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70209.html
이 나라에서 2014년 연말을 편안한 기분으로 맞을 사람은 대통령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세월호 참사’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도 넘겼고, 주변에서 도사리고 있던 추문들이 불거지려 할 무렵 성공적으로 불을 껐다. 그 ‘초동진압’에 서열 9위 재벌가까지 매품팔이로 동원되는 것을 보며 새삼 그의 권력의 크기를 생각하게 된다. ‘다카기 마사오’ 그 한마디만 하지 않았어도 통합진보당이 ‘강제 해산’이라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농담이 농담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민주주의 체제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개체의 이해관계와 공적인 대의가 적절한 균형을 찾을 때 성립할 수 있을 것일진대, 지금 이 나라는 그저 권력자 한 사람의 의중이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을 뿐이다.
10만의 당원을 가진 정당을 해산시키고, 국민이 직접 뽑은 국회의원을 다섯이나 떨어뜨린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스물여섯 동료를 잃은 쌍용차 노동자들을 다시 굴뚝으로 올려 보낸 대법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측근들과 송년회를 하면서 6년 전 ‘광우병 쇠고기 사태’를 앙갚음하듯이 ‘미국산 쇠고기’를 메뉴로 채택하여 양껏 드신 전직 대통령의 마음은 또 어떤 것일까. 세상사가 소설처럼 흘러간다. 어떻게 이렇게 선악의 구도가 선명할 수 있을까. 너무 선명해서 뭔가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지난주에는 밀양과 청도 송전탑 반대 주민들과 함께 버스 1대로 전국 곳곳의 고난의 자리들을 순례하는 ‘72시간 송년회’를 했다. 거기서 만난 세월호 유가족들은 많이들 지쳐 보였고, 안산의 분향소는 썰렁했다. 저 막무가내의 버티기 앞에서는 기운이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유가족들에게 목도리를 걸어주고 오래도록 끌어안고 눈시울이 빨개지도록 울어주던 어르신들은 버스에 올라타고도 식사를 못해서 대부분 도시락을 남겼다. 첫날 도착한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의 풍경이 생각난다. 회사는 수백명 노동자들을 남긴 채 폐업을 해버렸고, 아무도 없는 공장을 지키는 것은 형광색 제복의 경찰들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11명의 노동자는 고용승계를 외치며 농성하고 있었다. 천막은 초라했고, 거기서 젊은 해고노동자가 커다란 국솥에 어르신들을 대접할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해서 이곳에서 20년을 일했다는 노동자는 쭈글쭈글한 노인들 앞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41일간 이어진 단식으로 위원장이 병원에 실려간 뒤 찾아간 코오롱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은 어쩔 수 없이 착잡한 공기가 흘렀고, 어르신들은 농성장을 지키는 이들에게 목도리를 걸어주었다. 굴뚝 위로 올라간 쌍용차 노동자들을 아래서 올려다보는 할머니들이 어찌 눈물을 참을 수 있었을까. 강원도 홍천 골프장 현장들을 눈 속을 뚫고 다녔다. 골프장이 공익시설이라고 공시지가의 30%만 받고 집과 땅을 강제수용당한 노인들이 있었다. 농기계 창고에 세간을 맡겨놓고 원룸에서 기거하는 70대 노인은 화병을 얻었고, 지금은 시력마저 오락가락한다고 한다.
불행은 불행으로, 고통은 고통으로 위로가 되는 것인가.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얼싸안는 일만으로도 눈물들을 글썽였고, 떨어질 무렵 눈가는 붉게 젖어 있었다.
어이없는 시절을 지나가고 있다. 소설 같은 현실 안에서 실재의 죽음은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진실과 정의는 이제 공허한 소문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런 시절, 불행과 불행이 고통과 고통이 손을 맞잡는 것 말고는 다른 희망은 없어 보인다. 이 추운 날, 굴뚝 위에서 거리에서 차디찬 농성장에서 외롭게 싸우는 이들을 기억하자. 지금, 이 땅을 떠난 것처럼 보이는 우리들의 ‘님’은 분명 그들 안에서 함께 떨며 훌쩍이고 있을 것이다.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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