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2일 월요일

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 아비에저 터커, 플라톤, 크리톤, 메논, 에우티프론, 변론, 파이돈, 대화편

[책과 삶]현대인으로 돌아온 소크라테스 징병·안락사 놓고 왜 토론 즐길까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 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
아비에저 터커 지음·박중서 옮김 | 원더박스 | 408쪽 | 1만8000원


인문주의란 지식의 암기가 아니라 실천이다. 기존의 관성적 체계에 대한 의심, 자신의 삶에서부터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다. 그래서 인문주의란 ‘전복적 도전’과 거의 동의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소크라테스야말로 인문주의자들의 조상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일반적 합의를 거쳐 상식으로 굳어진 것들에 도전한다. 종교와 애국심, 정치인들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의 전문성, 기존의 위계질서, 타당함과 도덕성에 대한 감각에도 도전한다. 그래서 독배는 피할 수 없는 종점이었다.

이 책은 약 2500년 전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현대로 호명한다. 저자인 아비에저 터커는 현재 하버드대학 데이비스센터의 연구원이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플라톤의 대화편이 아테네의 시장에서 21세기의 서점과 강의실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뭔가 유쾌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 문화, 종교, 예술, 문학에 관해 탁월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한 현대의 독자와 학생이라면, 원래의 독자들에게는 뚜렷이 보였을 전복적이고도 유머러스한 부분을 종종 놓치기 마련이다. … 대화편이 탐구하는 보편적 테마는 전혀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드러날 수 있으며, 각 세대마다 현대적이고 타당한 것으로 재해석될 수도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플라톤 대화편의 현대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다섯 작품, <크리톤> <메논> <에우티프론> <변론> <파이돈>을 1인칭 관찰자 시점의 단편소설로 바꾸고 그 배경과 줄거리를 현대의 미국으로 가져왔다. “대화편 안에 들어 있는 대화와 연극과 유머의 철학적 본질을 훼손시키지 않는 동시에 더 넓은 대중이 플라톤에 접근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이뤄졌는데 제목만으로도 대중의 흥미를 충분히 끌어당길 만한다. ‘군대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타고나서 쿨한 걸까, 배워서 쿨해지는 걸까’ ‘하느님이 선악을 결정할까, 아닐까’ ‘일자리냐 양심이냐’ ‘죽음을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등이다. 
사실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궤변을 늘어놓는 훼방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21세기의 소크라테스는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인으로 다가온다. 그는 자국 정부가 일으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에 앞장섰다 징병 영장이 떨어지자 의무를 다하겠다며 전쟁터로 향한다. ‘쿨함’과 ‘선함’의 본질을 놓고 대학생이나 목사와 열띤 토론을 벌인다. 또 보수적인 학교에서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교육을 시도하다 학부모들의 반발을 사서 징계를 당하기도 한다. 불치병에 걸린 상태에서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하고, 죽는 순간까지도 친구들과 토론을 즐기면서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다.

저자가 의도한 것처럼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책이다. 2500년 전의 소크라테스를 친근한 존재로 만들어주면서 플라톤의 대화편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나서 대화편 그 자체를 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