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 해산 결정 살펴보니
헌법재판소가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을 감행했다. 무엇보다 민주적 법치주의 원리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헌법을 빈껍데기로 만들 수 있는 위험마저도 감수할 수 있다는
‘무모’하고도 ‘비겁’한 결정을 ‘무책임’하게 내려버렸다.
헌정 사상 초유로 확인된 정당해산의 법리 자체는 결론이 무색할 정도로 비교적 엄정했다. 제소권자인 박근혜 정부가 주장한 바와는 달리 정당해산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원칙에 따라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최후수단적·보충적으로만 가능하다는 보편적 법원칙을 확인했다. ‘의심스러울 때에는 자유를 우선시하는’ 근대입헌주의 원칙이 정당해산심판제도에서도 여전히 적용돼야 함을 확인하고 있다. 유일한 해산 요건인 ‘민주적 기본질서’는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입헌적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될 수 없다”고 평가되는 “최소한의 내용”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일반적인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단순한 일탈만으로는 정당해산 사유가 될 수 없도록 범위를 극도로 제한했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주권의 원리,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제도, 복수정당제도 등 ‘정치적’ 질서만을 의미하고, 헌재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체적 요소로 인정했던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를 정당해산의 요건에서 배제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질서에 비판적이라는 것만으로 정당해산 사유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나아가 공산주의를 포함해 특정한 정치이념을 표방하는 것만으로는 위배 행위가 성립하지 않음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더구나 민주적 기본질서의 위배는 정당의 존립을 제약해야 할 만큼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 결과로서의 정당해산에는 법치주의가 요구하는 비례원칙을 적용하여 다른 대안적 수단이 없고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중대한 제약이라는 사회적 불이익이 정당활동 제한에 따른 불이익보다 큰 경우, 즉 사회적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헌재의 다수의견은 이처럼 엄중한 입헌적 민주주의의 보편적 원리가 한국 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인권과 민주주의의 보루여야 할 헌재의 위상을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입헌민주국가에서 헌법원리가 남북 대치라는 현실적 이유로 무력화될 수 있다면 그것은 ‘10월 유신’과 같은 비상조치를 헌재가 공포한 셈이다. 남북 대치 상황을 빌미로 국민주권, 기본적 인권, 복수정당제 등 스스로 민주적 기본질서의 요소라고 선언했던 헌법의 핵심적 가치가 얼마든지 침해돼도 무방한 것이 됐으므로 대한민국을 ‘비상국가’로 전락시킨 것이다.
입헌민주국가에서 헌법원리가
남북 대치라는 현실적 이유로
무력화될 수 있다면
그것은 ‘10월 유신’과 같은
비상조치를 헌재가 공포한 셈이다
히틀러의 나치당도 군소정당에서
4년 만에 제1당이 된 선례에 비춰
통합진보당이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논리 비약의 극치다
북한 문제와 관련되기만 하면 헌법적 판단도 의심스러울 때 자유보다는 국가 안보를 우선시해야 하는 것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한다. 명확하게 북한과 연계했다는 증거가 없어도 북한과 유사한 정치적 주장을 하거나 남한 정부에 대한 비판의 정도와 같은 수준으로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국민 대표인 국회의원의 자격을 법률적 근거도 없이 박탈해 국민주권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한다. 정당의 공식적 강령보다는 그 범위도 확정되지 않는 소위 ‘주도세력’의 ‘숨은’ 의도에 대한 자의적 사상검증을 통해 정치적 표현과 활동의 자유라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이 되는 기본적 인권을 박탈할 수 있다고 한다. 아직 사법 절차를 통해 확인되지도 않은 일부 당원의 폭력지향성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복수정당제가 무색하게 정당 자체를 강제로 해산할 수 있다고 한다.
헌재의 다수의견은 법률 전문가의 논변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무모’하다. 보편적 법원리를 엄격히 선언하면서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실질적 보장의 관건이 되는 중요한 법원칙이나 전제조건을 의도적으로 배제시켰다.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베니스위원회’의 정당해산 지침이나 유럽인권재판소의 정당해산 요건의 핵심 요소를 애써 배제하고 있다. 이들 국제 규범은 정당해산이 오로지 다원적 정치질서를 충분히 보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적들에 대한 최후적 예방 장치여야 함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사상·표현의 자유 통제법인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국민의 일상적 정치활동과 정당활동을 엄격히 통제하는 선거법, 정당법, 집시법 등을 두고 있는 한국의 법제에서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정당의 활동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석기 내란선동 사건이야말로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실질적 위해의 경우도 구체성 외에 ‘충분한 현존성’(sufficient imminence)이 필요한데, 다수의견은 이를 무시했다. 이러한 현존성은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강령만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며 이를 구체적으로 정책으로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요구한다. 더구나 사회적 필요성도 단순한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되고 정당해산의 극단성에 비추어 ‘긴절한’(pressing) 필요성이어야 한다. 히틀러의 나치당도 군소정당에서 4년 만에 제1당이 된 선례에 비춰 통합진보당이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논리 비약의 극치다. 제왕적이라는 대통령이나 의회 권력을 거의 놓친 적이 없는 집권 정당도 마음대로 입법을 할 수 없는 현행 체제에서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는 정당이 도대체 무슨 수로 짧은 시간에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체제를 수립할 위험을 현실화하고 있다는 말인가?
