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도서관을 만들어라... 리딩테인먼트가 뜬다
19일 오후 찾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 이곳엔 유난히 사람이 몰린 곳이 있다. 바로 쇼핑몰 중앙에 위치한 별마당 도서관이다.
13m 높이의 초대형 책장 3개가 눈길을 사로잡는 이곳은 무료로 운영되는 개방형 도서관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큰 테이블에는 노트북과 태블릿PC를 이용해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메웠고, 이따금 이 광경을 찍는 듯한 스마트폰의 셔터음이 들리기도 했다.
저녁이 되자 공간은 활기가 더해졌다. 도서관 한쪽 간이무대에는 ‘컬처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정신의학과 전문의 김학철 씨가 진행하는 육아 강의가 진행됐다. 무대 주변에는 강연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젊은 주부들이 모여들었다 .
◆ 책과 의자를 놓자 사람들이 모였다
사양산업을 대표했던 책이 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책을 매개로 다양한 문화 활동이 펼쳐진다고 해 ‘리딩테인먼트(Readingtainment= Reading+ Entertainment)’가 성행하고 있다.
국내에 리딩테인먼트를 대표하는 장소로는 별마당 도서관을 들 수 있다. 지난 5월 코엑스몰을 인수한 신세계그룹이 60억 원을 들여 만든 별마당 도서관은 2개 층, 총 2800㎡ 규모로 조성됐다. 5만 여권의 서적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이곳은 개관과 함께 강남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별마당도서관 관련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무려 44000여 개에 달한다.
별마당 도서관은 침체된 코엑스몰의 상권을 부활시키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일본의 다케다 시립 미술관과 츠타야 서점을 모델로 했다. 두 곳 모두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이 조성한 곳으로, 수많은 사람을 불러 모은 것이 특징이다. 별마당 도서관 역시 개관 4개월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스타필드 측은 도서관 인근 매장의 경우 매출이 30% 가까이 늘었고, 30%에 달했던 쇼핑몰 내 공실도 대부분 채워졌다고 밝혔다.
◆ 유통가 도서관을 만들어라… 카공족, 인스타족 끌어들여
책은 유통업계의 집객몰이를 위한 최고의 콘텐츠가 됐다. 별마당 도서관 외에도 현대백화점 판교점 ‘어린이책미술관’, 블루스퀘어 ‘북파크’, 네스트 호텔 ‘쿤트라 라운지’, 아난티코브 ‘이터널 저니’ 등 사람이 몰린다 싶은 곳엔 어김없이 북카페와 서점, 도서관이 함께 한다.
책 읽는 사람이 갑자기 늘어난 걸까? 아니, 오히려 독서율은 점점 하락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1994년 86.8%였던 국내 성인 독서율은 2015년 65.3%로 내려갔다. 비슷한 내용으로 지난해 통계청은 우리나라 국민의 하루 평균 독서시간이 6분(평일 기준)에 불과하다는 발표를 내놨다. OECD 국가 중에서도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도서관에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별마당 도서관에서 만난 직장인 이정은(29 여) 씨는 “책과 함께하는 여유를 즐기기 위해 종종 별마당 도서관을 찾는다”라며 “다양한 종류의 책과 잡지, 사서 보기 부담스러운 해외 잡지 등이 갖춰져 있어 볼거리가 풍성하다”라고 말했다.
카페에서 공부하거나 업무를 하는 카공족에게도 도서관은 유용한 공간이다. 집과 가까워 한남동 북파크를 주로 찾는다는 프리랜서 직장인 오연주(33 여) 씨는 “일반 카페는 공간이 좁아 답답하고 오래 있기도 눈치가 보이는데, 여기서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개인 업무를 볼 수 있다. 필요한 책을 즉시 열람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트렌드 정보회사 스타일러스 한국지사의 안원경 실장은 인스타그램 등에 유통하기 좋은 SNS 콘텐츠로서 도서관의 가치를 짚었다. 그는 “상업공간 안에 만들어진 근사한 휴식 공간이 기업 도서관의 매력”이라며, “멋진 공간에서 지적인 여가를 즐기고, 이를 인증하는 과정이 인증 세대에게 호응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퇴근길 ‘책맥’ 한 잔, 읽고 노는 ‘리딩테인먼트’ 부상… 유료 독서모임도 인기
최근 몇 년 사이 골목 곳곳에 생겨난 작은 책방도 인기도 주목된다. 서점이나 도서관이 커피 한 잔과 함께 독서의 여유를 제공하는 곳이라면, 책방에서는 내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고 문화를 즐길 수 있다.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최인아 책방은 책을 매개로 한 삶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이곳엔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처럼, 최인아 대표가 직접 분류한 12가지 세션에 맞춰 책이 진열됐다. 한쪽에는 지인들이 꼽은 ‘내 인생의 책’을 소개한다. 제일기획 부사장 출신이란 최 대표의 이력답게 비즈니스적 통찰을 담은 강연과 클래식 공연도 진행된다.
이화여대 뒷골목에 위치한 퇴근길 책한잔은 ‘책맥(책+맥주)’의 로망을 채우는 곳이다. 이곳에선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시고 영화도 보고 저자와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주인을 닮은 책방엔 소소한 즐길 거리가 기다린다.
관심사가 맞는 사람이나 지인들이 모여 만드는 독서 모임도 늘고 있다. 유료 독서 모임 플랫폼 트레바리는 론칭 1년 만에 10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4개월간 진행되는 멤버십 가입비는 19~29만 원으로,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지만 20~30대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독서 모임에 나간다는 직장인 조형모(35) 씨는 “친구들을 만나면 술 마시거나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시간을 때운다. 어쩌다 책이나 사회 문제를 얘기하면 ‘진지충(지나치게 진지한 사람)’이란 비아냥을 듣기 일쑤다. 하지만 독서 모임에선 그런 걱정 없이 마음껏 관심사를 나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안원경 실장은 “사회가 급격히 변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저자 강연이나 독서 모임은 이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콘텐츠”라고 분석했다.
이쯤 되면 모두가 책을 읽는 아름다운 세상이 왔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여전히 출판업과 서점업은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북 큐레이터 오서현 씨는 “책 시장이 커졌다기보다는 책을 매개로 한 문화가 다양해진 것”이라며, “하지만 책을 주제로 한 공간과 문화가 늘면서 자연스레 우리의 삶에 책이 스미는 모습이 보인다. 불황과 경기침체 등으로 소소하게 일상을 즐기고 자신의 성장에 의미를 두는 경향이 짙어짐에 따라, 책 읽는 문화는 앞으로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0/2017102001723.html#csidxf3fb7c6fb80ee94be81470c48a04e7a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