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31일 화요일

분투가 필요한 독서/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방송대 출판문화원에서는 매년 여름방학 때 학생과 동문을 대상으로 독서감상문 공모 행사를 개최한다. 2004년부터 시작해 10년을 넘기다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 그런데 응모작이 갈수록 줄어들어 고심 끝에 재작년에 대회 명칭을 ‘독서분투기 대모집’으로 바꿨더니 250여 편에 불과하던 응모작이 350여 편으로 크게 늘어났다.

그 이유는 응모작 내용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응모작 내용을 보자. “독서 분투기. 있는 힘을 다해 힘껏 노력한 독서 기록. 처음 이 공고문을 보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책 한 권 읽고 나름대로 정리하면 될 것을 꼭 ‘분투’를 붙여야 하나?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나의 잘못된 셈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학창시절 한 달에 몇 권씩 읽었던 내게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늘 예상은 늘 빗나가듯 사회생활 중 독서는 결코 쉽지 않았다. 왜 독서에 대해 ‘분투’라는 표현을 썼는지 하루하루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직장과 개인의 삶만으로도 벅찬 생활의 틈 사이로 독서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평균 나이가 43세인 방송대 학생들이, 나름대로는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책 한 권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독서는 ‘분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

분투가 필요한 이유를 하나 더 들어보자. 가치관의 문제다. “그녀는 <조선일보> 골수독자였다. 남편의 권유로 30년간 <조선일보>만을 읽어온 그녀에게 진보논객 홍세화의 책을 권했으니 그 낯설음이 오죽했으랴! 태어나 처음으로 책을 읽으며 분통이 터져 밤을 새웠다는 고백이었다. …… 저와 다른 생각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어요. 60년간 품어온 사고방식을 책 한 권으로 바꿀 순 없겠지요. 하지만 이제 저와 다른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순 있겠다 싶어요. 큰 경험이었습니다.”(『이젠, 함께 읽기다』, 신기수 외, 북바이북, 2014)

그래도 이 분들은 책과 가까이 있는 경우다. 1년에 일반 도서를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전 국민의 35%다. 하루 평균 독서시간은 평일 기준 2010년 31분에서 2015년 23분으로 25%p가 감소했다고 한다(2015년 조사 기준). 이렇게 독서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으므로 안 읽는 사람들은 논외로 하고, “좋은 책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사기』를 읽을 때 나는 2000년을 단숨에 건너뛰어 사마천의 숨결을 느낀다”라는 유시민의 말에 동의하는 분들을 위한 이야기를 해 보자.

보통의 직장에서는 책잡힐 짓하면 나만 손해고, 뒷담화에 발만 담궈도 한패가 된다. 매사가 경쟁이고 감시이므로 속내를 쉽사리 내보일 수가 없다. 이런 생활에 찌들다 보니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원하는지 전혀 모르는 벽창호가 되어간다. 대부분의 40, 50대 직장인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귀도, 이야기에 공감할 심장도 고장난 지 오래라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람은 책을 읽어도 열린 사고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사고의 틀 안에 가둬 두고 만다. 반쪽짜리 독서인 셈이다.

데카르트의 명제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고 존재하는 인간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인식하고 경험하기를 바란다. 창의적 존재를 꿈꾼다. 이것이 바로 제대로 된 독서가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습관처럼, 사서-읽고-꽂아두는 독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독서 후 활동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近思錄』에 이런 구절 있다. “공부의 첫걸음은 독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으라는 뜻이 아니다. 제대로 읽어 그 중요한 뜻을 확실하게 아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저 많이 읽기만 하고 외우기만 하는 것은 의미 없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많이 읽어도 그저 책을 많이 쌓아둔 서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IT미래학자이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인 니콜라스 카는, “검색엔진은 몇몇 단어를 보여주며 관심을 끌지만, 전체를 파악할 근거는 거의 제공하지 않아 (우리는) 숲은커녕 나무조차 못 보게 되어 잔가지와 나뭇잎만 볼 뿐”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때문에 우리는 스마트폰과 SNS 홍수시대의 맹점을 극복할 수 있는 독서활동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골방독서에서 광장독서로 바꿔 보는 것은 어떨까. 혼자 읽는 데서 그치지 말고 서평을 쓰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하면서 사고의 외연을 확장하는 독서활동은 40, 50대 중년뿐만 아니라 20대 학생들에게도 유효할 것으로 본다. 주변을 돌아보면 당신만 모르게 암암리에 활동하는 독서클럽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진짜들은 자기들끼리 꽁꽁 숨어서 암약하기 때문에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니 웬만하면 그 중 하나를 일단 선택해서 지금 바로 입회 원서를 제출해 보시라.


출처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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