나아가 국제 규범은 일부의 행위를 당 차원으로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당해산의 최고 원칙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소위 주도세력을 언급하고 이들이 당 전체을 장악하고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구체적으로 누가 주도세력인지, 이들이 10만여명의 당원을 가진 정당에서 어떻게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지, 현재 상황에 대한 엄정한 증거조사가 부실한 상태에서 오로지 과거의 전력만으로, 그리고 스스로도 한계를 인정하는 일부 전향자들의 주장을 침소봉대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정당을 해산한다는 것은 법치국가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북한 추종성을 정당해산의 사유로 간주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북한의 주장 여부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은 우리 헌법에 대한 가치 판단을 북한에 내맡기는 황당한 논리다. 결국 북한과의 유사성이나 추종성은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북한 체제와 연계해 이뤄지는 활동의 여부에 의해, 오로지 적법한 절차에 의해 개별적으로 확인돼야 할 것이다.
사회적 편견 속에 있는
정치적 소수파를 일부의 오류만을
이유로 반체제세력으로 단정해
국론을 끊임없는 종북 논쟁으로
이끌 공간을 무책임하게 제공했다
한편 헌재의 다수의견은 무모함을 넘어 ‘비겁’하기까지 하다. 다수의견은 보편적 법원칙은 엄격하게 선언하면서 그 적용은 자의적으로 완화하는 이중적 태도로 당당함을 상실했다. 더구나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정당활동의 자유에 극단적 제약을 허용하면서 오히려 이런 결정이 소위 진보진영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게 하기 위함임을 명분으로 삼는 비겁함을 숨기지 않는다. 이는 아무리 좋게 해석해 보려 해도 우리 헌정사의 경험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북한의 위협에 대해 현실적 경계를 게을리해서 안 되는 것과 별개로, 해방 이후 한국의 헌정사는 독재세력이 자유민주주의를 참칭하여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억압해 온 역사였다. 근래만 보더라도 공공연한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과 간첩 조작 사건이 빈발하고 있고,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헌법을 미화하는 등 극우극단주의에 의한 사회적 해악이 현실화하고 있다. 다수의견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차원의 ‘은폐된’ 목적에 주목한 이번 결정으로 진보진영은 종북의 딱지를 떼기 위해 불필요한 사상검증을 견뎌내야 하게 됐으며, 내부적으로 끝없는 이념 투쟁과 외부적으로 보수진영의 무차별적 색깔론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헌재의 결정은 ‘무책임’하다. 이번 결정으로 무의미한 이념 대결을 종식시키자고 주장한들 헌재가 국가권력의 자의적 권력남용을 통제한다는 존재 이유를 스스로 포기한 상황에서는 모두가 무망한 일이다. 헌재는 헌법정신을 철저히 지켜서 헌법분쟁을 종결시켜야 그 존재 의의가 있다. 그러나 강력한 법집행권과 일방적인 사회적 편견 속에 있는 정치적 소수파를 그 일부의 정치적 오류만을 이유로 공존하지 못할 반체제세력으로 단정함으로써 국론을 끊임없는 종북 논쟁으로 이끌 공간을 무책임하게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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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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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입헌적 민주체제에서 국가권력의 발동은 오로지 헌법과 법률의 명시적 근거에 의하여 이뤄져야 함에도 관습헌법론에 버금갈 헌법 해석만으로 국민의 공무담임권을 박탈하고 국민의 대표선출권을 침탈하는 한편, 이 모두를 민주적으로 결정할 지위를 가진 국회의 입법권과 자율권을 침해했다. 헌법분쟁과 관련한 최종 결정권을 헌재가 가진다고 하더라도 오로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함은 헌재가 스스로 모든 국가권력의 통제 원리로 확인한 적법절차원칙이 명령하는 것이다. 당 차원에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목적이나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증거조사와 심리를 더욱 엄정히 진행하는 한편 정당해산으로 초래된 헌정질서와 법체계의 문제점을 국회가 자율적으로 정비할 기회, 선거 과정을 통해 정치적으로 혹여 있을 수 있는 민주주의의 적에 대한 주권적 심판의 기회를 갖도록 함으로써 헌재의 위상을 유지하면서도 극심한 이념 대결을 극복할 수 있는 숙고의 기회를 부여할 선택지를 무책임하게 팽개친 것이다. 헌재가 법치주의의 이름으로 헌법을 매장하고 국민주권과 국회의 국민 대표권을 박탈해 대한민국을 비상국가로 전락시킨 역사적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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