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는 러시아 혁명에 이어 독일 혁명이 소용돌이치던 1919년 1월28일 ‘직업 및 소명으로서의 정치’ 강연에서 볼셰비키 혁명을 “혁명이라는 자랑스러운 명칭으로 장식되고 있는 광란제”라고 조롱했다.
진태원의 다시, 변혁을 꿈꾸다-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1부. 러시아 혁명의 반향
1. 막스 베버: 근대성에 갇힌 러시아 혁명
2. 죄르지 루카치: 베버를 넘어-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
3. 카를 슈미트: 사회주의 혁명에 맞선 보수주의 선언
2. 죄르지 루카치: 베버를 넘어-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
3. 카를 슈미트: 사회주의 혁명에 맞선 보수주의 선언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한국 연구교수
막스 베버(1864~1920)는 생애의 말년에 ‘직업’과 ‘소명’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 독일어 ‘베루프’(Beruf)를 제목으로 삼아 두 차례의 강연을 했다. 러시아 10월 혁명의 충격이 유럽을 휩쓸던 무렵인 1917년 11월7일 ‘직업 및 소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강연을 했고, 약 1년 뒤, 이번에는 독일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던 1919년 1월28일 ‘직업 및 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을 했다. 두 강연은 막스 베버의 이론적 유언으로 불릴 수 있을 만큼 그의 사상의 핵심을 집약하고 있다. 또한 이 두 강연은 왜 베버가 마르크스주의의 영원한 이론적 적수라고 불리는지 그 이유를 잘 보여준다. 러시아혁명 및 독일혁명에 대한 직접 비판을 목표로 삼지는 않지만, 베버는 도처에서 볼셰비키 혁명과 독일의 혁명 운동에 대한 비판과 불신을 감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강연 중 특히 ‘직업 및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일종의 ‘반사회주의 혁명론’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베버를 반동적인 사상가, 적어도 보수적인 이론가라고 규정해야 할까? 베버의 정치 사상이 보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사상은 단순히 보수주의로 분류되기에는 너무 심원한 것이다. 따라서 두 강연은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미처 간파하지 못한 마르크스주의(더 나아가 해방의 정치 일반)의 한계들에 대한 문제제기로 읽는 게 좋을 것이다. 실로 베버의 문제제기는 죄르지 루카치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를 넘어 한나 아렌트, 모리스 메를로퐁티, 위르겐 하버마스를 거쳐 오늘날의 에티엔 발리바르에 이르기까지 20세기의 비판적 정치 사상에 지속적인 화두를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혁명의 사상적 반향의 첫 번째 장소를 베버의 두 강연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의 논점과 관련하여 베버의 두 강연의 핵심 주제는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서양의 근대성을 탈주술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탈주술화란 세계의 배후나 근저에 이 세계를 움직이는 무언가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사라졌음을 뜻한다. 그 대신 합리화 과정이 전개되면서 사람들은 이 세계와 사물들을 계산을 통해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근대적 개인이 미개인들에 비해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미개인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를 비롯한 인류학자들이 잘 보여주었듯이 자신의 삶과 주변 환경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다. 가령 미개인은 활과 화살을 직접 만들고 각종 약초들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반면 현대인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전철을 타고 다녀도, 정작 그것의 작동 원리나 설계 방식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베버의 논점은 탈주술화로서의 합리화를 통해 근대인은 자기 삶과 세계에 대해 이전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인에게 자연을 포함한 세계는 더는 숭배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정복과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삶 자체가 더는 내재적인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다. 베버는 그것을 죽음에 대한 상이한 태도에서 찾는다. 생명의 유기적 순환 속에서 삶을 영위하던 전통 사회의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완성을 뜻하는 것이었다. 반면 무한한 진보와 끊임없는 변화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근대의 인간에게 죽음은 의미 없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진보 자체가 어떤 궁극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을뿐더러, 인간의 삶이란 그 진보의 선상에 놓인 작은 한 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베버의 탈주술화 테제는 신은 죽었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의 사회학적 변용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탈주술화로서의 합리화 과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인가? 베버는 그렇다고 믿었으며, 그것을 우리 시대의 운명으로 간주했다. 이것은 이제는 집단적인 변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함축한다. 과거에는 예언자의 성령 아래 대중의 격렬한 열정을 동원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이제 그것은 광신적인 종파를 만들어낼 뿐 진정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없다. 따라서 베버가 볼셰비키 혁명을 “혁명이라는 자랑스러운 명칭으로 장식되고 있는 광란제”(‘직업 및 소명으로서의 정치’ 강연)라고 조롱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근대인에게 남은 것은 각자가 자기 인생을 조종하는 정령(Daimon)을 찾아 그에게 복종하는 길이다.
탈주술화의 사회·정치적 표현은 관료제로 나타난다. 베버는 근대 정치의 핵심적인 특징을 관료제의 발달에서 찾는다. 베버는 국가를 일정한 영토 안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을 독점하는 지배관계로 규정한다. 과거에는 군주나 지배자 이외에도 자주적인 귀족들이 독립적인 폭력의 권리를 지니고 있었지만, 근대 국가에서 이것은 주권자에게 모두 귀속된다.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이 독립 생산자들의 소유물을 몰수함으로써 이루어졌다면, 근대 국가도 행정 관리 및 노동자로부터 정치적 경영 수단을 몰수하고 그들을 직업적인 관료 집단으로 만들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러시아 혁명을 이끈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군중들 앞에 서 있는 모습.
엄격한 규율과 통제가 요구되며
이것은 추종자들을 정신적으로
프롤레타리아화하는 것을 뜻한다
구체제 권력집단의 지배 사이에는
인물이 교체되었다는 점과
이들의 아마추어리즘을 제외하면
아무런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