 중성자 60개로 구성된 은(107Ag)이 될 것이다. 요약하면, 중성자 포획을 통한 새로운 원소의 생성은, ‘중성자 포획으로 무거운 동위원소 생성 → 중성자 과다로 인한 베타 붕괴 → 새로운 원소 생성’이라는 과정을 겪는다.
5) 점근거성열 내부에서 자유 중성자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기에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6) 약한 형태의 초신성을 천문학자들은 흔히 킬로 노바 kilo nova, 혹은 마크로 노바 macro nova라 부르기도 한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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